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루(青云楼) 주인, 이것은 해하변(海河边 :천진에 있는 지명), 소문인(小文人)의 호다.
소문인((小文人: 그렇고 그런 문인)이라고 부르다니?
그건 그 호가 사람들 입에는 올려지지 않지만, 그와 엇비슷하다고 모두 알고 있는 그런 류의 문인들 입에만 올려지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얼굴이 삐죽하고 몸은 가늘었으며, 피부는 누렇고 비쩍 말랐고, 팔 다리가 가늘면서 길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마치 몇가닥 대나무 기둥에 두피(豆皮:콩물을 말린 것)를 한장 널어 말리는 듯 했다.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은 바닷물을 말로 될 수 없는 것이나 같다.
그는 서예와 그림에 능했으며, 도장을 새기는데도 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 솜씨가 다소 거칠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천진의 서화 가게에는 그가 쓴 편액이 없었고, 따라서 음식점이나 약방의 벽에도 그의 그림이 걸리는 일은 없었다.
그의 서화가 이 모양이니, 그를 전문가라 할 수도 있고, 또 전문가 축에 못 낀다고 할 수도 있다.
문인이 이지경이 되면 그런 "재능은 있으나 때를 못만난" 축에 속하는 부류들은 속마음이 고통스럽거나, 서글플 것이다.
아니면, 고통스운데다 서글프기까지 할텐데 어떤 것인지는 그 자신만 알 것이다.
그를 부르는 청운루(青云楼 :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집)라는 이 고상한 호는 그가 생각해 낸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청운루의 주인이라 칭하며, 한폭의 대련을 써서 벽에 걸었다.
"人在青山里" - 사람은 청산에 있으되,
"心卧白云中" - 마음은 흰 구름속에 누워있네."
그는 이 대련 글귀를 자주 중얼중얼 읊었다.
매번 읊을 때마다 스르르 눈을 감고 어깨를 흔들었는데, 그럴 때는 정말 은사(隐士: 은둔자)라도 된 것 같았다.
천진이란 곳은 범부 속인들이 판을 치는 얄팍한 세상이다.
청운루는 대호동 동쪽 입구에 있었고 물건을 사거나 파는 사람들로 붐비고 왁자지껄 했다.
게다가, 그의 담넘어 집이 바로 사계춘이란 큰 음식점이기 때문에 온종일 생선 냄새, 고기 냄새, 파 냄새, 간장 냄새가 번갈아 창문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으면 되지 않겠냐고? -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유리창이 생선, 고기 냄새는 막아준다 해도, 화려한 유흥가의 번화한 풍경이야 어찌 막아지겠는가?
어떤 이웃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네 청운루를 차라리 음식점으로 만들어 버리는게 어떻습니까?
청운루라는 세 글자는 들으면 들을 수록 좋아서, 한번 부르면 틀림없이 반향이 올테니까요."
이말을 듣는 순간 그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천지가 개벽했는지, 좋은 운수로 바뀌었다.
어느날, 좋은 재수를 몰고 다니는 진팔(阵八)이란 젊은이가 미국 사람을 하나 데리고 그를 예방했다.
이 사람은 나이가 오십을 넘었고, 대머리에 눈이 불룩하며 큰 수염을 하고 있었는데, 수염때문에 처음 볼 때는 입이 보이지 않았다.
진팔은 이 미국인이 중국의 옛 문물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서예와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정운루 주인은 서양 사람을 처음 만난 탓에 머리가 산란하고 손발이 떨려 의자를 딛고 그림을 걸 때, 한바터면 뒤로 나가 자빠질 뻔 했다.
미국 영감은 는 그런 그에게 신경쓰지 않고 오직 벽에 걸린 그림만 바라보았다.
그는 그림 한폭을 바라 볼 때마다 마치 엉덩이를 씼다가 뜨거운 물에 데인 것처럼 "음, 음"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 질렀다.
그런 다음, 입술을 빨며 쯧쯧 소리를 내어, 높이 평가한다는 표시를 했다.
이렇게 입술을 빨 때. 촉촉하고 빨간 앵두같은 것이 보였는데 마치 그의 수염 한가운데서 솟아난 것 같았다.
청운루 주인이 시선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그건 바로 이 미국 영감의 입술이었다.
끝으로 그는 중국말로 한글자 한글자 청운루 주인에게 말했다.
"나, 매, 우. 기. 뻐. 요. 감, 사, 해. 요. - 나, 매, 우. 기. 뻐. 요. 감, 사, 해. 요.---"
그는 대충 이 몇개의 글자만 배웠는지 반복을 거듭하더니 이어서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청운루 주인은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를 이처럼 숭배 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두달 후, 그는 영문으로 쓰여진 편지를 한통 받았다.
그는 그것을 들고 <대공보>신문사로 가 영어를 아는 주선생을 찾았다.
주선생이 편지를 보더니 바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했길래, 이 미국 영감이 잠 못이루고 뒤척이다가 정신병까지 오도록 만들었소?
그 사람 말이 그가 귀국한 다음 매일같이 당신이 쓴 글씨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밤중에 꿈을 꾸어도 당신의 글씨만 보인다는 구료.
그러면서 중국 예술가들은 절대적으로 모두 천재라고 느낀데요, 천재라고!"
청운루 주인은 높은 구름에 타고 있는 것 같았고, 몸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았다.
하루 밤을 꼬막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날이 밝자 홀연히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붓을 휘둘러 그 미국 영감에게 보낼 글씨를 썼다.
"宁静致远" (녕정치원 : 마음이 평온해야만 멀리 생각할 수 있다 : 제갈량의 말)
큰 글씨, 네 글자를 써서, 직접 가로로 된 표구까지 하여 우체국에 가서 붙였다.
소포 안에는 한장의 편지를 넣었다. 편지에 한가지 요구하기를, 글씨를 벽에 건 후 꼭 글씨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그는 이 사진을 받아 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이웃 집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자기를 얕잡아 보던 인간들에게도 보여주고...
거기다 큰 서화 가게의 사장들에게도 보여주고, 신문사 편집인들에게도 보여주어서 결국 신문에 나게 하도록 하고 싶었다.
모두 보아라!
당신들의 썩은 동태 눈을 크게 뜨고 보아라!
당신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미국 영감이 나를 인정해 주었다!
그가 청운루에 앉아 답장을 기다린지 삼개월,
기다리다 지처서 약간 의혹도 생기고, 심지어 화까지 끓어 오를 무렵, 드디어 겉봉이 영문으로 쓰여진 편지가 한통 온 것이다.
그는 급히 봉투를 뜯어서, 편지를 꺼내 보았지만 전부 영문으로 되어 있어 무슨 말인지 당췌 알 수 없었고, 그 안에 사진도 없었다.
다시 편지 봉투를 들여다 보니 뜻밖에 사진이 거기 끼워져 있었다.
그가 사진을 꺼내들고 보았는데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했다.
그가 다시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순간, 이런! - 머리가 하얘졌다.
그 미국 영감이 그의 글씨 앞에서 사진을 찍긴 했는데, 글씨가 거꾸로 걸려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아래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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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지차이(冯骥才 빙기재)의 속세기인 중에서 青云楼主(청운루주)를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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