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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나의 구라 시대 (我的瞎话时代) 侯德云 - 둘째 단원 2/2

 

나는  종(钟)씨 집에 가서 구라(瞎话)를 말했다. 꼬마 녀석이 말로 어른들을 온돌 위에 끌어당겨 놓은 것이다. 한 무리의 어른들이 나를 둘러싸고 얘기를 들었다. 나의 큰 외삼촌도 몇 마디 듣다가 갔다. 그때 큰 외삼촌은 어떤 것이든 기회를 찾느라 두리번거렸고, 그의 누나, 그러니까 바로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우리 집안 모든 사람에 대해 무시하는 티를 내었다.
세째 외삼촌은 그러지 않았다. 셋째 외삼촌이 결혼하던 날도, 나에게 구라를 말해주러 오라고 청했다. 밤에 갔다. 방안은 온통 빨갯다. 커튼도 빨갛고, 이불, 요도 빨갛고, 셋째 삼촌댁도 빨갛다. 누가 나를 등을 밀어서 들어가게 했다. 일단 말을 하는데 셋째 외숙모가 나에게 과일 사탕을 한주먹 집어주었다. 누구인지, 다시 내 등을 밀었다. 가라, 셋째 외삼촌 결혼을 방해하지 말고.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마을에서 유명해졌다. 모두 말하기를, 호우(侯)씨네 다섯째 아이 정말 대단해, 구라도 할 줄 알거든. 소문이 큰외삼촌에게까지 들어갔고 큰 외삼촌은 입꼬리로 "흥" 하고 비웃었다.

소학교에 들어가자, 학교 친구들이 나에게 구라를 말해달라고 졸랐다. 상급생,하급생모두 나에게 구라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상급생 누군가는 겨울에,  산 언덕 아래로 끌고 갔다. 바람도 피할 겸, 나는 누워서 말했고, 그도 누워서 들었다. 말 안 듣고 말썽만 부리는 지엔 파리(尖把梨)는 방학을 하자 나에게 구라 한마디 해달라고 했는데 안 할 수 없었다. 안 하면  당장 때릴 태세였으니까. 나는 키가 작아서 그를 때릴 수 없었다. 그에게 과장하고 이리저리 덧붙여, 구라를 이용해서 슬쩍 그를 욕했는데, 그가 들어보더니, 낄낄 웃었다.

내가 구라를 잘 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에는 문화생활이 빈곤했다.
"무산계급의 문화적 혁명을 철저히 진행하라". 방송에서, 신문에서 , 도처에 모두 이런 말이 넘쳤다. 시골사람들은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무슨 뜻인지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구라(瞎话)에 대해서는 흥미가 많았다. 구라는 "지하 문학"에 속했다. 사람들은 공개석상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몰래몰래 구라를 말했다.

1979년이 되자, 나의 구라는 벽을 만났다. 그해, 9월3일 안산 인민 TV 방송국에서 류란방(刘兰芳)의 평서 <악비전>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나의 학교 진구 마 씨 성의, 마 무슨 량은 집에 라디오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피코우 진 어로장의 선원이어서 월급을 받았으며, 손이 커서 라디오를 살 수 있었다. 순수 농민 가정에서는 누구도 비싸서 살 수 없었다.) 마 무슨 량은 류란 방을 듣고 학교에 외서 자기 반 친구들에게 소리 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껄이는 것은 삼성으로 세게 내고, 런환마작 부분은  어찌어찌 내고" 하는 식이다. 그밖에 "김올술"과 "우고"같은 것까지 말하자 그는 순식간에 급우들을 사로잡았다. 매번, 학교가  끝나면, 마 무슨 량의 신변을 한떼의 사람들이 들러싸고 그의 말을 들었다. 방학을 하자 길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그를 줄줄 따라가면서 그의 말을 들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의 구라시대는 완전, 끝났다. 마 무슨 량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진정으로, 큰 바람을 일으킨 것은 류 산방이었다. 사람들 말이 그해에  라디오  구입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우리 집도 연말에 생산대에서 보너스를 나눠 주자, 작은 트랜지스터를 한대 샀다. 아버지는 매일 트랜지스터를 끼고 다니며 류 산방을  들었다. 그 당시 <악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편이 막 나왔던 때였다.

나는 아버지의 구라가 힘을 다하자, 빠르게 동화 책에 빠져들었다, 나는 당시에 학교에 들어가지 않아서, 글자를 몰랐고 동화책은 그냥 그림만 보았다. 동화책을 이웃집에 가서 보았는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을 뿐 감히 빌려달라고 할 수 없었다. 빌려다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글자가 매우 알고 싶었고, 동화 속의 이야기가 매우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시에 넷째 형이  소학교에 들어가자, 그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성가셔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 2모 (毛: 1元=10毛)가 있었다. 세째 형이 피코 우 진에 간다고 하기에 2모의 돈을 그에게 주고, 동화책 한 권을 사다 달라고 했다. 책을 사 갖고 왔는데 < 철도 경비원 >이란 책이었다. 내용은 하나의 영화 이야기로, 영화 속 사진으로 편성된 책이었다. 책이 시커멓고, 맘에 들지 않았다. 동화책은 1모 조금 넘었는데, 책을 사고 남은 돈 몇 푼을 세째형에게 감히 달라고 하지 못했다. 꽤 여러 날  동안, 그 시커먼  책을 들고 다니며 보았다. 보았자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당시, 나는 자주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았다. 밖은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빨리 크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자라면 혼자서 피코우 진에도 갈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예쁜 동화책도 살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조금 자란 다음에, 나는 피코우 진으로 "소풍"을 갈 수 있었다. 나는 매우 기뻤다. 자주 신화서점에 가서 동화책을 샀다. 책을 산 돈은 쓰레기를 주워서 생긴 돈이었다.

한 광주리, 쓰레기를 줏어다 팔고 그 걸로 동화책을 샀다. 어떤 때는 과일 사탕을 조금 사기도 했다.
피코 우 진에서 가장 익숙하고, 호감이 가는 곳은, 첫째, 폐품 수집상이고, 들째,  신화서점이었다.
나는 시커먼 동화책은 사지 않았고 간략하게 그려진, 그림책을 샀다.
이따금, 간절히 바랐다. 언제나 글자를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