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농민들이 연말에 잡을 돼지 한 마리 키우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키우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과 비용에 비하면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 우리 집은 사료와 건초를 자주 장에 가서 사 와야 했고 만약 돼지가 병이라도 나면 우리 시골 유일한 수의사인 구 씨를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커다란 주사기 통까지 준비했고 주사 놓는 법까지 배웠다. 한편으로 돼지 등줄기를 쓰다듬어 안심시킨 다음 잽싸게 돼지 목에 페니실린 주사를 찌르는 것이다.
원래 연말이 되면 집집마다 돼지를 한마리 잡는데 돼지를 잡으려면 먼저 식품국에 얼마 안 되는 돈에 돼지를 바쳐야 했다. 그래야 도살 허가증을 한 장 주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도살은 불법이라 돼지는 몰수되고 처벌받게 된다. 그 당시 도시 사람들은 이렇게 하여 돼지고기를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강제로 농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산 것이었다. 농민의 시간과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의 비용을 합하면 본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입밖에 안되었다. 하지만 농사꾼은 어쩔 방법이 없었다. 식품국은 농민에게 고기를 공급해주지 않으면서 농민이 고기를 매매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농민들은 울분을 삼키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돼지를 사육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고기 매매가 개방되었고 우리 집도 사실 돼지를 기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만일 연말을 보낼 때 돼지를 잡고 싶으면 바로 돼지를 한 마리 사다가 잡아도 된다. 말하자면 장모가 연세가 많아졌으니 우리는 장모가 편안히 만년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서 였다. 나는 아내와 의논 끝에 장모에게 이제 더 이상 돼지를 기르지 말자고 건의하기로 했다.
"뭐라고? 돼지를 기르지 말자고? 식구들이 그럼 뭘 먹어?"
때는 저녁을 먹은 후였고, 장모가 마침 침대 머리맡 궤에서 담배잎을 뒤척이며 막 잡담을 하러 나가려는 참이었다. 아내가 조심스레 장모에게 우리 생각을 말하자, 장모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이렇게 물은 것이다. 표정이나 어투와 상관없이, 그것은 단호했고 의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장모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아내는 장모를 따라 나가 설득하고 싶어 했으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어달라는 것과 다름없는 물론 불경스럽기 까지 한 일이며, 이 표현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장모를 설득시키려한다는 것은 장모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장모 쪽에서 보면 영원히 그럴 리 없다. 장모는 가장인데 어찌 틀리며 또 틀릴 수 있겠는가?
장모는 우리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치를 따져가며 차근차근 얘기하려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가 버렸다. 그리고 바로 길게 소리쳤다. "나도 알아. 내가 어찌 모르겠어? 우리가 진흙을 파냈던 거 누가 알아주기나 해?"
우리가 만약 무슨 말이라도 했다가는 그녀의 화만 더 돋굴 뿐이었다. 그때 그녀는 성토하듯 말했다. "나도 알아, 그때 내가 고비를 넘기지 말고 굶어 죽었어야 했어...!"
오랜 세월동안 과장해서 하는 억지소리라는 화법이 있지 않은가? 일을 이치대로 따지지 않고 한번 억지소리를 하면 일이 커진다. 이건 우리 집안과 비슷한데, 두 갈래 노선의 투쟁과 같다. 장모가 인정하는 모든 것, 장모가 경시하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니까 바로 집행되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집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詩人)이 말했다. "취옹의 뜻은 술 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수지간에 있다.(醉翁之意不在酒,在乎山水之间也 - 당송 팔대가의 한명인 구양수의 시인데 요즘은 흔히 속셈은 다른데 있다는 단순한 의미로 인용된다.)
사실 장모의 마음은 돼지 한마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모가 신경 쓰는 것은 연말 돼지를 잡을 때, 가장으로서의 체면과 위세에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집집마다 울부짖는 돼지 울움 소리는 마당까지 들렸고, 시골 이웃들은 자기들이 본 돼지의 크기, 말랐는지 살쪘는지와 무게를 화제 삼았다. 그것은 바로 무언의 영예라 할만했다. 만약 장모가 계단 위에 서서 백정에게 돼지를 어떻게 잡으라고 분부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체면이 깎이고, 가장답지 않게 되는 셈이니까.
우리와 장모 간의 충돌은 당연히 돼지 한마리 기르는 한 가지 문제가 아니었다. 그해 즈음, 장모는 계속 우리 식구는 자신이 양육시킨다는 말을 했다. 한 가지는 물론 매년 연말에 잡을 돼지 한 마리를 기르는 일을 지적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집 가(家) 자 아래에 있는 것은 돼지 돈(豕)이 아닌가?
하지만 돼지 외에도 다른 문제는 바로 양식인데, 장모는 계속 "기장 쌀이 익었다"는 말을 해왔다. 옛날부터 있었던 이론 중에 "식량과 돼지가 충분하면 천하가 조용해진다(叫粮猪安天下)"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장모가 주장하는 두 가지 근거였다. 그런데 계속 살아오는 동안 우리와 장모 사이에 어긋나는 것이 나타났다. 그건 당연히 양식이었다. 그것은 우리 집 나날의 변화와 비슷하게 곧 깊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농가는 한가한 달이 없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은 배로 바빠진다."이것은 당대(唐代) 시인이 시골 생활을 그린 귀절인데 정경은 지금과 똑같다. 지금과 농사일은 똑같이 일치하는데, 농민들이 보리를 수확할 때, 야채를 심을 때, 옥수수밭 풀을 뽑을 때, 논에 모를 심을 때가 일치한다. 농사꾼 자신의 말로 표현하면 어찌 바쁜지 길에서 친척을 만나도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에서 핵심적인 일은 바로 토지의 일이다. 근대에 들어와 토지를 한집한집 나누어주고 집집마다 경작하게 하자 농민들은 막대한 경작 열정을 발산했다. 1980년대 시작된 농촌생활의 상황은 우리 역사의 긴 흐름에 견주어 평가하자면 가장 왕성하고 뜨거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식구들로서는 계속 밭에 가서 유채와 양곡을 심는 것이 힘에 부쳤고 꼭 필요하지도 않았다. 원래 농민이라면 힘을 합쳐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걸 하지 않다 보니 장모와 아내가 받아온 노동 점수로는 생산대에서 바꿔주는 양식이 얼마 안되었다. 그정도로는 식구들이 먹기에 충분치 않아서 부족한 나머지는 내가 받은 월급으로 생산대에 가서 양식을 사 와야 했다. 현재 장모가 나눠 받은 토지에 종자를 심는 것도 완전히 시골 친척들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고, 장모 한 사람의 배급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식 창고에 가서 사 오는 형편이니 사실 농사일을 포기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장모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건 말도 안되고 또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중국 수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16 |
---|---|
10,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14 |
8,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05 |
7,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2.04 |
6,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