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 시대는 전 세계가 한 울타리 같이 되어, 교류는 빨라졌고, 정보는 활발히 통한다.
하지만 언어는 오히려 강세와 약세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상업 왕래, 무역 전개, 국제업무, 이런 것들은 매개가 없으면 안 된다. 또한 직위 초빙, 직무평가 역시 언제나 언어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언어 패권의 배후에는 지나간 영광 혹은 현재의 실력이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모어(母語)는 다른 언어 사람들의 것이고 그것들은 영원히 단지 도구일 뿐이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모어의 따듯함과 속성, 비유를 하는 감각, 암시하는 말, 역설적으로 하는 말 혹은 겉으로는 칭찬하며 속으로는 억누르는 말을 깊이 느끼지 못한다. 이런 모든 것이 한 개인이 모어에서 얻는 것이다. 어떤 말 한마디가 가슴이 뛰게 하고 갑자기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으며, 어떤 호소가 눈물이 솟아 흐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 해답은 모어와의 계약 안에 깊이 숨어있다.
이 점에서 볼때, 세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공평하다. 어떤 언어의 백성이든 자기 모어의 흐름에서, 헤엄 쳐 건너기, 놀이와 휴식, 임기응변, 도취되기, 시문 등을 읊기,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기를 번역을 통해 전파를 함으로써 서로 다른 언어의 사람과 함께 공동의 정신적이 풍요를 말할 수 있다.
시가(詩歌)로서 증명하자면 <루바이아트>에서 페르시아 대시인 오마르 카얌은 때 맞춰 즐기라고 노래하였고, <고시 19수>에서는 한대(漢代) 중국인의 생명의 덧없음을 탄식함으로 서로 통하는 철학적 질문을 꿰뚫었다. 중세 이태리의 페트라르카는 사랑하는 사람 로라에 대해서 14행 시로 속 시원히 이야기했고, 당나라 말기 낙양성에서 이상은(李相隱)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연인에게 칠언율시를 써 주었다. 혹자는 의미 깊고 신선하다 하고, 혹자는 흐리멍덩하게 전개된다고 하지만, 모두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다..
다른 언어에 대하여 서로 존중해야 하고, 교류하는 중에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분명히 드러내고 즐겨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언어의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모어에 대한 뜨거운 사랑, 엄마의 혀 끝에서 나온 뜨거운 사랑은 당연히 개개인의 책무이고, 그의 윤리적 기점(基点)이다. 사람은 누구나 넓은 세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으며 모어는 그의 출발점이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뻗어나가는 생명의 좌표이자 기축선 위에서 변하지 않는 원점이다.
우리의 모어를 사랑하자. 애인처럼 아끼고, 다이아몬드처럼 갈아서 빛나게 하자.
모어가 우리들의 슬픔과 기쁨을 더욱 잘 호소하고, 우리가 동경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자.
이런 모든 것을 내 시인 친구가 이렇게 썼다.
모어의 처마 밑에서
우리는 탄생하고 성장했으며, 사랑하고 꿈 꾸었다.
모어의 보살핌 속에서
우리의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져나가고, 행복은 반짝인다.
원재, 2015년 4월 10일 (광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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