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사범대학에 들어간 1982년, 나는 장사현 8 중학교, 고1이었다. 그해 섣달 그믐날, 내 이웃이자 소학교 동창이며, 어릴 적 친구인 퉁멍씨웅(童孟雄)이 급성 뇌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나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매일 새벽, 그의 모친은 걸어가면서 울기도 하고,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도 하였다. 그녀의 슬픔은 공기마저 변하게 해서 공기가 이상하게 짙고 무거웠다. 나는 정신이 멍해져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모친도 반드시 저렇게 상심할까? 머리가 다시 혼미해지면서, 환각이 떠올랐다. 문득 황홀해지면서 죽은 건 바로 나였다. 모친이 걸어가면서 울기도 하고,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통곡했고, 모친은 단지 내가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주의했다. 병을 감추고 치료를 꺼리지 않았고, 함부로 대로를 건너지 않았고, 따지거나 싸우지 않았으며, 내 목표 범위 밖의 일은 하지 않았다. 내가 최대한 노력하면, 모친이 퉁멍씨웅의 모친처럼 되지 않고, 영원히 좋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나는 8중학교에 다닐 때, 성적이 그런대로 좋았으나, 수학과 물리가 대체로 떨어지는 편이었다. 나는 문과로 유명한 9 중학교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누나도 9 중학을 나왔고 하물며 부친도 9 중학을 졸업하지 않았던가? 9 중학교에 가서도 나는 바로 문괴반 수석을 독점했다. 나는 학생회 주석을 담당했고, 잇달아, 장사현 문예 강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모친을 확실히 꿀통에 여러 차례 잠기게 했다. 수능시험 7일 전에, 나와 교장은 같이 공산당 입당 선서를 했다. 한 명의 고등학생으로서 특별한 영예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능시험(高考)은 다리를 다쳐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시험을 치는 바람에, 꿈에 그리던 북경대학 커트라인에서 딱 2점 부족했다. 나는 뚱딴지같이 누나가 다녔던 호남 사범대학에 들어갔는데 전공은 정치과였다. 모친은 의외로 이일로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기뻐했는데 내가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1984년 사촌형이 익사한 후부터, 안전이 최고였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직장에 다닌 20년 동안, 나는 여러 차례 남쪽으로 내려 가든지, 북쪽으로 올라가든지 할 기회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모두 포기했다. 장사(长沙)에 남는 것, 모친 옆에 남는 것이 나의 숙명이었다.
※ 중국에서 중학교는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와 같은 의미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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