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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3,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여러 해가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처음 장모를 보았을 때,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어두운 광선 사이로 장모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장모의 시선은 날카롭고도 확고했다. 거기 더해서  그 시선 깊은 곳은 차갑고 흉폭하며 또한 매서웠다. 그 반쯤은 그녀의 고집스런 개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녀는 어려웠던 삶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당연히 장모는 역사적으로, 또한 압박 속에서 가장이 되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남자같이 하면서 자신을 가장으로 만들어 갔다. 그녀는 멜대를 불끈 쥐고 욕을 했는데 이런 일은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장모는 아래층 방에 살았고 인적이 없는 깊은 밤, 문지방으로 가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서 잎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불빛은 밤하늘에  오랫동안 껌뻑 껌뻑 명멸하는 화성(火星) 같았다. 장모는 보통 때 식탁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깊게 잠들려고 혼자서 야밤에 술을 한잔 하기도 했다. 장모의 마르고 왜소한, 조용한 그림자는 그녀의 고적하고 힘겨운 심경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아천에서 지낸 그 시절, 나는 당연히 장모와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스스로 가장이 되었는데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언제나 시(詩) 한수를 떠올리곤 했는데, 바로 이 시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가는구나. 천리를 보고자 하면 한 층 더 올라가야 하는데.... "

(白日, 海流千里, 更上一层楼)

태양은 곧 서산에 지고 대낮은 곧 사라질 텐데 세월은 하루하루 덧없이 흘러간다. 만약 내가 한 층 더 올라가지 못한다면 나는 결국 먼 곳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장모가 나를 데릴사위로 대해서 나를 자기 손안에 넣으려고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의 의식 , 가장에서 파생되는 데릴사위라는 의식은 우리 역사를 흐르는 혈액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자각을 했든 안 했든 장모의 혈관 속을 흐르며 숙명의 연역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아천에서의 그 시절, 나와 장모 간에는 잠재적 충돌이 있었고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농사꾼들은 겨울에 부는 바람은 나무에서 물을 밑으로 내리기 때문에 나뭇잎이 말라서 떨어지고 봄에 부는 바람은 물을 나무 위로 올리기 때문에 나뭇잎이 돋는다고 한다. 늘 하는 말로 일 년 계획은 봄에 세우고 하루 계획은 새벽에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모두 들판에서 사람들이 저절로 느끼고 깨달은 것이지 사치스러운 소비 위주의 대도시 빌딩에서 세월을 보낼 때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봄이 가꺄워진 어느 날, 아침이 시작될 때 농사꾼들은 어떻게 자기 집 살림을 꾸려 나가는가?

그 당시 나는 시골 이웃들 한 집 한 집이 어떻게 먹고 살아가나 보았는데, 바로 가장이 전부 꾸려나가고 있었다.

밭에 무얼 심을 것인가와 아들 며느리 딸을 각각 어디로 일하러 보낼 것인가를 전부 가장이 결정했다. 예를 들어 큰아들이 벌써 장가갈 때가 되었다 하면 금년에는 집을 한 칸 더 지어야 하겠다, 작은 아들이 영민하면 공부를 더 시켜야 하겠다, 딸은 조만간 다른 집 며느리가 될 테니 공부를 많이 시킬 필요가 없다, 나아가 자질구레한 일로 들어가면 밥에 옥수수를 섞을지 말지, 섞는다면 얼마나 섞을지, 연말에 잡는 돼지는 몇 조각을 남길 것인지, 어떤 부위를 남길 것인지, 또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 이런 모든 것들을 가장이 계획하고 결정하고 집행했다.

이런 것들은 가장이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데 경제를 계획하는 데 있어, 원인과 결과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한 가장이 자기 농토에서 큰 소리로 일을 지시할 때는 왕자의 풍격이 보였다. 만약 어떤 가장이 도박과 주벽에 빠지거나 투계나 복권을 좋아하게 되면 자녀들은 그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온 가족이 고생을 하는 수밖에...

 

 

참고 : 更上一层楼는 중국인들이 많이 인용하는 싯귀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밝은 앞길이 보인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도시에서 온 지식 분자인 작자가 시골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며 언젠가는 시골을 벗어나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시에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