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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검은 머리카락을 안타까워하며 (惜青丝) : 张大威 - 1/4

목욕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숙이니 뜻밖에 십여 가닥의 검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욕조 수면에 이리저리 떠 다니는데 그것들 모양은 하얀 욕조 위에 검은색, 긁힌 자국 같다. 조용함에 대하여 흠집을 내고, 환각 ---- 자기가 한창나이 어린 청춘이라는 ----에 대하여 흠집을 내는데 나는 원망할 수가 없다. 세월에 따라 나날이 늙고, 사라져 가는 사람들 모두 자기를 속이려는 이런 환각이 있다. 이 십여 가닥의 머리카락은 계속 내 머리에 속했었다. 하지만 조용한 새벽, 그 어떤 징조도 없이 두피에서 떨어져 나가, 유랑하는 떠돌이 머리카락이 되기로 하고, 나를 버리고 갔다. "까마득한 맑은 꿈은 사라졌고, 거울 속 홍안은 바뀌었다. 봄이 떠나가니 부끄러움에 가득한 걱정이 바다 같다."  진관(秦观 : 북송시대 시인)의 시구가 눈앞의 정경으로 적 니니 하게 나타나 보인다. 청사(清丝:여자의 머리카락), 부끄러움. 그는 나와 서로 다르나 혼은 같았고,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중요시했다. 주의하지 않고 있다가 이별에 마음 상해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고, 따뜻한 수면 위에서 떠나기 싫어 머뭇거리며,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별가를 탄주 했다.

사람은 어떤 물건이 망가져서 못쓰게 되면, 아쉬움과 섭섭함을 느낀다. 더구나 늘 하던대로 생활하는데, 자신의 물건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훨씬  큰 공포와 놀라움을 느낀다. 외상(外伤), 질병으로 인하여 어떤 기관을 잃는 것 같은 그런 돌발적인 것을 제외하고, 평화롭게  연출된 형식으로, 모르는 새, 하루하루 잃어가는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다. 탈모, 그것은 가릴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또한, 어떠한 방어능력이 있는 머리도 없다. 머리는 시간의  긴 낫으로 머리 위에서 제멋대로 가을걷이를 하듯, 느릿느릿하게 사라지게 하는 운동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니, 노릇노릇한 해 그림자가 사람의 머리 위를 선회할 때, 잠못이루는 밤, 걱정스러운  황혼, 엉망이 되어버린 일이 자신을 휘감는 초조한 시간, 오랜 병고로 기다리는 불유쾌한 긴 시간 같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지 평범한 일상의 나날, 구김 없고 파란도 없는, 멍청히 카피된 것 같은 나날, 시간은 바로 당신의 머리 위에서 작은 손을 뻗어 부지런히 "보리 수확"을 하여, 당신 머리를 표현하거나 혹은 머리 경계선을 후퇴시키는 것이다. 혹은 머리 꼭대기 한가운데를 밝게 하고, 혹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밀어서 머리카락이 드믄드믄하게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세월의 황금이 한 점, 한 방울씩 흘러 없어지면, 당신은 늙게 되고, 대머리가 된다. 당신의 머리는 천천히 머리숱이 황량해지고, 사면이 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어떻게 저렇게 늙었나, 저렇게 대머리가 까졌나 (그리고 맹목적으로 자신이 반드시 옳다고 믿는 저런 꼰대, 저런 대머리) 싶은 사람들 때문에 자주 놀랬다. 시골에서 그런 늙은 여인들을 보면, 대다수는 머리가 반쯤 벗겨져서 온전치 못하고,  짧은 백발, 뒤엉킨 목화솜 같은 것이 머리 위에서 이리 데굴, 저리 데굴 한다. 곱사등처럼 허리는 굽고, 엉덩이는 늘어지고, 뒤룩뒤룩 여러 겹 파도처럼 뱃가죽은 접히고, 눈 가생이는 밑으로 처지고, (사람이 늙으면 일율적으로 세모꼴 눈이 된다), 입가도 아래로 처지고, 이마도 아래로 처져있다.
대지 위,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와 기세는 막을  수 없다. 나이가 많을 수록, 땅으로부터 가까워지고 결국 황천에서 대지의 한 분자가 되는 것이다. 세월의 어려움과 작업의 많은 무거움, 오락의 결핍 -----  거의 없는 것에 가까운----,  근심 걱정은 그녀들의 표정에서 시작되었다.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표정은, 마치 가면처럼, 때에 따라 뒤집어쓰고 때에 따라 벗는 것 같다. 점점 이런  표정은 응고되고, 명확해져서 표정은 모습이  되고, 가면은 벗어버릴 수 없게 되어 그것이 진짜 얼굴이 된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 내 주변에서 흔들거렸던, 내가 "할머니", "큰어머니", "큰 이모"라고 불렀던 연배의 사람들 얼굴에는 근심, 걱정과 쇠락한 모습이 어려있었다.

그녀들도 태양빛이 환하게 비치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본 시골 소녀, 젊은 부인들은 농두렁길을 떼를 지어 걸어갔다. 그녀들이 발을 들 때마다 꽃이 핀 길에는 향기가 피어나고, 그네들은 그녀들의 바지 귀퉁이에서는 찬란함이 흘러넘쳤고, 그녀들의 허리에서는 충만하고 윤택함이 소용돌이쳤다. 앉으면 웅크린 작약이요, 서면 덩굴 진 월계수였다. 거기다 숱 많은 검은 머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버드나무요, 구름이 일고 물이 용솟음치는 한 폭의 수묵화였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변화무쌍하지만,  결국은 재가되어 사라진다." 이것은 구청( 顾城: 중국 낭만파 시인.뉴질란드에서 부인을 도끼로 살해한 후 목을 매어 자살함)의 시가 아닌가? 그때 세상 사람들은 구청이 있는 줄도 몰랐고, 더욱이 구청의 손에 도끼가 있는 줄 몰랐다. 여러 해가 지나서 그의 이 시를 읽어보면, 그가 노래한 생명의 진정한 변화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트랑. 스텔 루어 무(스웨덴 시인 1931~2015)의 말은 더욱 정확하면서도 냉혹하고 가슴 떨린다. "우리를 미로에 빠지게 하는 표정에는 해골, 그 킹카드가 시종 대기하고 있다." 그의 시는 수술칼 같이, 감미롭거나 낭만적인 것이 조금도 없다. 그는 오직 탐구하고, 진상을 드러낼 뿐이다. 거울 속의 꽃, 물속의 달 같은 환각은  도무지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당신에게 한 덩이의 북극 얼음을 주는데, 이  얼음은 투명하고, 매섭게 차갑고, 명철하며, 영원히 종자가 싹트고 벌어질  일이 없다. 무엇보다 꽃의 향기와 요염함이 없다. 정말 우리의 인생이란 고개만 돌리면 부스러져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늙은 여인의 길, 소녀,젊은 부인의 길, 어렸을 때  나의 길은 사실 모두 하나의 길이다. 걷고 또 걷다 보니 나는 소녀, 젊은 부인이 되었고, 또 걷고 걷다 보니 나는 늙은 여인이 되었다. 다시, 걷고 걷다 보면 나는 재가 되고, 흙이 되어 대자연의 한 분자가 될 것이다. 많이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꺼림칙했던 과정에서, 다시 많이 자연스럽지만 막을 수 없는 과정이 되었다. 나의 길은 역시 너의 길, 그것은 천하 모든 사람의 길이다. 의(義)와 만리 창공에서 휘두르는 길고 긴 채찍은 우리를 석양으로 같이 기도록 내몰았다. 세상에는 천 가지만 가지의 불평등이 있을지라도,  늙는 것과 죽는 것, 이 두 가지 일만큼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 기본적인 평등을 말하자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속도가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