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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위성

120p (전종서의 위성)

씬메이는 배를 타고 오던 그날 밤 이후 쑨아가씨에 대하여 소원해졌다.

게다가 지금 그는 공포심이 앞서서 위험하게 그녀를 부축하고 다리를 건널 수도 없었다.

 '삼촌'이라는 역할을 남에게 떠 넘길 수 없는 거지만 이 강직한 기개와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있어야할 직무를 홍지엔에게 슬그머니 넘겨 버리고 간이 콩알만 해져서  곧바로 먼저 다리를 건너가 버렸다.

 

홍지엔은 씬메이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다급한 나머지 자기 스스로 겁이 많음을 한탄하면서 그녀를 돕다가 일이 잘 못되면 어쩌나 겁이 덜컥 났다.

그는 마지못해 쓴 웃음을 지으며 쑨아가씨에게 말했다.

"단 우리 두사람, 겁이 많은 사람만 남겨졌네."

 

쑨아가씨가 말했다.

"황선생님, 겁나세요?

난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요.

내가 앞서서 갈까요?

휑뎅그레한 밑을 보지 않도록 나를 따라 오세요.

다리가 엉성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더욱 겁이 날거예요."

 

홍지엔은 마음 속으로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녀가 자상하게 돌보며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정말 지극정성으로 땀구멍을 다정다감하게 막아주고 있으니 여자라는 건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 올라서자 미끄러운 노면은 발걸음 디딜때마다 조금씩 쑥쑥 꺼졌고 헤아맇 수 없이 많은 등나무로 엮은 가닥 사이로 깊고 깊은 검푸른 물이 보였다.

그는 마음 속으로 눈은 그저 쑨아가씨의 치바오(旗袍 ; 원피스 모양의 중국 여성복)의 뒷섶만 보자고 다짐했는데 감히 다른 곳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다리를 거의 다 건너갔을 때, 쑨아가씨가 얼굴을 돌리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홍지엔은 다리 목으로 뛰어내리며 고함 쳤다.

"지옥에 빠지지 않고,지옥 천당을 구분하는 다리( 奈何桥)를 건넜구나!

앞으로는 이런 다리는 또 없겠지?"

구얼치엔(顾尔谦)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네 유학파들은 중국 길을 가는게 익숙치 않은 모양이오."

리메이팅은 무대에서나 쓰는 내리 깔은 음성으로 그에게 <문장유희 (文章游戏)>를 읽은 적이 있나 물었다.

그리고 그 안에 "소녀를 부축하여 다리 건너기" 편의 팔고문(명청대의 과거시험 답안 형식)이 있는데 참 오묘하다고 했다.

 

씬메이가 물었다.

"쑨아가씨, 앞에서 그를 인도해 준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뒤에서 너를 돌봐 준거야?"

홍지엔은 문득 사람들이 그를 겁 많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르며, 쑨아가씨 뒤에서 왔다는 것이 두가지로 해석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질러 말했다.

"당연히 쑨 아가씨가 나를 인도해 준거지."

이말은 쑨 아가씨에겐 솔직한 답변이니, 반박할 수 없으면서도 주위 사람이 듣기에는 단지 그가 체면치레로 그런 말을 한것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홍지엔의 허영심은 그에게 참말을 하면서 사실을 감추게 했다.

쑨아가씨는 그의 이런 속셈을 꿰뚫어 본듯 그저 웃기만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져 갔고, 큰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인력거꾼들은 한층 서둘러 가면서 곧 날씨가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늘이 이 말을 들었는지 "우르르 쾅쾅"하는 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천궁(天宫 : 하늘 궁전)의 바닥에서 수십개의 동고(铜鼓 :중국 남방 ‘水族(수족)’ 등 소수 민족의 전통 악기인 구리로 만든 북)를 굴리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공기는 답답하게 꽉 막힌듯하여 숨쉬기 조차 힘들었는데 갑자기 이때는 하늘 어디에선가 구멍이 뚫렸는지 뜻밖에 상쾌한 공기가 몰려왔고 반쯤 말라 시들었던 초목들 역시 제풀에 어둠 속에서 싱싱함을 회복하는것 같았다.

넓은 대지가 조용히 탄식하며 슬슬 진동 하면서 대지가 시루통의 뚜껑을 여는것 같았다.

이어서 비가 쏫아졌는데 시원하고 상쾌했으며 오전에 왔던 비와는 비할수 없이 마치 하늘이 무더위로 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

비는 점점더  거세졌는데 흡사 물방울들이 서로 먼저 땅에 떨어지려고 열을 맞춰 기다릴 틈도 없이 서로 네가 먼저니 내가 먼저니 하며 밀치다가 차가운 물방울 덩어리가 되어 느닷없이 쏫아지는것 같았다.

 

인력거꾼들은 옷소매로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냈는데 달리면서 생겨난 열기조차 비의 힘에는 맞설수 없었는지 서로 부르르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잠시 소주라도 한잔 마실테니 뒤에 탄 손님들도 몸을 추스리고 차에서 옷을 꺼내 입으라고 했다.

차에 타고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가까이 꺼내 입을 옷이 없다면서 리선생은 또 쑨아가씨에게 우산을 빌렸다.

 

이 비는 더욱 밤을 짙게 물들였는데 물방울들이 어둠을 데리고 내려 오는 것 같았고 하늘 색은 시시각각 어두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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