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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R을 타고 간 유럽,중앙아시아

유럽자동차 여행 : 갈릴레오의 고향, 피사(Pisa) -2016.8.6.

피렌체 외곽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샤모니에서 내비에 주소를 찍고 출발, 밀라노를 거쳐 오는동안은 별 무리 없이 왔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내비가 안내한 곳은 넓은 벌판에 있는 어느 공장 앞이었다.

아무리 봐도 게스트 하우스가 있을 리 없는 벌판 한가운데 있는 큰 공장 앞인데,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멘트가 나오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한참을 기다려 공장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휴대폰에 찍힌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보여주며 물으니 거기서 2km 쯤 떨어진 곳을 알려 주었다.

공장 사람이 알려 준 대로, 밭 사이에 난 길을 따라가니, 우리가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는 오래된 농원이었다.


이태리 시골 농원에서 묵은 하룻밤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넓은 벌판 한가운데지만, 얂으막한 구릉 위에 있는 집이라 바람이 불어 시원했고, 근처에 집들이 없어 조용하여, 그저 아무 스케줄 없이 쉬고 가기 좋은 곳 같았다.

오래된 집안에는 100년도 넘은 사인이 들어있는 그림들도 많았고 복도나 부엌에 있는 각종 가구와 물건들은 민속 박물관 전시품 같았다.

커다란 서재에 낡은 책이 가득 꽂혀있는 것으로 보아 공부를 많이 한 부유한 이태리 시골 유지가 살던 집 같았는데, 본채 옆에는 하인들이 살던 건물도 있었다.


8월 6일 아침 9시, 농원을 출발, 두시간 정도 달려, 같은 토스카지방에 속한 갈릴레오의 고향, 피사(Pisa)에 갔다.


피사에 갔을 때는 태양이 환하게 비치는 정오 무렵이었다.

우리는 차를 외곽에 세워두고 골목 구경을 하며 피사의 사탑을 찾아갔는데, 우리 말고도 많은 관광객들이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피사의 뒷골목에는 벽에 노랗게 칠을 한 단순한 형태의 아무 장식이 없는 이층 집들이 많았는데, 가난해 보였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정감이 갔다.

좁은 골목을 지나 강폭이 넒은 시원한 풍광의 아르노 강 다리를 건너 다시 골목길을 헤매다가 겨우 피사의 사탐을 찾아갔다.

골목에서  갑자기 시야가 시원하게 열리며 넓은 광장이 나왔는데, 광장 한가운데 햇빛에 반짝이는 기울어진 하얀 종탑이 확 눈에 들어왔다.

종탑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주 컸으며, 흰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신비스러운 느낌과 함께 균형미가 있어 보였다.

피시의 사탐은 기울어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만약 이 탑이 기울어지지 않았더라도 유명한 탑이 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탑은 성당 부속 종탑으로 1174년 착공하여 200년간 건축된 8층의 높이 56m의 탑으로 처음 3층을 올렸을 때, 이미 연약한 지반 때문에 탑이 기우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탑은 계속 기울어서 5.5도까지 기울었으며 1990년 이태리 정부가 붕괴 예방을 위하여 지반 보강 공사를 했기 때문에,현재  더이상 기울어지는 것은 멈추었다고 한다.

탑이 있는 광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며,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오후 세시에 피사를 출발하여 나폴리로 갔는데 나폴리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오후 8시 였다.

피사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고 수도 로마를 우회하여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는 길인데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으나 5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나폴리는 환하게 태양이 비치는 아름다운 항구일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거리가 좁고 지저분했으며  언덕진 곳에 있었다.

거리의 우중충한 벽들은 온통 낙서 투성이였으나, 개중에는 아주 재치있게 잘 그린 그림도 많았다.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체크인 하는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조그만 키의 가무잡잡한 피부의 아줌마가 커다란 열쇠를 세개나 주고 자기는 퇴근해 버렸다.

열쇠 뭉치는 바깥 문, 중간 문, 방문, 이렇게 세개나 되었는데 하나라도 안열리면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없이 그대로 밖에서 보낼 판이었고 열쇠가 쉽게 열리지도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차를 세워 둘 주차장도 없었고 공용 주차장은 하루 주차료가 50유로나 된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길가에 주욱 늘어선 차들 한구석에 적당히 주차했다.

배정된 방에 가서  짐을 풀고 나서 길가는 사람에게 피자 잘하는 집을 물어, 시청 광장 앞 노천 피자집을 찾아가 이태리 피자로 저녁을 먹었다.

이태리 정통 피자라 그런지 과연 바삭바삭하고 맛이 있었는데, 레드 와인과 같이 먹으니 환상적이었다.


어두워지자 나폴리 거리는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거리 전체가 어두컴컴했으며 치안이 별로 안좋아 보였다.





피사의 사탑 (1173년부터 1372년까지 세번에 걸쳐 200년간 지어졌다고 한다)


피사는 인구 9만명의 작은 도시로 대주교가 다스리던 대주교 관구였으며, 유명한 대학 도시로 갈릴레오(1564~1642)의 고향이라고 한다.

이곳은 리구리아 해안에서 10km 떨어진 곳으로 옛날에는 아르노 강을 따라 큰배가 들어오는 항구였는데, 지금은 배가 들어 올 수 없고 피렌체와 경쟇하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쇠락해져서 토츠카나주의 일개 도시로 전락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갈릴레오는 실험물리학의 창시자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틀렸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다는 책을 출판해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을 모르고 출판을 허가했던 교황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루터와 칼뱅의 설교를 합친 것보다 더욱 나쁜 이론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유죄판결을 받고 순순히 과거의 잘못을 포기한다고 선언 했으며, 교황과(우르바노8세)의 우의로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으나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허구이며 그는 교황의 배려로 계속 연구와 집필을 할 수 있었고, 망원경을 발명 천체 관측을 하여 많은 새로운 발견을 했으며, 인류에게 천문학과 역학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이태리 시골 농원 (신기하게 모기나 파리가 없었다)


우리가 잔 본채 건물(우리 외에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약혼자 커플이 있었을 뿐 조용했다.)


무슨 곡물 창고 같다.


일꾼들이 살았다는 건물


밤에는 별도 보고,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던 베란다가 아침이 되니 썰렁하고 어수선해 보였다.


주인의 서재


이집 가족들의 초상화


방안에 있는 오래된 가구들



이 집의 문장 아니면 토스카나 집안의 문장 같다.(현관 앞, 정면에 걸려있다)


방안에서 본 바깥 풍경


이집 주인은 사냥과 관련 있는 것 같다.(사냥개와 호른이 그려져 있는 문장)


집이 대단히 넓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 즙을 짜는 기구.


정원 한구석에 잘 가꾸어 놓은 무궁화 나무가 있었다.


이 동네 고양이들은 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랐다.(어두운 방안에서 처음 본 나에게 안기기 위해 갑자기 뛰어 올라 혼비백산했다)


외국 영화에서 본 삐죽한 나무 (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 기둥은 굵직 했으나 아주 가는 가지밖에 없는 신기한 나무였다)


피사 가는 길의 해바라기 밭



피사 뒷골목


단순 소박해 보이는 골목 집 (푸른 하늘과 노란 벽이 잘 어울렸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


오래된 유적인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른다.


길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리 화가.(중국에서는 붓에 물을 뭍혀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친구는 아예 제대로 그림ㅇ을 그렸다)


골목 속 작은 광장



수도원




이태리를 통일한 가리발디 장군의 동상





이런 카패가 많았는데 피자가 주 메뉴인 것 같았다.



피사의 사탑 인증샷


사탑 정상부


마침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아르노 강변


아르노 강의 다리


의학을 공부하라는 부친과의 불화로 대학생 갈릴레오가 아르노 강에서 자살하려고 했다고 한다.







나폴리 가는 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문부터 육중했다. 이런 문을 하나 더 통과해야 방 앞까지 갈 수 있어 꼭 감옥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정통 이태리 피자. (주문을 받고 그때마다 하나씩 굽는 것 같았다.)


피자와 와인이 있는 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