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SR을 타고 간 유럽,중앙아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유럽에 가다.(스웨덴 스톡홀름 : 7,15)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웨덴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스웨덴하면 먼저, 영세 중립국에다, 육이오 사변때는 의료지원단을 보내 도와주었던 고마운 금발의 키큰 아저씨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스웨덴에는 노벨상의 창시자 노벨, 세계적인 그룹 아바(Abba), 신라 서봉총 금관 발굴에 참여한 구스타프 황태자등 유명한 사람도 많고 볼보 자동차와 보트카로도 유명하다.

스웨덴 인구는 980만명이라고 하며 스톡홀름은 스웨덴 제2의 도시로 1523년 스웨덴의 수도가 되었고,인구는 91만명이라고 한다.

스웨덴은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이 덴마크 왕의 통치를 받다가  16세기에 구스타프 바사가 독립왕국을 세웠고,17세기에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패권을 다툰  북구의 강국이었다고 한다.


배는 10시 30분쯤 스톡홀름 항구에 도착했고 우리가 배에서 내린 시간은 오전 11시 였는데, 날이 찌쁘드드하게 흐려 있었다.

부두에서 다른 승객들과 함께 부두와 연결된 육교를 지나 500m정도를 걸어가니 지하철 역이 있었다.

우리가 지하철 역을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가기에 그냥 따라가다보니 지하철 역이 나온 것이다.

거기서 물어물어 지하철을 타고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면서 보니 역시 선진국답게 뒷골목까지 깨끗이 정비되어 있었고, 골목에 있는 집들이 똑 같은 색갈과 높이로 되어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헌데 깨끗한 골목에 있는 깃발을 간판처럼 걸어 놓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가 보니 먼지 하나 없어보이는 외관과는 딴판으로 좁고 어둡고 너저분했다.

가격은 비슷하면서도 헬싱키의 깨끗하고 넓은 방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철제 침대는 삐그덕 거렸고 무엇 보다도 한방에 수용한 인원이 너무 많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거리 구경을 나섰다.

부둣가를 걸어보기도 하고, 트램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많은 요트가 있는 요트 계류장도 보았고, 그 근처에 있는 무슨 황태자가 기증했다는 아담한 공원에도 가 보았다.

스톡홀름의 인상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며, 젊은이들이 많은  활기찬 도시로 보였다.

또 길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히 대답해 주었으며 거리에는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았고, 골목도 넓고 깨끗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조권 문제로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스톡홀름 중심가


부둣가 회랑에서 보이는 풍경


거리가 조용하고 한산했다.


이면도로 풍경


골목길도 깨끗하고 너저분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시내 한복판 공원인데 야생 백조가 새끼들을 데리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고 있다. 


아름다운 부둣가 건물들 (일조권 문제로 정책적으로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바닷가에 앉아 담소하고 있다.


부둣가 풍경 (건물들 외관이 독특하다)


작은 공원에서 본 건너편 풍경


황태자가 살던 작은 공원.



슈퍼 마켓(여기는 한국 라면이 안보였다)


석양에 비친 독특한 지붕 장식이 아름답다.


무슨 건물인지 모르지만 건물을 아기자기하고 둥글게 지었다.


골목 안에 있는 이런 카페들에 젊은이들이 와글와글 모여앉아 맥주를 마신다.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간판대신  Inter hostel 이란 깃발을 내걸었다)


항구도시라 이 물길이 다 바닷물이다.


스웨덴 국회의사당 (SVERIGES RIKSDAG) - 사전을 찾아보고 알았다.



요트 계류장





갈매기 한쌍.


웅장한 성같은 건물 앞으로 작은 배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