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갑자기 맑았다가 비가 왔다가 했다. 하지만, 맑았든 비가 오든 푸른 하늘과 흰구름은 언제나 맑고 깨끗했다.
편단산에서 몰려온 비는 맑고 깨끗했다. "뻐꾹뻐꾹" 새들이 어디선가 즐겁게 지저귀니 사람들 기분도 덩달아 바람과 햇살처럼 맑고 상쾌해졌다.
나는 우리 아천을 배경으로 연대순의 소설들을 쓰려고 계획했다. 그 소설들에 일정 기간 동안의 농촌 생활의 변천을 기록했고, 아천을 이화둔과거시험장(梨花屯乡场)이라고 불렀다. 그중 한 편에 <장진주(将进酒 : 권주가)>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모를 심고 채소씨를 심는 걸 도와준 시골 이웃사람들을 초대했을 때, 정경을 그렸다.
벌판을 집집마다 분할해서 나누어 준 후, 한 가구의 농사일은 사실 이웃들이 서로 돌아가며 도와주면서 경작했다. 그 정경은 예전의 호조직(互助織;서로 돕는 조직)과 비슷했다. 그런 식으로 서로 돕는 가운데서 나는 따뜻하고 친절한 시골 사람들의 풍부한 인정미와 따뜻한 시골 인심을 느꼈다.
모를 심는 시절, 저녁 먹을 때가 가까워 오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논은 이미 기적처럼 광대한 신록(新綠)으로 떠오르는데 그것은 그 어떤 회화로도 그려낼 수 없는 생명의 녹색이다. 멀리 있는 밭두렁 너머로 이웃집 작은 처녀가 오고 있는데 누렁이 한 마리가 그 뒤를 촐랑촐랑 따라오고 있다. 바로 장모가 그 애를 시켜서 일을 도와준 이웃 사람들에게 모내기 술을 먹으러 오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자 서로 같이 가자고 하며, 논 물로 손과 발에 묻어있는 진흙을 휘적휘적 씻어내고 풀이 푸릇푸릇 새로 돋아난 논두렁 위로 연이어 올라서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정경은 사람들에게 저도 모르게 시경에 있는 시의(詩意)를 떠올리게한다.
"十亩之间兮, 桑者闲闲兮, 行与子归" (십묘 사이구나, 뽕따는 아이는 여유롭기도 하네, 일을 끝냈으니 돌아가세)"
모두 하루 종일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지금 갑시다, 함께 갑시다 말한다. 사람들이 마당에 들어서자 장모는 벌써 아내와 딸과 함께 돌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집안의 주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이 때야말로 바로 최고로 장모의 체면이 살아나고 위세 당당해지는 시간이다.
술과 안주는 완벽히 준비되었다. 꼭두새벽같이 작은 거리에 나가서 사 온 갓 잡은 돼지고기를 불이 활활 붙고,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뜨거운 솥에 볶아낸다. 시골 친척들이 말하는 소위 "등잔 둥지(灯盏窝)"라는 가운데가 움푹하게 볶는 솜씨를 발휘해본다. 나는 살아오면서 감사의 뜻으로 한턱내는 호텔과 음식점에 많이 가보았지만, 모두 모내기를 끝내고 먹는 음식만 못했다. 음식 외에도 담배, 술, 차를 탁자 위에 놓는데 술은 내가 외지에서 가지고 온 병에 들어있는 술이고, 담배도 질이 좋은 것이다. 거기다 차도 쓴 맛이 적고 은은하게 단 맛이 나는 좋은 차이다. 주인집의 접대는 당연히 풍성하고, 친절하며, 또 세심하기도 하고 예의범절에도 맞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는 회의와 비슷한데, 설령 아주 작은 부서에서 하는 통상적인 회의라도 최고의 회의 규격을 참조하고 모방해야 하는 것과 같다. 종결이 있어야 하고, 덧붙여 접대 역시 실력이다. 접대는 생산력이며 이것은 생활에 기원하면서 생활보다 높다.
해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마치 처마에 커튼을 쳐놓은 것처럼 줄기차게 쏬아졌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적합할까? 제일 적합한 것은 서로 잔을 돌리며 일상사를 얘기하는 것이다. 시작할 때 몇 잔 마시고 나면 이웃들의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금세 열렬한 말과 그걸 휘감아 드는 빗소리가 함께 어우러지게 된다. 당연히 여차저차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한다. 세상살이가 서로 다르니 사람들은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게 된다. 58년도 "반만산"(反瞞産: 대약진운동 초기, 생산량을 속이지 않기 운동), 조지수가 사람을 때려죽인 일, 그의 군복 외투와 긴 담배대가 모두 다른 농사꾼 수중에서 나왔다는 것, 등등 화젯거리를 먼저 말한다. 오래지 않아 그해의 업무팀(工作組)에 대해 말이 나오면, 도시에서 온 그 처장에 대해 말하고 거기다 농민 학원에서 온 여인에 대해서도 말한다. 농사꾼에 대하여 매우 엄격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수상하다. 이어서 다시 생산대(生産隊)가 사사로이 양식을 배분했다는 말이 나오고, 자리에 있던 꽤 많은 사람이 자기도 생상대에서 나눠 받아야 할 몫이 있다는 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농민이 그해 생산대에서 화학비료 한 포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계속 누가 가져갔는지 조사해도 범인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건 자기가 훔쳤다고 한다. 비록 지나간 일이라 다시 문제 삼기 어렵지만 지금 말을 다해버렸다. 모두 인정하기를 말은 맞지만 김은 샜다. 이때부터 응어리가 풀린다.
옛 시인이 시(詩)에서 말했다. "산뽕나무 그림자가 춘사에 흩어지면 집집마다 술 취한 사람을 부축하고 돌아오는구나." 이 시기는 시골 이웃 간에 모내기 술을 낼 때이고 그런 좋은 시기를 그린 것이다. 이것도 내가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본 가장 행복한 정경이다.
하지만 일이 비록 이렇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아런 일체가 장모로서는 단지 겉치레에 불과하다. 나도 장모가 만든 이런 겉치레를 지지하는데, 그건 바로 투자자와 운영자 같은 것이다. 이것은 내가 시골인심과 인정을 직접 체험하게 한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내가 만약 외지에 나가서 서둘러 돌아오지 않거나 너무 늦게 돌아오면, 장모는 금세 차가운 표정이 되어 노려 보거나, 멸시하듯 고개를 홱 돌리며 가버리고, 심지어는 며칠씩 나와 눈도 맞추지 않는다. 거기다 깊은 밤 홀로 문턱에 앉아 '내가 진작 굶어 죽었어야지...' 라고 말한다. 하지만 겉치레 일이고 기껏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불과한데 어째서 자기 자신은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지?
한 해가 지나고 가을이 되자 우리 집에서 수확한 유채를 잘 말려서 키질을 하고 나니 기껏 광주리 등짐 하나에 불과했다. 장모가 이 걸 메고 양곡창고에 팔러 갔는데, 창고지기가 생트집을 잡으며 수매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다른 사람을 시켜서 가서 물어보게 하니 창고지기가 그제서야 장모의 광주리 한짐 유채를 수매해주고 매수금액 18元을 주었다. 장모는 그 돈 중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친척들을 대접하기 위해 술 한병을 샀다. 장모는 또 나머지에서 2元을 꺼내 딸애에게 과자 사먹으라고 주었는데 딸 아이는 장모의 그 돈이 어렵게 번 돈이라는 걸 알고 한사코 받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내가 딸아이에게 외할머니가 주신 돈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돈이라고 말하자 딸 아이는 그제서야 손에 받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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