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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모어(母語)의 처마 밑에서; 在母语的屋檐下(一) : 彭程

소년 시절 친구가 바다를 건너 친지를 방문하러 왔다. 여러 해 동안 못 보았던 터라 우리는 밤새도록 술을 들며 긴 얘기를 나누었다. 80년대 중반, 복단대(复旦大学) 본과를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지 근 30년이 흘렀지만 영어의 유창한 정도는 모어(母語) 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우리는 고향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우리 고향의 방언에 대해 장시간 고정된 회제로 삼았다. 갑자기 재미가 들어, 우리 두 사람은 아예 고향 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처럼 방언을 말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대화 중 개별적 단어에 대하여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나는 얼른 보통화(普通话 : 북경 표준어)로 바꾸어 말했다. 상대방도 습관적으로 자주 한 두 마디 영어가 섞여 나왔다.

당시는 만약 외국인과 한자리에 있으면, 반드시 이런 정경 자체가 기이하게 생각될 그런 시기였다.
내 고향은 허베이 성( 河北省) 동남평원인데, 방언 중 에는 생동감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시간을 표시하는 어휘로 정오를 "晌午(상오 : 점심때)"라 하고, 오전을 "头晌(두상 : 오전)"이라고 했으니, 오후는 过晌(과상 : 오후)이 되는 거고, 저녁 무렵은 擦黑(찰흑 : 저녁 무렵)이라고 한다. 동작을 표현할 때는 미끄러지는 것을 "出溜 (출류 : 미끄러지다)"라 하고 정리하는 것을 "拾掇 (습철 : 수습하다)", "내가 어느 집에 가서 머리를 긁었다"라고 하는 말은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고, 빨리 떠나다, 라는 말로 남의 집 문 앞에 가서 머리를 들이밀고 살피는 것을 방불케 한다. 어떤 일에 불편함을 느낄 때 "腻味(귀찮다, 싫증 난다), 硌应이라 하고, 어떤 사람이 거칠고 경솔한 것을 말할 때, "毛躁(조급하다, 부주의하다)라고 하며, 상쾌하지 않은 것을 "磨叽(질질 끌다, 꾸물거리다), 대중없다는 것을 "不着调(확실하지 않다), 요령부득을 "瞎扯扯", "咧咧 "일을 두서없이 하는 것을 "着三不着两 (칠칠치 못하다)"라고 한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사투리 발음들, 대응하는 단어를 찾기 어려운 단어들이 있으나 덮어두기로 하자.

 

본래 하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다 보니, 이제 많은 방언을 잊어버려서, 의외로 지금은 선명하게 되살아나지 않는다.

희미한 가운데, 심지어 이런 말을 들은 때의 구체적인 정경이 떠오르면서, 눈앞에 말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단어는, 제일 처음 들은 것은 엄마가 벌써 수십 년 전에 말했던 것인데 ; 그 말은 고령의 고모가 했던 말인데 ;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시골에서 어떤 고집불통 홀아비 영감이 했던... ,

 

친구는 감개무량했다. 정말 속이 시원했고, 오늘 밤에 얘기 한 고향 말이 과거 몇 년 동안 했던 말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이 화제로 인하여, 자연스레 오래전에 있었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한 단기 훈련반에서 각각 다른 성(省)에서 온 학생들에게 일차 친목활동 중, 각자 고향 방언을 써서 어떤 동작, 기분, 상황을 묘사하게 했다. 오월(吴越: 오나라 월나라가 있던 지역) 방언은 따듯하면서 부드럽고 매력적이었고, 동북방 방언은 유머가 있고 친화적이었으며, 섬서 방언은 점잖고 소박했고, 호북 방언은 강인하고 패기 있었고, 파촉 방언은 활달하고 해학적...

관중 겸 연기자들은 어찌 웃었던지 몸을 앞뒤로 흔들었고, 웃음소리는 여러 차례 파동 쳤다.

 

이건 정말 얻기 어려운 체험이었다. 언어는 통상 사유(思维)의 수단으로서, 구체적인 대상, 객체, 예를 들어 인물, 사건, 풍경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표현, 생활 관념과 사고방식에 대하여 묘사하지만, 그 자체가 관찰이나 분석의 목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언어가 목표가 되면 바로 원래 그것이 간직하고 있던 풍부한 아름다움과 특이한 매력을 발현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의 두 눈동자와 비슷한데, 통상 외계 만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쓰지만 그 자체가 예술 묘사의 대상이 될 때도 매우 많은 명작이 된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罗中立(라중립 : 중국 중경 출신 화가)의 <아버지>는 비범한 매력과 깊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눈동자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떨어질 수 없다.

전자는 신비한 미소 속에 어느정도 은은한 야유와 어느 정도 애매한 기대를 나타내어 어떤 인생의 수수께끼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후자는 세월의 풍상이 엄혹하게 새겨놓은 얼굴, 슬프고도 멍한 시선 뒤에 또 어떤 비열한 갈구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광선이 비추는 곳은 사물이 밝게 생동한다.

언어, 그것은 생활을 거침없이 투사하는 광선 다발이며, 번잡하게 아른거리는 색깔과 파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