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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13 끝,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바로 그 순간 나는 심리적으로 장모와 무슨 영영 헤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전생에 아천에서 살았었다면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보시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금생을 살아가면서, 긴 세월을 장모를 위해 일을 하고 또 끝마쳐야 하는가 보다. 나는 장모가 아천에 돌아가면,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임을 알고 있다. 친척 되는 사람들이 그녀를 보살펴줄 테고, 그건 그녀로서는 오랜동안 익숙한 일이라 자유롭고 편안할 것이다.

장모가 세상을 떠났다. 관은 진작에 처마 밑에 잘 보관해 두었으니 쓰면 되었고, 작은 거리에서 그런대로 융숭하게 장례를 치뤘다. 그러고 나서 장모 집 자경지에 안장했는데 내가 가서 장례에 참여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내가 가더라도, 장모를 위해 한차례 성묘하는 것 외에는 없고, 다시는 우리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런 일련의 인과를 여기 썼는데,  나와 장모의 이런 인과 가운데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나 하는 것은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다. 인과 자체가 맞고 틀리고 가 없고, 기껏해야, 이때 이곳에서, 이런 상황 아래 이런 방식으로 해결한 인과였을 뿐이다.  우리의 생명의 존재, 우리 몸과 마음의 존재를 포함해서, 결국에는 일종의 물질괴 자연의 존재로 귀결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인과는 결국 일종의 물질 현상이며 자연현상이다. 인과는 단지 일종의 상응성과 필연성을 갖추고 있을 뿐, 옳고 그름과 이해득실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 사라지고, 꽃이 피고, 꽃이 지는데 무슨 맞고 틀리고 가 있겠는가?  이것은 동풍이 옳있는가 서풍이 옳았는가 묻는 것과 같다. 옳고 그름과 이해득실로 말하면 단지 나의 마음과 인식이 서로 비교하여 따지고 염려하는데서 비롯되었으니 이는 별도로 논해야 한다.

도의(道義)와 불법(佛法)에 의하면, 나의 금생을 살아가는 인과(因果)는 심령이 유전함을 거쳐 왕생(往生))에서 전해지고, 넘어 와 계속 이어져 온다. 이 의미는 인과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함의이며 인과를 견디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리(菩提 바른 깨달음)를 연구하고 애써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동풍이 서풍을 누른다 혹은 서풍이 동풍을 누른다, 네가 나를 조종하려 한다 또는 내가 너를 바꾸려 한다 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무슨 인과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일생동안 감당해야 하는 일은 결국은 바람이 구름을 훑어 버리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인과가 마음 안에 남아있다면 이것이 바로 불법에서 말하는" 万般不去惟有随身"(모든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업에 휘말리기만 할 뿐)이다. 내세에 계속해서 업을 치루어 내야  하는데 그게 무슨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불법은 이렇게 말한다. 인과는 완성하는 중에 깨닫게 되고, 깨닿는 중에 인과가 완성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는 둘이요, 둘은 하나인 것이다. 수보리는 바로 계정혜(戒定慧)를 수행하는 일이다. 지혜가 있으면 혼자서 지피지기 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을 비출 수도 없고, 자기를 비추지도 않는다. 지혜력도 있고 또 정력(定力 :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혼자서도 인과 사이에 빠져버리지 않게 될 수 있다. 게다가 혜력과 정력이 있으면, 혼자서도 계(戒 : 스님이 지키는 품행)를 가질 수 있으며 계를 가질 수 있으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인과를 해결할 때가 되면 일의 상황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는데 마음속의 얽힘이 일시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사람은 개운해지고, 마음이 원만하고 차분한 상태가 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금 이런 것들을 쓰는 이유가 하나 있다. 그 이유는 당초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내가 처음으로 문학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비록 몇편의 소설을 썼지만,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문학작품을 썼고, 또 보잘것없는 자료들을 장구한 세월 동안 축적하여 살을 베어내는 고통을 받았고, 머릿속이 먼지로 가득 찼었다. 나는 나중에 한 편의 장편소설을 쓰려고 준비했다. 거기다 소제목을 <집집마다>라고 붙이고 그중 꼭 장모와 관련된 내용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당시, 나는 도의와 불법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경전을 읽었고 법문을 들었고, 체험해 보기도 하였다. 나는 바로 장편 소설을 보류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나중에 어느 때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중에서 실마리 되는 것들을 여기에 썼다. 그렇게 당초에 남겨두었던 하나하나의 생각들을 정리한 셈이다.

히지만 지금 회상하니 당초에 쓰지 않았던 것이 천만 다행이다. 만약에 썼더라면 대체로 형이하적인 옳고 그름, 이해득실, 슬픔 기쁨, 만나고 헤어짐으로 가득한 상투적인 글이 되었을 것이고 결코 대승적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