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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유배자의 하늘( 流放者的天空) 鹏鸣 (四) - 3/3

중국 바이두에서 다운 받은 이리 풍경

 

우연한 기회에 홍양길은 이리 장군부에서 보녕이 가경에게 보낸 비밀 상소문 초안을 보게 되었다. 보녕은 상소문에서 황제께서 화풀이를 원하신다면, "대 불경죄"의 홍양길의 빈틈을 찾아내어 소리 없이 죽이겠다고 했다. 이리 장군의 지위는 높고 권한은 막중하여, 유배자 한 명쯤 몰래 죽이는 것은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다행히 가경제가 냉정을 되찾아, 답신에서 말하기를 '홍양길은 어리숙하고, 그저그런 부류의 인물이니 그렇게 까지 계책을 쓸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홍양길이 비록 담이 크고 식견이 뛰어나서, 결코 죽음을 두려위하지 않는다 하나, 그 비밀 상소문을 보고 나서는 춥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많은 유배 온 관원들이 3년이나 5년이면 유배 기한이 끝나는데 홍양길의 유배는 돌아갈 기한이 없었다. "설마, 황제가 내가  이역 멀리 타향에서 늙어 죽기를 바라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홍양길은 낙담하며 실의에 빠졌다.

生死有命, 富貴在天 (생사는 운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의 뜻이다).
홍양길은 생각을 바꾸었다. 산수(山水)에 탐닉했고, 술을 마시고, 시를 썼다. 황제의 지시에 저항하며 신경쓰지 않았고, "시 짓는 것을 불허한다. 음주를 불허한다"는 조서를 기억 밖으로 내던졌다. <이리 기사 시>  42수,  그것은 그가 이리에서 생활한 실제 기록이다.

君子担荡荡 (군자는 언제나 정정당당하고),
小人长戚戚 (소인은 근심 걱정하기를 잘한다).

홍양길이 이리에서 생활한지 아직 100일이 채 못되었는데, 깊고 깊은 자금성에 사는 가경 황제가 뜻밖에, 생각 끝에 그를 오라고 한 것이다. 가경은 첫 조회에서 말했다. "양길에게 죄를 준 후, 상소하는 자가 매일 줄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홍양길이 상소 때문에 죄를 얻자, 조정에서는 가을 매미가 잠잠해지는 것처럼 소리가 확 줄었다. 아무도 감히 간언 할 생각을 못했고, 전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하는 아첨 소리만 난무했다. 가경이 듣기에도 지겨웠고 맛이 없어졌다는 걸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는 당장 이리 장군에게 유지를 내려, 홍양길을 석방하여 원적지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유지를 들고 간 사자는  근 일개월 동안 길을 달려갔다.
가경 5년 5월 3일, 홍양길은 이리 장군부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했다. 그리고 바로 행낭을 수습하여 고향 가는 길에 올랐다. 청조 때, 신강 이리로 유배 갔던 죄인 가운데, 홍양길은 형기가 가장 짧았던 사람 중 하나였고, 그는 여러 차례 기적(奇蹟)을 만들었다.

소문에는, 홍양길이 고향을 향해 떠날 때, 혜원성 부근의 유배자들이 약속도 안 했는데 이심전심으로 환송하러  모여들었고, 그 수가 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홍양길은 이런 성대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 그는 혹여나 이를 비방의 구실로 삼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남이 자기를 해칠 틈을 주면 어쩌나 겁에 질렸다. 그래서 공수(두 손을 맞잡고 가슴 위로 치켜드는 중국식 정중한 작별인사)를 하며, 모두에게 대중이 시위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도록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누구나, 기적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에 홍양길의  권고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유배자들의 심리는 모두 다르다.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자기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사람도 있고, 진심으로 홍양길을 위해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고향 집과 친구들이 떠올라 눈물을 머금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올었다 웃었다 하며 실성 기를 보였다. 또 어떤 사람은 홍양길을 잡고 두 번 세 번 당부하기를, 순무라는 고위직에서 말단 관직까지 해 보았으니, 안면을 바꾸어 매너 없는 일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석양이 지자,  슬픈 인생들이 먼 하늘 끝에 섰다.
살아서 고향으로 갈 수 있기를, 유배자들은 아침, 저녁으로 갈망한다.

홍양길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 다시 10년을 더 살고, 향년 64세에 죽었다. 그는 일생의 저작을 260권의 책에 모았다. 홍양길은 사람들에게 가장 흥미진진하게 그의 유배 길을 말해주고, 멋진 유배 시를 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