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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벙어리 아이(啞孩子) - (2/2)




캄캄한 밤중에 구름자매는 숲위 하늘에서 한줄기 끊임없이 올라오는 기류를 침대삼아 편안히 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한줄기 짙은 연기로 꽉찬 기류가 맹렬히 올라왔고,그녀들은 커다란 공중제비를 돌았습니다.

"언니, 저것 좀 봐! 대지에 온통 화광이 충천해. 어제같이 석양이 우리를 비춰주고 있나봐"

동생아, 그건 벙어리 아이네 초가집이란다. 거기서 불이 난거야. 우리 빨리 가보자."

구름 자매는 잇달아 빗방울로 변해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뜨거운 불 위로 떨어졌을 때, 몹시 뜨거운 기류가 그녀들을 하늘로 곧바로 밀어 올렸습니다.

그들은 다시 구름이 되었는데 ---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 된겁니다. 그네들이 열대 해양에서 만들어졌을 때와 똑 같이.


"단지 우리들의 힘 만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겠어, 빨리 형제 자매들을 불러 모으자."

구름자매는 큰 소리로 고함을 쳤고, 커다란 구름 무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는데, 서로 딩굴기도 하고, 서로 밀치기도 하고...

이윽고  굵은 빗방울로 변하더니, 그 불빛을 향하여 우장창 떨어졌습니다. 


다음날 새벽, 처음 떠오른 태양이 대지를 내려다 보니, 온통 잿더미였는데, 그것은 바로 어제 난 큰 불에서 남겨진 것입니다.

잿더미 중간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하나 있는데 구름 자매가 그 안에 있었다.

그녀들은 더이상은 천번 만번 변화하는 자태를 지닐 수 없었고, 고인 물이 되어 조용히 먼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벙어리 아이도 그처럼 아름다운 하늘을 다시는 바라볼 수 없었고 --- 잿더미 근처에 딩굴어 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흰 구름같이 하얗고 깨끗한 천으로 벙어리 아이의 작은 시신을 덮었습니다.


바람이 하얀 천의 한 자락을 열어 젖히면 물로 변한 구름자매가 한번이나마 벙어리 아이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구름 자매가 변한 고인물을 양손으로 떠내어 벙어리 아이에게 뿌려준다면 그녀들이 마지막 한번이라도 그애 이마에 뽀보해 줄 수 있었을까요?


"이 불쌍한 작은 놈이 아무소리도 없이 조용히 이세상에 왔다가 또 아무 소리도 없이 떠나가 버렸네!

이 아이는 어찌 그리 급한 걸음으로 총총히  가버렸을까? 세상에 아무 것도 남겨 놓지도 않은 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벙어리 아이를 둘러메고 갔습니다.


태양이 높게 떠오르고, 따스한 햇살이 물웅덩이를 비췄습니다.

"언나, 꽤 더워졌어. 나 곧 날아갈 것 같애." "맞아, 얘야. 나도 곧 날아갈 거야."

그래서 두 줄기의 기류가 소리없이 폐허 위로 날아 올라갔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짙푸른 하늘까지 올라가자 ---- 그녀들은 다시 두송이의 구름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름자매는 여러번 변하는 자태에 대하여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녀들은 숲 위 하늘에 멈춰 서서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 볼 뿐---


숲은 어찌나 조용한지, 가볍고 작은 낙엽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벙어리 아이의 시신은 거기 놓여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한삽, 한삽 황토를 파면서, 벙어리 아이를 묻을 준비를 했습니다. 

"봐라! 우리들이 판 구덩이가 작은 벙어리 아이의 묘지로 딱 맞겠지?"

"그럼, 그런데 안에 무슨 나무 뿌리들이 많이 있는데, 빨리 꺼내야 되겠어 --- 한게, 두게, 세개...."

"이거 뿌리에 조각 한 거야!  이것 좀 봐, 이 새끼 사슴을, 다리에 불에 탄 흔적이 있는데 ---

아마 이게 나무 뿌리 였을 때, 산불에 태워지거나 벼락을 맞았을거야.

하지만 어쨋든 상관없어. 이게 바로 사슴이 내달리다가 진흙 방울이 튀어서 그랬다고 ...

그리고 이 준마, 이건 백조, 이건 비둘기, 이건 구름..."

"이게 도대체 누가 조각한 걸까? 뭣 때문에 이 구덩이에 묻어 놓았지?"

"어저면 아주 오래 전에 이곳에 어던 고독한 예술가가 살았나봐."

"맞아! 이 나무 뿌리 조각은 예술가의 작품이야. 여기 땅 구덩이에 있을 것이 아니고, 당연히 전시관에 진열되야 하는 거야."


구름 자매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벙어리 아이의 이야기를 몰랐습니다.

그녀들은 사람들이 벙어리 아이를 매장하고, 조심스레 뿌리 조각들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숲은 다시 평온해졌으나  오직 한무더기의 황토만이 그안에 그렇게나 갸냘팠던 한 생명이 묻혀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 인류의 생명은 그렇게 짧게 지나가는 거야? 특히 이 벙어리 아이는 자기 이름의 묘비마저 없지 않아.

얼마 안있으면 풀들이 봉분을 덮어버릴거야. 나비와 잠자리가 풀더미 위로 이리저리 달아다니겠지.

그 때가 되면 어느 누가 그애를 기억하겠어? 우리야 바다와 하늘과 대지를 오가면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지만..."


"인류의 생명은 비록 짧게 지나가지만, 그들중 어떤 사람들은 짧은 일생중에 가치있는 것들을 남겨 놓는단다.

예를 들면, 이 벙어리 아이만 해도 그가 사랑했던 것 모두를 곧 썩어 없어질 나무 뿌리에 담아 생명의 광휘를 비춰주었지.

그것들은 영원한 예술품이 된 거란다. 우리가 푸른 하늘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고, 대지 위에서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지는 거야.

우리는 고정적인 형체가 없는, 말하자면 그렇게 허황한거지. 만질래야 만져지지 않는 꿈 같이...."


"그럼, 우리 존재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야?"

"아니야, 만약, 어느날 우리가 어느 큰 나무 품안에 들어가 그 뿌리와 잎으로 가게되면, 나무는 빠르고 건장하게 자라게 되겠지?

이 큰 나무가 사명을 마치고, 점점 늙어 가다가 생명이 다하게 되면, 우리도 그 안에서 나와 다시 하늘로 올라오게되는 거야.

그러면 벙어리 아이 같은 사람들이 나무 뿌리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조각칼로 그것을 표현하겠지.

그럴 때, 우린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런 아름다음을 창조하는데 우리도 참여했다. ' 


얘야, 바람이 불어오는구나,  우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