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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8,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여전히 여름밤에는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비처럼 쏬아졌다.
이웃들은 다시 돌계단으로 와서 잡담을 나눴는데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벼꽃 향기 속에서 풍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장모가 한 말을 일종의 어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한 밤중에 장모가 이렇게 말한 세 마디 말과 말하는 어투에서  장모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장모는 이웃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참시 화제가 끊어지자 첫 번째 말을 꺼냈는데 여전히 "기장쌀이 벌써 익었다는 게 정말이야?"라고 했는데,  이 말이 제일 중요하다. 장모는 한 농가의 가장으로서 이 말 위에 자기의 희망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내가 듣기에 나를 겨냥한 것 같지는 않았고 장모가 이 말을 이용해서 스스로 위안을 을 삼으려 하는 것 같았다. 우리마을 사람들이 "야점(夜點)"이라 부르는 유난히 커다랗고 아름다운 잠자리 한 마리가 호롱불 아래로 날아들었다.
장모의 두 번째 말이 들렸다. "애들이 가면, 가는 거지 뭐. 나는 오히려 애들이 모두 떠나버렸으면 좋겠어. 나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나아." 이 말은 우리가 정말 멀리 떠나고 나면 장모는 우리를 양육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좋다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말 뒤에 숨은 뜻은 우리가 그녀를 떠나고 나면 아무 의지할 데가 없어 걱정스럽다는 말이기도 하다. 장모의 세 번째 말은 여전히 감추고 있는 그녀의 나에 대한 멸시였다. "자네는  화려한 바깥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어 겁나는 거지. 그렇지? 그러니 나중에 가서 알게 될 거야." 장모의 이 말을 우리가 외지에 나가서 실패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모는 어쩌면 자기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생각, 우리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확실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실패한다면, 바로 되돌아와 장모집, 지붕 아래에서 전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니까.

 

우리 이웃들 중에는 중칭에서 이곳 작은 동네까지 흘러들어온 진(阵) 아주머니가 있는데, 키가 크고 뚱뚱했으며,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녔다. "어린 시절, 목마 타고 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돌아보니 백발노인이 되었네."

겨울에는 석탄 보따리를 옆에 끼고 계단에 화서 장모와 수다를 떨었다. 이 진 아주머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마지 않는 것을 한 가지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일찍부터 자신을 위해 준비해 놓은 목관이다. 그 관은 보기에도 널찍해 보였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페인트 칠을 해서 돼지우리 빈 곳에 놓아두었다. 나는 그녀와 장모가 한담 나누는 것을 자주 들었는데, 그녀는 심심하면 목관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기가 인생의 마지막에 머물 곳이라고 말했다. 진 아주머니는 장례 지낼 때 본, 목관들에 관한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그것들을 일일이 평가하고 비교했다. 장모도 자기 시어머니 장례 때 이야기를 하면서 체면과 풍격에 대해 말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59년 저세상으로 간 사람들은 그나마 관 하나 없었다고 탄식했다.

 

겨울 낮은 적막했다.  어찌나 적막했던지 사람들이 들판의 고요함까지 들을 지경이었다. 이때 나는 이층 방에서 장모의 생각이 어떤지 유추해 보느라 나도 모르게 다시 펜을 멈추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목관은 사람들이"고향집(老家)"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자기가 살 집을 마련하느라고 일생 내내 아등바등거리는데, 죽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집 한 채, 궁전 하나 지니고 가서 진흙 속에 묻히고 싶어 할 것이다. 장모는 고집이 세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이것도 당연히 하나의 마음의 병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한번 상의하여, 어느 정도 속이 상했을 장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했다. 장모에게 이런 우리의 마음을 전하고 바로 장모를 위해 속칭"고향집"을 마련해주려고 계획했다. 문집의 원고료를 한차례 받았으니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시골에서 관 하나 만드는데 충분한 삼나무 목재를 사 왔다. 그리고 얼마 후 목공 일을 하는 친척에게 부탁해서 마당에 작업대를 세웠다. 며칠 시간이 지나자 나무는 하나의 관이 되었고 다른 관들처럼 페인트 칠을 해서 처마 밑에 세워놓았다. 장모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곧 침울한 얼굴이 되어 내 눈을 흘끗 보았는데 이것은 멸시였다. 하지만 장모 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역시 문턱에 앉아 혼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건 묵인한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리고 얼마간 지나자 장모는 비로소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우리의 이런 하나하나의 노력 애도  장모의 생각을 충분히 동요시키지는 못했다.

봄이 되자 뻐꾸기가 다시 울었다. 특히 나를 감상에 젖게 했던 박새 우는 소리는 여전히 한밤의 심연에서 들려왔는데 마치 사람들에게 따스하게 안부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출근해야 하고, 딸애는 학교에 가야 하고, 나도 쓰던 원고를 완성시켜야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옛날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 장모를 따라 땅을 돋우러 갈 수 없었다, 옥수수 심는 것 말고도 우리는 장모와 충돌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 건  바로 늘 그래 왔드시 연말에 잡을 돼지 한 마리를 계속 키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