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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R을 타고 간 유럽,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천산산맥까지 : 끝없는 스텝지대를 달리는 장거리 열차에서 겪은 일- 2018.08.22.

우리는 악토베 역사 2층에 있는 공공 여인숙에서 잤기 때문에 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여유있게 11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탈 수 있았다.

카지흐스탄 음식은 만두 종류가 많았고  전혀 낯설지가 않았는데, 그동안 각지를 다니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해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천성  고지대 장족 음식이나 코카서스 음식도 그렇고, 이곳 카지흐스탄 음식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나라 음식도 별 거부감이 없다.


악토베는 인구 25만의 카자흐스탄 북서부 악토베 주의 주도로 주민 대부분이 카자흐 족이라고 한다.

악토베는 우랄산맥 남쪽에 있는 무고자르 구름지대 한가운데 있으며 1869년 건설된 러시아 요새, 악툐베(하얀 언덕이라는 러시아 어)가 그대로 도시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두달 전, 6월 5일  소총으로 무장한 이슬람 극단주의자 20명이 총기판매점과 군부대를 습격,군인 6명을 포함한 17명사망, 30명 부상의 큰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뉴스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터라 외교부의 여행 유의 지역 뮨저가 뜨자 영문도 모르고 불안해 했었으나, 알고보니 6월 12일 완전 진압되었다고 한다.


악토베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한 기차는 다름날 오후 1시에 심캔트에 도착할 때까지 27시간 동안 계속 끝없는 평원을 달렸다.

일직선의 단조로운 지평선 끝자락에 어느 순간부터 둥그스름하거나 평평한 거대한 구른이 나타났고 그 앞에 펼쳐진 대초원에는 낙타와 말이 한가롭게 풀울 뜯고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랄 산맥 남부에서 시작된다는 무고자르 구릉지대인가보다

이런 낯선 경관은 처음에는 대단히  이색적으로 보였으나, 그런 것도 한시간 이상 변화없이 계속되자 이내 덤덤해졌다.

구릉과 점점이 보이는 낙타와 말 외에는 구경거리가 없는 대초원 풍광은 오는 동안 내내 변함이 없었는데 카자흐스탄 북부 악토베에서 남쪽 심켄트까지 똑같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바뀌어 황혼녘이 되자 대평원은 부드럽고 아늑한 황색으로 변했으며, 이윽고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자 무수한 별들이 하늘에 가득 나타났다.


자정 넘어 멍하니 하늘과 땅이 잘 구분이 안가는 어슴프레한 벌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떤 여인이 살그머니 다가와 자기 휴대폰을 내밀며 나보고 무슨 숫자를 찍어보라는 몸짓을 한다.

나는 전화번호를 찍어달라는 말인줄 알고 010-3033-****라고 찍어 보여주니 그녀는 그걸 보더니  손을 내저으며 다시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서로 말이 안통하니 알 수는 없지만 눈치가 내 나이를 찍으라는 것 같아서 약간 줄여서 60이라 찍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자기는 45라고 찍어서 내게 보여 준다.

그러더니 다시 60-45=15라고 찍어서 나이 차이가 15살이라고 알려주며 웃는다. -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심심하니 말을 거는 것 만큼은 틀림 없었다.

서로 전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무슨 대화가 있을 수 있을까만 서로 아는 고유명사(지명)를 동원하여 나름대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나는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에 사는데 당신이 거기 오게되면 꼭 전화해달라,"라고 하면서 자기 전화번호를 내 휴대폰에 찍어 주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그녀가 입력해준 기록 "Kylkaip +9967004640**"  - 서울에 와서 보니 키르기스스탄 국가 번호는 과연 996이었고, 앞에 쓴 영문자는 그녀의 이름일 것이다.

우리는 우즈벡을 갔다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돌아왔지만 시간이 없어 키르기스스탄 수도인 비쉬케크에는 아쉽게도 가지 못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장거리 열차를 탔던 몽골, 러시아에서도 그랬지만 열차에 있는 220v 소켓에 휴대폰을 충전을 하려고 끼워 놓으면 거의 충전이 되지 않았다.

그런 승객들의 불편함을 이용해서 열차 승무원들이 휴대폰을 충전시켜주고 부수입을 챙겻는데 이곳 카자흐스탄 열차는 유독 정도가 심했다.

러시아 기차는 승무원들이 깔끔하게 제복을 입는데, 여기는 사복차림의 뚱뚱한 여자 차장이 노골적으로 500/T를 주면 충전시켜준다고 두세번이나 일부러 와서 권했다.

물론 우리와 말이 안통하니 손짓 발짓으로 하는 거지만 금새 서로 다 알아듣고 의사 표시를 했는데 요구하는 돈은 손가락을 펴서 하나 둘 셋 세는 식이었다.

나는 사실 충전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돈을 내고 충전할 필요가 없었지만 하도 여러번 와서 말하여 우리돈 1500원밖에 안되니 팁을 주는 셈치자고 충전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휴대폰 충전을 한 것이 사단을 불러 올줄은 정말 몰랐다.

- 이 여자는 우리를 돈 많은 카레이스키(한국인)로 생각하고 승객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야 하는 침대시트를 우리에게만 주지 않았다.

장거리 기차를 타면 어느 나라 기차든지, 차장이 의례 벼게 카바와 침대 시트를 담은 비닐 봉투를 하나씩 주고 이를 사용한 후, 내릴 때 반환하고 내리게 되어있다.

일행 두사람에게는 여러번 실랑이 끝에 주었으나 돈을 내고 충전을 부탁한 나에게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없다고 했는데 아마 따로 돈을 받을 목적으로 그런 것 같다.

"승객들에게 다 주는 침대 시트를 왜 나만 안주느냐" 큰 소리로 여러번 항의했지만 꺼떡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끝내 침대 시트를 주지 않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냥 너저분하기는 하지만 침대 칸에 있는 이불을 그대로 펴고 잘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새벽 동 틀 무렵 기차가 어느 역에 섰는데 웬 견장이 여럿 달린 정복을 입은 철도원이 나타나자 이 기차, 저기차 할 것없이 승무원들이 나와서 알은체를 했다. 

보기에도 카자흐스탄 철도 관계자 중에서 높은 사람같았는데, 그는 여러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고 나서 마침 우리 기차에 올랐다.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 영어로 "왜 나에게 침대커버를 안주냐?  차장에게 여러번 말해도 주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그는 내말을 듣고 뚱뚱한 우리 칸 차장을 부르더니 야단을 쳤고, 그녀는 얼굴이 벌개져서 냉큼 침대커버를 꺼내다가 그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변명하듯 내가 한번밖에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고, 나는 곧바로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보이면서 "No, 5-times"라고 소리쳤다.

날이 밝았으니 다시 더 잘 이유가 없었고 침대시트는 그냥 침대 한구퉁이에 던져 놓았을 뿐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서로 감정이 상해서 한번 해본 것이다.

"다음부터는 말이 안통한다고 외국 여행자들에게 함부로 하지 마라, 그들도 다 너를 골탕먹일 수단은 있다." 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내가 별 일도 아니고 더더구나 큰 손해를 본 것도 없었는데, 너그럽게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지금도 든다.

- 하지만 카자흐스탄 악토베에서 심켄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던 그때 기분은 오직 그녀를 혼내주고 싶은 얄팍한 생각 뿐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구릉지대


악토베 역 새벽 풍경


새벽 악토베 역사 안.


악토베의 아침.


귀여운 카자흐스탄 꼬마.


악토베 역 플랫폼.


열차에서 바라보는 대평원.


우연히 평원 위를 나는 독수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평원 너머로 보이는 구릉지대



심켄트로 가면서 거쳐가는 역.


카자흐스탄의 스텝지대




지평선 너머 보이는 마을


어느 역인가 기차가 섰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역에 안전 시설이 없어 각자 알아서 철길을 넘어와 기차를 탄다.


이름 모를 역사 풍경


대평원에 방목하는 말들.


철로변 농가 풍경


낙타를 방목하는 대평원.


지평선 너머 보이는 마을


이 집들은 마을로 보이지는 않고 동네 유력자들의 무덤이 아닌가 생각된다. - 사막 한가운데  모스크 같은 건물이 있을리 없다.



철로변 낙타 우리.


황혼녘의 대평원.








열차 복도.


황혼 무렵 철로변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