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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검은 머리카락을 안타까워하며 (惜青丝) : 张大威 - 4/4 (끝)

 

욕조를 깨끗이 닦고 십여 가닥의 검은 머리카락을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쪽저쪽 살펴보는데 , 갑자기 이 십여 가닥의 머리카락과 나와의 거리가, 이미 기나긴 명하(冥河:저승에 있는 강)를 건너버린 것 것 같은 거리감을 느꼈다. 검은 머리카락이 날려 떨어진 일은 이미 지난 일, 지난 일은 때때로 마치 한 마리 외기러기가 가을바람을 두드리는 것처럼  내 기억을 두드렸다. 하지만 두드려서 꺼낸 것은 맑고 투명한 잔잔한 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어지러운 구름과  흘러가는 물이었다. 
버릴 것은 버리자. 이건 내가 무정해서도 아니고  머리카락이 무정해서도 아니다. 그저 세월이 이 모든 것을 연출했을 뿐이다. 아쉬운 작별이지만 역시 작별해야 한다. 그래서 신발을 신고, 내 신체를 진작 떠나버린 것들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쓰레기통 옆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십여 가닥의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고개를 드니 가느다란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져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금년 첫 봄비구나! 이층으로 올라와 의자를 당겨, 창 앞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봄비 소리가 하나하나 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렇게 낭랑하지 않다. 초록빛으로 충만한 낭랑함, 귀여운 아기가 강보에 누워 젖을 달라고 하는, 동그랗고, 충만한 울음소리를 기대했는데.
하지만 오히려, 녹슨 쟁(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의, 떨떠름하고 꽉 막힌 것 같은, 소리가 넘어가는 곡선이 약간 삐뚤삐뚤한 그런 소리다.
쟁의 어디가 녹슬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 소리는 시간의 심처(深处)에 봄비가  내리는데, 옥인(玉人)의 손가락 아래, 차갑고, 생경하고, 하나하나 아름답게 풍류를 노래하고, 세월을 노래하고, 아름다운 새벽과 환한 햇볕 그리고 복사꽃의 반짝임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내 심경에 오랫동안 녹물이 들은 것이고, 그 녹물은 바로 늙음(老)이다. 그 심경을 내려다보면 어제의 아름답게 만개한 봄꽃이 한 올 한 올의 검은 머리카락을 따라 시들어 떨어졌다가 한송이 이끼로 태어난 것이다.
봄꽃이 피면 사람들이 꽃을 따러 오고, 이끼는 시들어 떨어진다.

한송이 이끼는 바로 일단의 경험이고, 사람이 겪은 일이 많을수록 오히려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기와 관련된 일이 적다고 느낀다. 춘풍 십리(春風十里)는 모두 지난날의 번화함이다.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팔뚝에 채워진  하니 하나의 무거운  쇠고랑처럼 번쩍이는데, 벗으면 가벼울 테니 몰래 벗어 버리자!
이 쇠고랑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다 보니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쇠고랑을 원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대오각성한 것이 아니다. 육조 혜 능선 사가 말하기를 인간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으나 나의 지혜는 꽉 막혔으니 설마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겠는가? 그저 너무 피곤할 뿐이다.

피곤----- 멍하니 좌정  하니 ----  상태는 오히려 편안하고, 욕심내지 않고, 갈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봄비, 나는 얼마간 적막의 의미를 듣는다. 봄비를 원망하지 않고, 시끄러운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리라.봄비가 나를  저버려서도 아니고, 세상이 나를 차깁게 대해서도 아니다. 시간이 시끄러운 세상을 점점 차갑게 하고, 봄비를 느릿느릿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자,세상이 조용해졌다. 내가 제일 감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고요함(靜)"이라는 글자다. 만약 심경 가운데 이끼 송이가 천 송이의 백련.(흰연꽃)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게 하고, 바람을 여유롭게 하고, 바람을 냉담하게 하고, 바람을 조용하게 한다면, 그게 바로 깨어나면서도 아름답고, 잠들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리라.
만약 조용한 서재 한칸 가질 수 있다면, 조용히 책상에서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오후 조용히 차를 마실 수 있다면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어느 봄 날  조용히 꽃을 바라 볼 수 있다면, 어느 가을 날 조용히 구름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일을 조용히 망각할 수 있다면,  상처를 조용히 아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을비방하는 일을 조용히 던져 버리면, 은원(恩怨)을 조용히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옷소매를 휘두르며 떠나는 날이있다면, 한줄기 옅은 안개가 되어 조용히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 경지는 여기에 이를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아. 남던 떠나던 마음대로 해라. 얼아든지 좋다. 그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