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라이벌인 러셀은 중국인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려 했으며,그를 청해서 한번 차를 마셨고, 그는 그때부터 수리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외에 나갈때 편리를 위해 부득이 안경을 써야 했는데 여인의 태도에 대한 생각도 점점 바뀌었다.
두션칭(杜慎卿)은 여자를 혐오해서 그녀들과 세칸짜리 집으로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여전히 그녀들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지만, 추션밍은 반대로 여인이 필요 했던지라 코가 그만큼 예민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여자 생각으로 가득해서 수리논리학을 공부할때도 a posteriori (결과에서 원인을 분석해 들어가는 추론의 원인)이란 말을 보고 ,그 명사를 보고 연상되는 posterior (엉덩이)가 떠올라 , 보이는 것 × 기호를 보면서 kiss를 연상했다.
다행히 그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eus : Plato가 지은 철학적 대화편(기원전 4세기); 그의 우주 창조설이 실려 있으며, 피타고라스파의 천문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를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대하는 것 × 기호 는 신(神)이라도 나올 뻔했다.
그는 그를 외국으로 보내준 대관료가 말하는 중국의 인생관이란 저작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매달 국립은행에 가서 생활비를 받아왔으니 참으로 한적한 나날을 보낸셈이다.
동씨에촨의 부친은 동이쑨(沂孙)은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고, 중화민국에서 관리를 하면서도 이전 청나라를 잊지않았다.
씨에촨(斜川)은 재기가 넘쳤고,노자를 쫒아 옛시를 지었다.
중국은 글 잘하는 장수를 배출하는 나라로서, 한두명의 초보적인 글을 쓰는 장군이 있는 불란서와는 비할 수 없이, 글만 잘하면 바로 국가가 운영하는 학원에 들어가게해서 높은 수준의 예우를 해주었다.
씨에촨의 장교 경력은 일반적인 글쓰는 장교와 다르지 않았고, 그의 시는 보통의 글쓰는 장교들의 시와 달랐으며, 훨씬 뛰어났다.
글을 할줄아는 가난뱅이가 대개 그렇듯이,그의 관운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것은 사병에 대해서는 꼭 복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군사 참찬(参赞 : 대사관의 무관) 직을 하면서 군사훈련장에는 가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상사와 동료들의 문맥이 안통한다고 비판만하다가 이때문에 국내 근무 발령이 났다.
그는 귀국한지 며칠 안되어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황홍지엔은 동씨에촨을 존경할만한 인물로 보았는데다, 자오씬메이에게 들으니 그가 유명한 부친의 아들이라는 말도 듣게되어 그에게 홀딱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르신 이쑨(沂孙) 선생님의 시는 국내에 널리 알려졌지요.동선생은 집안의 학풍의 연원에 손색이 없는데 거기 더하여 어려운 문무겸전까지 하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세심하게 추켜세웠다고 여겼다.
동씨에촨이 말했다. "내가 짓는 시는 저희 부친과 스타일이 같지 않습니다.
부친이 젊었을 때 쓰신 시는 방법이 지금 저처럼 수준 높지는 않았지요.
부친께서는 지금까지도 황중저(黄仲则), 공딩안(龚定盦) 같은 치엔지아런(乾嘉人 : 무슨 의미인지는 모름)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셨지만, 저는 붓을 한번 들면 통광티(同光体) 정도는 씁니다.
홍지엔은 감히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오씬메이는 웨이터에게 어제 보았던 메뉴판을 가져오라하고 마지막 심사를 했다.
동씨에촨 역시 웨이터에게 몽당 붓 한자루와 벼루를 가져오라해서 차 탁자위의 전표를 빠를게 써내려갔고, 황혼지엔은 퍽이나 의아하게 생각했다.
추션밍은 정좌를 하고 말없이 앉아서 아마도 숨어있는 의미를 보고 깊은 곳의 재미난 일을 알아차렸다는듯 미소 지었는데 그의 신비한 웃는 얼굴은 모나리자의 미소라도 거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홍지엔은 말을 붙여보려고물었다. "추 선생은 최근에는 어떤 철학 문제를 연구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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