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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권총강도의 추억

 

오래전 얘기다.
내동생이 군대를 마치고 대학교 2학년에 다시 복학해 다니고 있을땐데 권총강도 그것도 대담하게 은행을 턴 사건이 발생했다.

신문에서 본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변두리에 있는 농협에서 일어난 일인데,은행 마감시간(오후 4시 30분)이 지나고 창구 여직원들이 한참 마감업무에 열중하고 있을때 검은 옷 차림의 후리후리한 청년이 슬그머니 후문을 열고 들어와 느닷없이 권총을 빼들고 천정을 향해 " 빵...빵" 댓짜고짜 두방을 쏘아갈기고는 총소리에 놀라 얼이 빠져있는 여행원에게 자루를 던져주고 "빨리 돈을 담아!" 해서는 2천만원인가를 빼앗아 달아난 권총강도사건이다. 신문에서는 강도 청년이 워낙 대담무쌍하고 잘생긴 미남청년이라 여행원들이 반할 정도였다나 뭐라나...

며칠후 토요일 오후 일찍 퇴근해서 TV를 보고 있는데 "딩동" 벨이 울렸다.
"누구신데요?" " XX서 형삽니다."
문을 여니 영화에 나오는 터프하고 씩씩한 형사와는 전혀 비슷한 점이 없는 후줄근한 잠바차림의 40대 중년사내가 피곤한 얼굴을하고 서있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강도사건 수사차 왔습니다."
"혹시 동생이 김OO인가요?"
"그런데 왜요? " "그애가 강도사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 있다는건 아니고 요." 하면서 그가 말하기를 - 어찌나 치밀한 범행이었던지 아무 단서도 없고 또 시간은 자꾸 가는데 신문은 매일 대서특필 하고 해서 궁리 끝에 최근 복학한 대학생중 등록금을 추가로 낸 학생을 전국적으로 몽땅 조사하는 중이란다.
그러면서 꾀죄죄한 수첩을 보여주는데 깨알같은 글씨로 잔뜩 학생들 이름이 적혀있었다.
"지금 학교 가고 없는데요."
"그런데 동생이 어떻게 생겼나요?"
갑자기 하루종일 보는 동생 녀석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니 난감해져서 "그저 평범하죠 뭐."
"얼굴이갸름한가요?"
얼굴이 갸름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싶어서 " 예. 예 그런셈이죠."
"그럼 학교로 찾아가 봐야겠습니다.실례 많았습니다."

며칠후 짜증스런 목소리로 그 형사가 전화했다. "갸름하긴 뭐가 갸름해요. 괜히 헛수고만 했잖아요."
허 허 누가 갸름하댔나. 자기가 묻기에 그냥 끄떡끄떡했지.
하여간 더운데 학교까지 찾아가서 수업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나보고 그리고 실망하고......
맞아. 피곤해 뵈는게 매일 그런일들을 반복하고 그러니 당연하지.

- 그래서 권총강도 사건이 나의 추억거리가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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