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세월은 여전히 흘러갔고, 비록 한동안 지연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연말에 잡는 돼지와 농사일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온통 장작불과 모닥불 연기로 그을린 기와지붕 아래에서 떠나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아천 중학에서 교사들을 위한 사택을 지었는데 나와 아내에게도 방이 몇 개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새 숙소로 살러 들어갔다.
<詩> : "伐木叮叮(벌목하세 쿵쿵), 鸟鸟嘤嘤(새들은 짹짹), 出之幽谷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迁于乔木 (높은 나무로 옮겨앉네)" - 시경 소야벌목에 나오는 축하 용어.
좋은 데로 가게 되어 모두 부러워하는데, 아내와 딸 애가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장모를 위해 방을 준비하고, 장모에게 우리와 같이 이사 갈 것을 권했다. 장모는 계속 어두운 표정으로 있었는데, 그건 묵시적인 승낙이었다.
하지만 장모는 새 집으로 이사간 후, 오래지 않아 역시 그녀의 옛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장모는 아내에게 원인을 확실하게 말했다. 그것은 이 집에서는 그녀가 주인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원래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이 생기면 모두 의논해왔지 않는가?
장모는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무슨 근거가 있기에?
아내가 내게 말한 것은 장모는 우리에게 열쇠를 갖고있지 말고 전부 장모에게 달라고 분명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문을 들어가고 나갈 때 쓰는 열쇠를 한 사람이 한 개씩 갖고 있고, 각 방 열쇠는 벽에 걸어 놓았다. 각 방은 사실 잠근 적이 없었고 이외에 다른 열쇠는 없다. 장모는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식구들에게 열쇠를 모두 자기에게 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장모밖에 없었다. 그건 마치 공증서나 무슨 결재 도장을 달라고 하는 것이나 같았다. 자기 혼자 관리자이기 때문일까? 이건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나?
최근 몇년동안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상황 아래서 나는 장모의 속마음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시험해 보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나는 장모의 속마음을 시험해보는 동시에 역으로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나의 이런 느낌이나 생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내가 지나치거나 편향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도하고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이런 시험을 통해 장모의 그런 외골수적인 속 미음이 어떤 때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뜻밖에 이처럼 고통이 심하고, 마르고 왜소한 체구로 그처럼 독단적이고 거대한 욕망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나를 한차례 깜짝 놀라게 했고, 크게 놀라고 난 다음 장모에 대한 연민이 생겨났다.
어떤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는가? 사람의 마음에 깊은 낙인을 찍을 수 있는가?
이때 나는 일았다. 장모 마음 속에 찍힌 낙인과 낙인이 그렇게 깊이 찍혀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가 계속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장이 되고자 했고 결국 살아있는 자기 마음속의 가장이 된 것임을.
이런 낙인은 그녀가 넉넉한 생활을 추구하고 향유하게 하지 않았고, 그녀의 일생을 왜곡되고 상처받게 했다.
우리가 새 교사로 살러 들어가자 시간은 자연스레 흘러갔고 또 끝도 없었다.
오래지 않아 딸애는 고등중학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아천중학에는 그사이에 고등중학반이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펑강현성으로 진학시켜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구이양(贵阳 : 구이저우 성의 성도)으로 이사 가야 했다. 나는 1982년 이미 성(省) 작가협회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때는 구이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아천에 있고 싶었는데 세월의 변천을 보고싶기도 했고 당시 농촌생활에 마음이 끌리기도 해서다. 그래서 관련기관에 나를 3년간 아천 부 구역장으로 배치 해달라고 했다. 나는 1964년 귀주 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이후 펑강에 가서 살다가 1985년이 되어 다시 식구들과 구이양으로 돌아왔으니 대략 21년만이다. 우리가 구이양에 갈 때, 장모는 우리와 같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장모를 구이양으로 모셔오기로 결정했다. 원래 우리 식구가 넷인데 현재 우리 세사람만 구이양에 있고, 장 모 혼자만 아천에 남아있었다. 먹고 입는 것은 걱정이 없다지만 어쨌든 걱정되었다.
봄이 되면 그 박새의"꾸이꾸이양"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은 당연히 밤의 심연에서 들려오지 않는가? 가을이 되면 끝없이 내리는 가을비가 우리 집 기와지붕을 적시지 않는가? 또는 한낮에 태양빛이 환히 비추는데 들판을 차를 타고 달릴 때 밭에 있는 겨울을 난 보리싹이 눈에 들어온다. 또 어둠이 사방에 깔리면 거무스레한 산 언덕들이 차창 앞으로 보이다가 휙휙 뒤로 사라져 버리고, 등불이 하나, 둘, 황혼 녘에 밝게 켜지기 시작하는 걸 본다.
이럴 때, 언제나 나도 모르게 생각이 떠오른다. 아천에 남아있는 장모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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