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후 흩어져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실때 그는 소파 옆의 작은 책장을 보았는데 모두 장 아가씨가 읽는 책으로 보였다.
<서풍(西风)>, , 원문 <리더스 다이제스트 (读者文摘)>, 번역본 <큐리부인>, <사진기 자가 수리법>, <우리나라, 우리 백성 (임어당의 영문 저작)>등 불후의 대작 내지 영화 소설들이 십여권 있었는데 그중에는 말할 필요도 없는 <난세 가인(乱世佳人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있었다.
푸른색 표지에 금박 글씨로 제목을 붙인 <어떻게 남편을 구하고, 어떻게 그를 지켜나가나 (How to gain Husband and keep him)> 라는 책도 있었다.
홍지엔이 참지 못하고 꺼내서 뒤적여 보니 금방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은 부드럽고 감미롭게 대해야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아가씨들은 항상 밝은 미소를 띠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여기까지 보고 책속의 웃는 얼굴이 그대로 홍지엔의 얼굴로 옮겨져 왔다.
다시 책 표지를 보니 저자가 여자인데 시집을 갔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시집을 갔다면 의례 모모 부인이라고 씌여있을 터였고 실제 저자 자신의 체험담같아 보였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더욱 번졌다.
고개를 들어 얼핏보니 장아가씨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어서 서둘러 책을 잘 넣어두고 웃음을 거뒀다.
"예를 들면"이 장 아가씨에게 피아노 연주를 청하자 모두들 찬동했다.
장 아가씨가 연주를 마치자, 홍지엔은 조금 전 자기 웃음을 그녀가 오해 했을까봐 이를 만회하려고 제일 먼저 앞다투어 "너무 좋군요." 라고 말하면서 앵콜을 청했다.
그는 다시 앉았다가 가까스로 작별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인력거를 타고 가던 도중에 그는 그책의 제목이 생각나서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은 여인의 직업인 만큼, 남편이 없다는 것은 직업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 밥그릇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흥! 나는 절대 여인이 나를 밥 그릇으로 삼으려는 그런 책을 읽지 않기 바라니까,차라리 그들이 나를 멸시하고 나를 밥이나 축내는 놈으로 욕했으면 좋겠다.
"워니타" 아가씨, 우리는 밥그릇을 올릴 인연이 없는 모양이니 다른 운좋은 남자가 나타나서 당신을 맘에 쏙 들어하길 바라겠소.
여기까지 생각하자 홍지엔은 발을 구르며 크게 웃으며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장 아가씨로 여기고 그녀를 향해 손을 휘두르며 작별했다.
인력거꾼이 그가 술에 취했다고 의심하여 고개를 돌려 차를 끌기 힘드니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후 장씨 마나님이 말했다.
"황씨는 안되겠어요. 도량이 너무 작고 돈을 그렇게 밝히니... 나에게 단번에 본색을 들켰어요.
글쎄 우리가 그때 돈을 떼 먹고 안줄까봐 겁을 내는 꼴이 우습지 않아요?"
장 선생도 말했다. "독일 물건은 언제나 미국 물건만 못해. 뭐 박사라고!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셈이라 내가 영어로 몇마디 말해 봤는데 그는 꽤 많이 못알아듣더라고.
일차대전 이후 독일은 낙후되었어. 자동차, 비행기, 타자기, 사진기, 뭐든지 미국게 최고 아닌게 있나!
나는 유럽 유학생을 안좋아해."
장씨 마나님이 말했다.
"Nita, 네가 보기엔 황씨라는 사람이 어떻더냐?"
장 아가씨는 황홍지엔이 책을 볼때 짓던 미소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기에 망서리지 않고 말했다.
"그런 사람 혐오해요.
보셨지 않아요, 식사 태도도 대단히 불량한걸!
전혀 외국 살다온 사람 같지 않았어요.
국을 먹을 때 빵을 찍어먹다니!
또 닭 철판구이 먹을 때도 포크와 나이프를 안쓰고 글쎄 손으로 닭다리를 잡고 먹었지 않아요!
다 내가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니까요. 그게 무슨 예의냐고요?
우리 학교의 사교예절을 가르치는 Miss Prym 선생이 보았다면 그에게 돼지라고 욕하며 piggy, wiggy (돼지같이 지저분한 놈)라고 했을 거예요."
그때 장씨 집안과의 혼담은 아무 결과도 없었고 저우 마나님은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황홍지엔은 어렸을 때 <삼국지연의>,<수호전>, <서유기>등 교육적으로 아이들에게 적합치 않은 읽을 거리들을 읽었다.
그는 일찍 태어난 바람에 운좋게 <백설공주>, <피노키오>등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는것은 <삼국지연의>에서 본 명구(名句), "부인은 의복과 같다."가 기억 났는데 이말 대로라면 당연히 의복 역시 여자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 마나님의 차마 맘속으로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을 과감히 손해보고, 새 가죽코트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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