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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검은 머리카락을 안타까워하며 (惜青丝) : 张大威 - 3/4

 

 

이번에 목욕을 하다가 머리카락이 빠진 일은 노(老:늙음)에서 비롯된 경고음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독(秃:대머리)에서 비롯된 경고음이라 할 수 있다. 대머리와 늙음은 일반적으로 늙는 게 먼저고 대머리가 나중이다. 나는 탈모에 대한 경고음이 휘파람 소리를 내자, 그때부터 탈모의 추세는 필연적인 것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충분히 억제할 수 있는 추세라면 추세라고 부를 것도 없지 않은가? 베개, 마룻바닥, 책상, 이불, 주방, 화장실 ----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들에 필연적으로 깜짝 놀랄 "유물"을 남기게 되었다. 원래 내 머리 위에서 꼿꼿이 서있던 검은 머리카락인데, 그들에게  "쉬어"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그들 중 몇몇 불안정한 분자가 "쉬어"  해버렸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해산"이라 하지 않았거늘, 그들 가운데 보다 더 불안정한 몇몇은 아예 해산해버렸는데 머리에서 벗어나 달아니 버린 것이다. 그것들이 날려 떨어질 때,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했지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통곡"이 있었다. 아픈 이별의 순간, 내 머리의 미래는  바로 눈 앞에서 끊임없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 속도로 버려지고, 만일 내가 살아있는 시간이 충분히 길다면, 결국 어느 날엔가 내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는 게 없어질 테니, 버릴 것조차 없을 것이다. 그때, 내 머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큰 사이즈의 우박, 호롱박, 전구 다마, 한밤중에 가짜 광원이 되는 어떤 이력이 불분명한 큰 대머리? 이런  일련의 "대머리"는 나를 압박하여 거의 질식할 것 같다. 절망, 슬픔, 초조, 길 잃은 느낌은 특별히 강렬한데---- 빛나는 대머리는 대책이 없다. 예부터 오는 날까지 모두 대책이 없었다.

식모술? 현재 이런 광고들은 차고 넘친다. 매번 지하철을 탈 때마다, 선택하지 않아도, 나의 얼굴은 언제나 늙은 남성의 대머리가 머리 색이 까매지고, 젊은 사람처럼 검은 머리가 무성해진다는 식모술 굉고와 마주하게 된다.  엉뚱하지만 이 광고는 대상 고객이 분명하고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상업 기획이지만, 기세를 북돋워 나를 포위 공격하는  것 같다. 내가 한창 젊고 검은 머리였을 때는 나는 이유 없이 대머리를 헐뜯었으니, 만약 대머리들이 나의 나날이 희소해지는 머리카락을 본다면 큰 원수를 갚은 것 같은 쾌감을 느낄 것이다. 무언가 조소하더라도 늙은 것을 조소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나는 것은, 바르지 못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늙는다는 것을 경시할 수 있겠지만, 늙는다는 것을 조소하면 안 되고, 멸시하면 더욱 안된다.

나의 이런 소리는 비교적 미약하고, 일방적인 생각이며, 듣는 사람도 없지만, 약자는 무언가를 동정할 때,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 솔,벨로는 말했다. "역사는 잔혹사이지 사랑의 역사가 아니다. 나약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노인들이 받게 되는 시선은 잔인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찬바람이 씽씽나고, 사랑의 마음은 작다. 늙는다는 것은 멸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느껴보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덜 늙었다는 말이다.
어떻게 멸시에 대항할 수 있을까? 나는 먼저 우리의 시선을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생 동안을 고분고분하게 보는(비굴한 상) 시선을 몇 센티 올려서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일생을 유약하게 보던 냉소주의자의 시선에서 맹렬 힘이 포함된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꿔지게 된다. 이렇게 대중을 상대로 몇 차례 시험해 보았는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떤 반향도 없었다. 망망한 사람의 바다는 떠들썩하고 번잡하다. 사람마다 각자의 고통이 있고, 사람마다 각자의 피로함이 있고, 사람마다 각자 바쁜 게 있다. 그러니 누구도 노년을 향해가는 왜소한 여인의 식견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도 먼지를 신경쓰지는 않는다.  강대한 시간 앞에서, 늙음은 그렇게 빛을 잃고 쇠퇴해감을 드러내는데, 그런 국면을 바꿀 수 없으니, 해결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