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양에 돌아온 다음, 오래지 않아 기회와 인연이 이끄는 대로 나는 우리의 전통문화의 노정(路径 :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지나온 세월의 깊은 곳을 향해, 나의 생명과 인생의 깊은 곳을 향해 점점 걸어 나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충효 절의(忠孝节义)와 예붕악괴(礼崩乐坏 : 노예 사회에서 예절이 붕괴됨) 외에도 불법(佛法)과 도의(道义)가 있음을 알았다. 동시에 우리의 의식 속에 여러 가지 역사의 낙인이 찍혀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영원불변의 지혜가 있고 원만한 본성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우리 신상에 지니고 있는 안과(因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마음과 인식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인과와 수보리(修菩提: 부처의 제자. 바른 깨달음을 의미)의 함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 속에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의 인과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이다. 그래서 늦지 않게 장모를 모시러 가기로 했다. 금생에 이 인과를 해결하려고.
내가 아천에 갔던 그해,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데릴사위가 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내 의식 위에는 전혀 낙인이 찍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장모를 모시러 그 집에 가면 장모의 마음에는 건너지 못할 깊은 계곡이 있을 것이다. 집이 무엇인가? 혈연과 재산이 아니겠는가? 장모가 만약 자기 아들을 따라간다면 그건 명분도 떳떳하고 말이 맞는다. 하지만 역으로 장모가 데릴사위를 따라나선다면 명분에도 안 맞고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인생 실패와 다름없다. 그래서 말하기를, 사람은 일종의 문화적 부호(符号: 표상)이고, 사람은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자기 생각의 노예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나도 알다시피 장모가 홀로 시골에 남게되면, 우리가 그녀를 내버린 꼴이 되어 장모 역시 체면이 서지 않고, 시골 사람들이 앞 뒤에서 쑥덕거릴 테니 장모도 그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장모를 모시러 가면 이런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장모는 당연히 우리와 같이 와야 한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반드시 내가 모시러 가야 한다. 시골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장모를 모시러 갔다는 것을 보게 해야 한다. 만약 아내 혼자 모시러 간다면 장모가 올지도 모르지만, 이 두 가지의 인문 윤리의 함의는 서로 크게 다른 것이다.
그래서, 어느 가을 날, 나는 일부러 근사한 승용차를 빌려서 아내와 함께 아천으로 장모를 모시러 갔다. 우리는 봉강(凤岗) 현성에서 하루 머물고 둘째 날 정오에 아천의 작은 거리 즉 내가 말하는 이화둔 과거시험장에 도착했다.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간이었다. 이웃 시골 사람들이 모두 작은 거리에 있어 내가 장모를 모시러 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맞은편에서 말하는 걸 들었다. "어라, 자네들도 허쓰광(何士光) 보았지? 전과 똑같아."
그렇다, 고향의 바위를 보아도 말없이 서있는 게 전과 똑같고, 편단산 역시 검은 산등성이가 누워 있는 것이 것이 전과 똑같다. 단지 세상을 살아가는 뭇 중생들이 저마다 온갖 걱정을 품고 이렇게 거리를 오가는 것 뿐이다.
장모도 긴 말 없이 바로 아내와 함께 차에 올랐다.
여전히 시인은 따져 묻는다. 인생길에는 멀고 가까운 머물 곳이 있는데 귀로는 도대체 어디인가?
내 심경을 말한다면 그때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이 명심 견성(明心见性 ;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자기의 본성을 발견하는 일) 하면 인연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는 헛된 마음을 알고, 자기의 영원 불변의 진짜 본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본래 떠난 곳도 없으니 따로 무슨 돌아갈 일정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장모에 대해서 말해보자. 차가 덜커덩 덜커덩, 치엔 베이(黔北) 평야 달려 위창(余庆)을 지나고, 메이탄(湄潭县)을 지나고, 쭌이(遵义)를 지나 구이양을 향해 가자 더 이상 가면 안되었던지 장모는 돌아가자고 했다. 다시 아천으로 가자고.
그래서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여정이 된 것이다.
세월이 나날이 변함에 따라 장모는 요즘에는 더 이상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구이양에서 지낸 나날, 장모는 오히려 자신을 원망하더니 이윽고 원망이 아내의 신상으로 옮겨갔다. 얼마 안 되어 장모는 아내가 조그만 상자를 잠그는 걸 발견했다. 게다가 열쇠는 언제나 아내 신변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주인 노릇을 하려는 것으로 여겼다. 장모는 초조해하면서 단호하게 아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작가협회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재무 관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상자 안에는 영수증 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도대체 이것이 집주인 노릇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나 역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장모는 자신이 이미 늙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녀의 목관이 염려되기도 하고 도시 생활도 지겹고 해서 최후의 첫 번째 도박을 한 것이다. 장모는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려 최종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여 아천으로 돌아가 자신의 생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장모가 아내에게 한두 번 아천에 데려다 달라고 재촉했지만 우리는 계속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장모에게 정말 완전히 생각을 굳힌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자 장모는 아내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우리가 장모를 데려다주지 않으면 남명하에 가서 투신하겠다고.
그것은 맞다. 하늘도 정이 있으면 사람과 같이 늙어갈 것이다. (天若有情天亦老 : 하늘도 정이 있으면 늙고 정이 없으면 늙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장모의 바램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일 때문에 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를 구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장모를 아천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장모가 떠나는 날, 한낮에 돌아오니 마당에서 차가 시동을 걸었다.
장모가 차 옆에서 말했다. "사위, 나 가네."
나도 차 한편에서 대답했다.
"어머니, 잘 가세요."
'중국 수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出鏡 1. (회면에 등장하기) : 南帆 (0) | 2021.02.25 |
---|---|
13 끝,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21 |
11,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16 |
10,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14 |
9,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