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엔지니어가 셀카봉을 발명했는지 모르겠다. 이 간단하고 작은 기구는 모든 여행자를 정복했다. 해변, 원림 정원, 큰길에 있는 육교, 박물관 홀, 어디를 가든지 셀카 찍느라고 야단들이다. 어깨에 메는 자루 가방에서 셀카봉을 꺼내 죽죽 잡아 빼면서 그 꼭대기에 휴대폰이나 작은 카메라를 장착한다. 그리고, 자기가 각색한 웃는 얼굴을 향해서 "찰칵" 소리가 난다. 이건 고상한 사람이나 보통 사람이나 모두 즐기는 유희인데 큰 인물이라도 똑같이 열중한다. 인터넷에는 한국 대통령 박근혜가 셀카봉으로 사진 찍는 장면이 떠돌아다닌다. 이것이 처음 나왔을 때, 영리한 상인은 이 작은 기구가 거대한 시장을 가질 것이라고 틀림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셀카 찍는 재미가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리라는 것을 예측했을까?
늦게서야 나는 알게되었다. 대부분의 휴대폰에는 모두 셀카 기능이 있었고, 셀카봉은 일종의 보조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 휴대폰으로 셀카 찍는 것을 본 것은 복잡한 음식점에서였다. 옆 테이블의 남자가 왼손으로 열심히 머리 매무세를 가다듬더니, 얼굴로는 계속 각종 스타일의 표정을 지으며 오른쪽 팔을 최대한으로 뻗어서 손바닥 안에 있는 휴대폰으로 자기를 조준했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의심이 더럭 들었다. 이 친구가 돌았나?
나와 같이 식사를 하러 온 친구들이 일깨워주어서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이것이 정찬을 먹기 전에 가벼운 전채를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지금은 더욱 좋아져서 셀카봉이 우리의 팔 대신, 원하는 만큼 한바탕 길어진다.
나는 방금 인터넷에서 한장의 사진을 보았다. 사람들이 빽빽한 해변 모래사장에서 어떤 비키니를 걸친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셀카봉을 다리 사이에 넣어 뒤를 향해 뻗치고 자신의 빼어나게 예쁜 엉덩이 부분을 찍고 있는 사진이다. 모래사장에는 틀림없이 손에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한가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을 자극하지 않게 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즉흥적으로 자기의 각종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데, 인터넷이란 일종의 시각적 공공(公共) 공간이다. 무수한 블로거가 이 공간에 등록되어있는데, 블로거들은 저마다 한 무더기의 사진 또는 몇 개씩 되는 동영상을 벼룩시장에서 좌판 펴듯 깔아놓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 주는 것은 긴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자기가 찍은 사진을 화면에 등장시키는 일이 매우 가볍고 쉬운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화면에 등장한다는 것은 이미 더없이 큰 영광이며 신기하고, 장중하기 까지 한 일이다. 신문기자가 비싼 카메라를 들고 플래쉬를 계속해서 터뜨리며 "찰칵찰칵"찍어대고, 개인의 형상이 다음 날 신문 지면 한구 퉁이에라도 실리게 되면 그걸 찬탄하는 낭랑한 노랫소리(?)는 최소한 삼일은 간다. TV 기자는 훨씬 더 위대하다. 그들이 어깨에 멘 촬영기는 위풍당당한 화전 통(火箭筒 : 로켓 발사기)이다. 촬영기는 멀리서도 어떤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여러 각도의 영상을 제공한다. 그런 다음, 방송국 책임자가 이 인물의 형상을 수천만 집의 안방 TV에 발사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 알 수 있는데, 화면에 나온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고 기적이다. 어느 말단 공무원이 사전에 밤중 뉴스 시간에 5초간의 한 커트가 나온다는 것을 사전에 통보받았다고 하자. 그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이 생각나는 모든 친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리고, 얼른 TV 앞에 앉아 기다렸다가 그가 화면에 영광스럽게 왕림하는 것을 보라고 호소할 것이다.
현재 셀카봉은 사람들의 "촬영기 숭배"를 엄청나게 깎아 내렸다. 그런 영상 부호는 별 무슨 특권이라고 할 것이 없어졌고, 우리 스스로가 모두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옛날 목에 힘주던 기자들이 졸지에 추락한 것이다. 셀카봉이 생겨남으로써 작고 정교한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 망은 잠깐 사이에 일체를 해결해버린 것이다.
기술의 발명은 불가사의하게 우리 생활을 돌려 세웠다. 사진기와 촬영기는 사람의 시야를 크게 열었고, 세계를 보게 하고, ----그렇게 큰 세계를 우리 앞으로 밀려들게 했다. 거기에다, 셀카봉은 하나의 그렇게 큰 세상을 얼굴 앞으로 당겨 오도록 시도했다. 우리들을 돌아보자 ----이제 우리들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단정하고 장중하거나 혹은 웃기는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는 것의 주체가 외부로 확장됨에 따라, 눈알이 데굴데굴 마구 돌아갔고 온 세상을 향해 시선을 던지려고 욕심내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지도를 보았을 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우리가 통상 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하나의 거리, 건물 한동, 하나의 산봉우리 정도인데, 갑자기 전 세계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종이 위에 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파노라마는 18세기 말에 유럽에서 처음 나왔는데 이것은 넓은 시야의 형성을 의미한다.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 떠오르면, 얼마든지 원경을 볼 수 있고, 성당의 둥근 지붕에 올라가면 사방의 도시를 그릴 수 있다. 당시의 회화가 거대하고 무한한 것을 숭배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일념으로 세상이 눈 밑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야심에 사람들은 점점 지쳐버렸다. 세계는 완전하게 볼 수 없고, 하늘밖에 또 하늘이 있는데, 어느 누가 하늘 끝이 어디인지 알겠는가?
지금은 몸을 돌려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된 것이다. 세계의 직경이 얼마나 큰지 막론하고, 화면에 등장힌다는 것은 바로 자기를 중심에 놓는 것이다.
나는 최신 동영상을 하나 보았다. 몇명의 초등학생이 녹화한 또래 친구들 사이의 침 뱉기 싸움이다. 그들은 동영상에서 표정이 생동감 있고 익살스러웠고, 침을 밭으면서 상대를 약 올리는 박정한 말을 했다. 가위처럼 손가락 모양을 만들기 등등. 이 아이들이 이렇게 시각언어의 편집에 익숙했다. 셀카봉 하나가 하나의 표현 무대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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