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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위성

278p (전종서의 위성)

그는 화가 나서 살을 에이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몰랐다.

그저 저 가증스런 여인이 언제 꺼질까 아예 저녁 먹을 때까지 안들어 가야지.

어쨋든 실업자가 되었으니 밥을 얻어먹을 준비를 해야하지만 이런 몇푼 안되는 작은 돈쯤이야 아낄 필요도 없었다.

 

길을 몇번 건너 걸어가다 보니 화가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어떤 외국 빵집을 지나가는데 진열창 안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그 불빛에 각종 빵과 케이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진열창 바깥에 웬 짧고 남루한 옷을 입은 늙은이가 창안에 있는 먹을것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어깨에 바구니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조잡하게 만든 진흙 인형과 파라핀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가 담겨져 있었다.

 

홍지엔은 지금 도시에 사는 어린이들은 아무도 저런 엉성한 장난감은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화려한 서양 장난감이 널렸는데, 저 불쌍한 늙은이가 장사가 될리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가 바로 그 바구니에 담긴 장난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년들어 그에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직업을 구하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로우쟈가 그에게 선물한 지갑을 꺼내 지폐를 두장 꺼내서 그 늙은이에게 주었다.

그것을 보고 빵집 문앞에서 드나드는 손님들을 살피고 있다가 구걸을 하려던 어린 거지 둘이 부리나케 돈을 달라고 쫏아왔다.

그들은 그를 따라 몇 구역이나 계속 쫏아왔다.

 

그는 걷다보니 배가 고파졌다.

어느 허름한 러시아 음식점을 찾아 막 들어가려다가 손으로 주머니를 만져보니 지갑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찬바람 속에서도 옅은 땀이 났는데 땀이 너무 적어 땀이랄 것도 없었지만 그것은 예를 들어 마음 속의 수증기같은 것이었다.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이야!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전차를 탈 돈마저 없었다.

 

그의 모든 원망이 로우쟈에게 모아졌다.

만약 루씨 마나님이 안왔다면 자기가 길거리로 나가 찬바람을 맞을 리도 없었고, 거리에서 지갑을 잃어버릴 리도 만무했다.

거기다 루씨 마나님은 로우쟈의 고모이니, 로우쟈가 보나마나 오라고 했을테고 ---설령 로우쟈가 오라하지 않았더라도 억울할게 없다.

또 자기는 돈을 계속 여기저기 아무 주머니에나 자잘구레하게 넣고 다녔기 때문에 소매치기가 적어도 주머니 하나만 만져본다면 빈 주머니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갑이 생기니까 돈을 몽땅 한군데 넣게되어 오히려 소매치기만 작업하기 편하게 해줬고 이건 전부 로우쟈가 생각해낸 되지 못한 생각이었다.

 

리씨 아줌마는 부엌에서 그릇을 씼고 있다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서방님, 저녁 먹었어요?"  그는 못들은척 했다.

리씨 아줌마는 그가 그처럼 굳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스레 부엌을 나가는 그를 눈으로 뒤쫏았다.

 

로우쟈는 그를 보고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놓고 일어나며 물었다.

"당신, 들어왔네요! 바깥이 추워요? 어디서 저녁 먹었어요?

우린 당신 기다리다 안와서 바로 먹었어요."

 

홍지엔은 저녁을 먹으려고 서둘러 왔다고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가 이미 밥을 먹었다는 것을 알게되자 실망하던 중임에도 일종의 만족감이 생겼다.

이것은 마치 자기의 분노를 쌓아올릴 견고한 기초를 마련해준 것과 같았고 오늘 싸움은 요란해질 것이었다.

그는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밥을 얻어먹으러 갈 친척도 없고 당연히 쫄쫄 굶었지."

 

로우쟈가 놀랍고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 리씨 아줌마에게 빨리가서 먹을 것을 사오라고 해야겠네요.

이거, 큰일났네!집에 있던 비스켓도 어제 다 먹어버리고 깜빡 잊고 사오지 않았는데.

당신 시장할때 먹을 간식거리가 아무것도 없네! 당신 어디 갔었어요?

우릴 기다리게 만들고! 고모가 당신 만나려고 일부러 오셨어요!

당신을 기다려도 안와서 고모보고 더 기다리라고 저녁 먹고 가라고 했단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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