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신문지와 년화(年画)
제일 처음 "자(字)"를 보았는데, 헌 신문에서, 또 년화(年画:중국인들이 설날 집집마다 집안에 붙여놓는 그림)에서였다. 집안을 헌 신문지로 벽도 바르고, 천정도 발랐다. 바르고 난 다음, 벽에 년화를 붙였다. 이런 일은 음력 설 7~8일 전에 했다. 비록 가난한 집이라도, 벽과 천정을 신문지로 발랐다. 그리고 두 장의 년화를 붙였다.
집이 부유한 사람은 백지를 벽과 천정에 발랐다. 년화도 여러 장 붙였다. 도배를 하는데 제일 호화로운, 화지(花纸)를 사용했다. 알록달록해서 보고 있으면 경사스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아무도 비싼 시멘트를 쓰지 못했다. 백회도 과분했다. 집안은 모두 진흙 바닥이었다.
헌 신문지는 피코우(皮口) 진에 가서 샀다. 몇 푼(分: 1元의 1/100)만 주어도 1근(500g)을 주었고, 1毛를 넘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 십은 집이 좁아서, 4-5 근이면 충분했다. 헌 신문지를 사는데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벽을 바르고, 천정을 바를 때는 나도 참여했다. 나는 조수였다. 신문지에 풀을 칠했다. 풀은 가는 옥수수 국수에 물을 붓고 끓여서 죽을 만들었다. 반 대야쯤 끓였다. 나는 "취사도구"를 이용해서 신문지 위에 풀을 발 랐다. 소위, "취사도구"란 씨앗을 털어낸 수수단을 묶어 설거지할 때 솔같이 썼던 것이다. 이걸로 바닥을 쓸면 빗자루고, 설거지를 하면 "취사도구" 아니겠는가?
풀칠을 할 때는 주의사항이 하나 있었다. 큰 형이 반복해서 주의를 주었다. 모(毛) 주석 사진에 풀을 바르지 마라. 그 의미는 벽에 비르면, 모 주석의 사진이 벽이나 바르고 있게 되니까 그렇다. 벽을 바를 때, 역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모주석 사진을 뒤집어 바르지 마라. 신문도 거꾸로 바르지 말아라. <인민일보>는 거꾸로 붙이면 안 된다.
벽면의 신문이 마르면, 당연히 년화(年画)를 붙여야 한다. 년화는 피코우 진 신화서점에 가서 사왔다. 어느 해부터 년화를 사오기 시작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이런 일은 내가 맡아서 했다. 아버지는 5마오(毛)를 나에게 주었다. 5마오로 4장의 년화를 살 수 있다. 년화는 보통 모두1마오 전후이다.
년화는 서점 안에 걸려있는데, 번호가 매겨져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계산대 앞에 가서 호수를 말하면 되는데, 나는 5호, 9호, 45호 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된다. 돈을 내면 년화를 싸주러 사람을 보낸다.
년화를 붙이는 일은 장중하다. 한사람이 년화를 붙이려고 하는 곳, 부근 여러 곳을 가리키고, 왼 손으로 꼭 대기 지점을 가리키고, 다시 위를 가리키고 거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붙인다. 동쪽 벽, 서쪽 벽. 한쪽에 두장씩 붙인다. 붙이고 나서 알음묵에 앉아 동쪽도 보고 서쪽도 본다.
설, 연휴 기간에, 누가 새해 마실을 오면, 모두 년화를 봐야 한다. 이게 보기 좋으니, 저게 보기 좋으니. 그런데, 보기 싫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설을 보내는데,어느 누구도 듣기 안좋은 나쁜 말을 하면 안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년화는 한 젊은 여자가 논에서 회학 비료를 치고 있는 그림이다. 화면은 녹색 가락이다. 벼도 녹색, 여자의 옷도 녹색이다. 옷소매를 말이 올리고, 바지도 말아 올렸다. 드러난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은 빨갛다. 체격이 정말 튼실하다. 표정도 좋고, 기분 좋게 웃는데 이빨이 그렇게 하얗다. 젊은 여자의 가슴은 살짝 솟아있다. 제일 솟아 있는 부분은 왼쪽 가슴인데 거기 모(毛) 주석의 배지가 달려있다. 내 가슴 앞에도 역시 달려있는 배지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모(毛) 주석과 함께 한다.
그 그림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젊은 여자는 잊지 않았고,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우리 둔(屯)에는 그림 속의 그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없다. 우리 둔 여자들은 표정부터 틀리다. 나는 마음속으로 장래에 처를 얻을 때는 그림 속의 그 여자를 얻을 거라고 했다. 그녀를 매일매일 기쁘게 해 주고, 그녀에게 매일매일 화학비료를 뿌리게 해주고 다른 일은 손도 못 대게 해 주리라. 가을에 벼를 추수하면, 쌀을 빻아서 모두 북경으로 보내리라.
다음 해, 일 년 동안, 눈만 뜨면 보이는 벽과 천정이 헌 신문으로 가득 차있는 것을 보았고, 변화를 보았다. 변화는 보면 알 수 있었지만, 신문은 봐도 몰 랐다. 기껏 내가 아는 몇 개의 글자는 "인민일보(人民日报)였다. 바로 이 몇 개뿐이라니. 마음이 급했다. 형들에게 신문에 무엇이 쓰여있냐고 물었다. 나는 신문에 구라(瞎话)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형이 기분이 좋을 때 나에게 한번 읽어주었다. "무산계급 문화혁명을 철저히 진행하라" 든가, "의욕을 북돋우자, 앞장서서 힘쓰자. 사회주의 건설을 앞 당기자" 혹은 "계급투쟁을 틀어 쥐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혹은 "계급투쟁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강조되어야 한다." 혹은 "잔인한 투쟁의 이점이 문득 떠올랐다." 비림비공(批林批公 :임표와 공자를 비판하라)------ 이것들은 모두 무슨 엉터리이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이며 머리만 복잡해지는 말이다.
내가 있던 시골의 헌 신문지로 벽을 바르는 습관은 계속되어 1990년대까지 이어져 왔다. 그 당시에 나는 이미 문학을 하고 있었고 때때로 이 신문 저 신문에 짧은 글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오니, 셋째형이 한가지 일을 말해 주었다. 그의 이웃 사람이 그를 찾아 와서는네 집 막내가 호우더윈(侯德云)이냐? 그가 말한 뜻은의 그의 집벽에 붙어있는 헌 신문지에 몇편의 글이 있는데 "호우 더윈" 서명이 있다고 하며, 세째 형에게 내가 쓴 글인지 맞나 보러가자고 했다. 세째 형이 가 보았다. 신문은 서쪽 벽 밑부분에 붙어있는데, 온돌 바로 위에 가로로 붙어 있었다. 세째 형은 온돌에 누워서 자기도 가로로 보았다. 자세히 보니, 나였다.신문 위에 작자의 작은 사진이 있는데, 세째 형이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다섯 째 맞아".이웃 시람은 무어라무어라 감탄의 소리를 내지르더니 말했다"네 다섯 째.저말 대단해, 신문에도 다 나고." 세째 형은 곧바로 소리치며 일어나여러가지 큰 일을 말하고, 나도 뛰어오라 했다."다섯 째는 자주 신문에 나는데, 누가 모르겠어?"
세째 형의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신문지 한 장이 이런 "선전"효과를 내게 했고, 셋째 형이 큰 소리 지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글을 알고 싶었다. 나는 그 신문지 위에서 도대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형들은 보나 마나 나를 속였을 것이다. 내가 그들이 말하는 걸 모르니까. 나는 스스로 보고 싶었다.
신문에 있는 글자들은, 하루 종일 나를 포위하고 있었고 나를 압박했다. 나는 그것들이 내가 글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고, 그때가 되면 하나하나 그것들을 말끔히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글을 알게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정리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보아도 모른다. 무슨 뜻일까? 이상하다.
년화, 오히려 매년 이어서 산다. 나는 여전히 젊은 여자가 화학비료 뿌리는 그림을 사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몇 년 동안을 찾아다녔어도, 늘 찾을 수 없었다.
原载于 2014, 제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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