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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R을 타고 간 유럽,중앙아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유럽에 가다.(상트페테르브르크,피의 성당과 뻬쩨르 운하: 7.9.)

아침 8시경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여전히 러시아의 하늘은 맑고 프르렀으며, 새털구름이 하늘에 두둥실 떠있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했다.

역사를 빠져 나오니 거리는 깨끗하고 길은 넓었으며, 북구의 베네치아란 이름에 걸맞게 도로 곳곳에 잘 배치된 조각들이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핀란드해에 접한 넓은 네바강 강변에 자리잠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원래 스웨덴 수비대의 주둔지였다.

이 땅을 러시아의 위대한 황제 표트르대제가 빼앗아 스웨덴군 포로들을 노예처럼 부려 아무것도 없던 습지를 엄청난 양의 돌로 메우고, 여기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러시아어 표트르는 영어의 피터(Peter), 즉 성베드로란 말인데 표트르대제는이곳을 너무 좋아해서 자기의 이름을 따서 페테르브르크라 이름짓고 수도로 삼았다고 한다.

1904년 레닌이 죽자 소련은 레닌의 도시란 뜻으로 레닌그라드로 개칭하였고,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다시 원래 이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관광에 나섰다.

먼저, 그리스도 부활 성당( 피의 성당)을 구경하러갔는데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와글와글 붐볐다.


피의 성당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했고,그의 아들 알렉산드르3세가 1883년 이곳에 세운 성당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2세 (재위기간 1855~1881)는 역사적인 평가가 엇갈리는데, 농노해방을 처음 단행 했고, 알래스카 땅을 헐값에 미국에 매각한 차르라고 한다.

그는 러시아에 의회제도를 도입하려던 과정에서 이곳을 지나다가 반대파에게 폭탄테러를 당했다.

일차 폭발물이 터졌을 때는,나폴레옹 3세에게 선물받은 방탄마차 덕에 무사했으나, 다친 마부를 돌본다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2차 폭발물이 터져 그의 손 발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는 사경을 헤매면서도 궁에 가서 죽음을 맞겠다고 하여 결국  궁까지 가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알렉산드르2세는 농노해방을 선언했지만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리저리 조건을 다는 바람에 개혁이 유명무실해졌다고 하며 피의 성당을 건설한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3세는 폭압 정치를 펼쳐 볼쉐비키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토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당은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을 본떠 지었다는데 규모는 오히려 훨씬 더 크고, 화려하가도 더한 것 같았다.

우리는 성당 구경을 마치고 네바강 다리를 건너 표트르가 황태자 시절 일시 머물렀다는 작은 통나무 집을 구경하고 뻬쩨르 운하 유람선을 탔다.

넓은 네바강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출발한 유람선은 이윽고 좁은 도시 안을 흐르는 작은 운하로 들어가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유람선은 두시간 정도를 항해했는데, 시내 곳곳을 좁은 다리 밑을 잘도 통과하며 돌아다녔고 아름다운 도시의 속살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만약 이 유람선을 안탔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절반도 못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는 유람선에서 내려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스도 부활 성당 (피의 성당) 원경


우리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타고 간 호화열차 복도


시내 복판에 서있는 관청 건물(역에서 나오자 바로 보였다)


자하철 역인지? (하여간 멋있는 외관이다)


말의 다리 (Horse bridge)라고 하는 다리는 다리 앞뒤 좌우로 네개의 말을 주제로한 동상이 서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길이 넓고 한산했다)


어느 박물관 앞. 울창한 가로수가 있었다.


표트르대제 흉상 (모스크바 박물관 안내 아주머니에게 PeterⅠ(표트르 일세)냐 물으니 Peter the Great라고 부른다고 친절히 설명했다)


박물관 앞 장군 기마상



그리스도 부활성당 (피의 성당)


미국, 카나다 관광객이라는데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바닥에 눕고 난리다.


화려한 성당 지붕


러시아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조각, 장식으로 꽉차서 어디 한군데 빈 구석이 없는 것 같다.


네바강의 다리


유람선 정거장이라고 한다.


넓은 네바강 (핀란드해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강변의 뾰족한 성당






유람선에서 찍은 건물 지붕위의 상징물


이렇게 좁은 다리들을 유람선은 잘도 빠져 나간다.


어느 건물에는 근사한 동상을 벽에 붙여 놓았다.


과연 북구의 베네치아라고 불릴만 하다.




유람선 선착장


관광용 헬기인가보다,


유람선에서 내려 작은 박물관 공원에 갔는데 역시 쌍두의 독수리 문장이 있었다.



네바 강변 공터에서 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거리 곳곳에 동상들이 많이 세워져있다.


범선 형태의 레스토랑


우리가 탄 유람선 선착장


유람선에서 본 Horse bridge



정확한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다로 진출하고자 스웨덴 조선소 노동자로 까지 일했다는 표트르 대제의 집념을 형상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