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일부러 중국 국가박물관에 가서 훨씬 세련되고 정교한 옛 중국 주기(酒器)들을 감상하였다..
중국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주기는 대단히 중요한데, 굳이 희귀한 당시의 청동기나 은을 두드려 만든 주전자와 술잔을 말하지 않더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물들이 많았고 그 종류 또한 참으로 많았다.
여기서 주기의 명칭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중국 고대에 발달했던 술을 따르는 용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尊. 壶, 区, 卮, 皿, 鉴, 斛, 觥, 瓮, 瓿, 彝, 등이 있다 (주전자 역할을 하는 그릇 항아리를 뜻함)
또 술을 마시는 용기에는 觚, 觯, 角, 爵, 杯, 舟, 罐, 瓮, 碗, 盅 (술잔의 종류)등이 있어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하남성 안양현의 은(殷) 나라 유적 부호 묘(婦好墓: 부호는 은왕 武丁의 부인) 발굴 시 출토된 200여 점의 청동기 중에서 주기가 점하고 있는 비율이 70%나 된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고대부터 주기가 발달해 왔고 귀중하게 다뤄졌음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중화민국 시대 이후 우리의 주기 공예와 제작은 확실히 전과 달라졌다.
비록 근년들어 주병의 디자인 면에서 약간 특색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술을 마시는 기구의 종류는 상대적으로 단순해졌고 예술가 치도 별로 높지 않다. 내 개인 소장품만 하더라도 가치를 내세울만한 것은 주병밖에 없다.
문화계에서 주구(酒具) 소장가로 이름난 임근란(林斤瀾)선생 역시 생전에 주병 수집에 제약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주요 원인은 이목을 끌만한 주기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다기(茶器)는 당대 중국의 발전상과는 관계없이 번영, 융성했으며 차 주전자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뛰어난 공예가가 만든 자색 차 주전자의 가격은 수십만 元 이상으로 호가된다. 다완(茶碗) 혹은 찻잔은 더욱 종류가 다양하고 공예 기술이 뛰어나다. 나 역시 다완을 소장하기를 좋아하는데 만약 북경의 마연도 차성(马连道茶城)을 가게 되면 당신은 모름지기 눈앞에 가득한 아름다운 壶(주전자), 碗(사발), 杯(술잔), 罐(항아리)를 마주 대하고, 거기다 명칭도 다양한 茶庞, 茶海, 茶滤, 茶夹, 茶抚 등등 각종 차구(茶具)에 전율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분명히 불공평하다. 사료에 기록되어 있기로는 차는 사대부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는데, 대략 당대에 시작했으니까 진정한 공부차(功夫茶)의 시작은 8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를 마신 역사는 실제로 술을 마신 역사와 적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차와는 맑고 찬 면에서 서로 다르다.
酒는 성질이 더운 것이어서 남조의 학자 도홍경은 이렇게 말했다."크게 추워지면 바다가 얼지만 그래도 술은 얼지 않는다." (食疗本草중 酒 편). 그것은 엄동설한도 막아내고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며, 피차 간의 거리와 소원한 관계를 술의 작용 아래 느긋하게 완화시켜고 사라지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술자리는 즁귝인들의 첫째가는 교제 장소이다. 술이 약간 오르면 사람들이 접합제가 많아져서, 주석에서의 술은 중국인들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촉진제가 된다. 그것은 중국문화의 오랜 과정에서 일종의 변치 않는 추진력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현대의 흥분제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술이 커피, 담배와 함께 3대 흥분제에 속하며 심지어 유럽을 잔인하게 휩쓴 콜레라에 비유하면서 알콜은 일종의 큰 화근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떤 자료에 의하면 발자크는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술을 원수처럼 대하며 헐뜯는 것은 당연히 개인의 편견이라고 했다.
중국 고대의 술에 대한 평가는 송나라 주공(朱肱)의 <酒經>이 제일 정곡을 꿰뚫고 있다.그가 말하기를 "예부터 술에 취해 세상을 다 얻은 자는 진짜 그런 것이 아니라 미치게 하는 약이 갖고 있는 신통한 이치임을 안다. 어찌 그들에게 돌을 던질 것 아냐? 오두 선생은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었는데 동고촌 들판을 술에 취해 유랑하면서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새끼를 꼬아 매듭으로 기록하면서 정치가 어찌 이다지도 각박하냐?"라고 했다.
당연히 그는 술의 양면성을 강조했는데 바로 이렇게 말했다. "술은 비록 근심걱정을 잊게 할 수는 있으나 몸을 병 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되 정도껏 마시고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지 말라. 이것은 진정한 애주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이 주정을 하며 이성과 지혜를 잃고 신체를 상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주기(酒器)와 주구(酒具)를 마구 버리고 훼손하였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주기가 다기와 다툴 수 없는 처지가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주기에 대하여 덧붙일 말이 있는데, 우리 몽고족의 주구에 대한 이야기다.
몽고족은 큰 사발에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보통 은으로 만든 사발괴 나무로 만든 사발을 쓴다.
집에서는 은 사발로 마시고 밖에 나가서는 나무 사발로 마신다.사발 윗면에 독수리를 새겨 놓았는데 몽고족 전통 길상 도안이다. 나는 친구들을 부를 때마다 이 술 사발을 내오고 그 위에 흰색 하다(哈达: 몽고족이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쓰는 비단 수건)를 올려놓는다. 손님의 술을 존중하고 권주가를 부르며 소우 경주(敬酒: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는 것)를 하는데 절대 상대에게 단숨에 술을 비울 것을 요구하지 않고 조금씩 마시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평소 술을 입도 대지 않는 친구들도 아름답고 정교한 은 사발에 존귀한 의식을 곁들이는 바람에 한 모금 맛보게 된다. 그래서 나를 대단히 칭찬하는 친구가 말하기를 "무엇을 마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무엇으로 마셨는가? 어떻게 마셨는가? 이다." 만약에 좋은 술이면 정교하고 예쁜 술잔에 따르고 같이 하는 사람들과 술잔을 서로 주고 받으며 연회가 성황리에 진행되도록 한다.
고패춘 주창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거기 있던 각종 타입의 향기로운 미주(美酒)로 나는 특히 장향주(酱香酒)가 제일 좋았다. 하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내게 알려준 음주 방식이었다.
그것은 바로 술을 마실 때 반드시 마시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 찰나, 심지어 새가 우짖는 것 같은 미묘한 소리를 내야 한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호기, 일종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런 이치를 알게 된 순간 감개가 무량했다.
그래서 고패춘 술도가를 떠나기 전, 나는 처음으로 나의 母語를 이용해서 몽골문 서체로 "미주(美酒)"라는 두 글자를 써서 그들에게 주면서 나에게 술의 미묘함과 술로 대표되는 인류의 사랑과 감정을 이해시켜준데 감사를 표했다.
이런 미묘한 사랑과 정신은 앞으로도 술과 더불어 나와 일생 동안 동반하게 될 것이다.
'중국 수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세월이 해결해 준다(日子是一种了却) - 何士光 (0) | 2021.01.13 |
---|---|
발자국을 거두어 들이는 사람(收脚印的人) - 田鑫 (0) | 2021.01.08 |
술과 더불어 한평생(伴 酒 一生) 兴安 1/2 (0) | 2020.12.18 |
风中的稻草人(바람 속의 허수아비) - 2/2 (收脚印的人) - 田鑫 (0) | 2020.10.24 |
风中的稻草人(바람 속의 허수아비) - 1/2 (收脚印的人) - 田鑫 (0) | 2020.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