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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륙의 여인 <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3장 (8,9/10)

 

네 개의 가스등에서 치익 치익 하는 공기 내뿜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고, 새 삿자리 역시 조용히 기다렸다.

네 명의 키 큰 장대를 든 검은 사내들은 네 개의 검은 돌로 변했다.

한차례 징소리가 울리자 우리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모든 시선이 대문 안을 향했지만 한말들이 만큼 큰 복(福) 자라고 쓴 흰 가림막벽이 우리의 시선을 막았다.

우리가 반평생이라 할 만큼 한참을 기다리자, 쓰마팅 ---- 녹생당의 대 주인이며, 디란쩐의 원래 쩐장(镇长)이며, 현재 유지회(维持会: 항일 전쟁 초기 일본이 점령한 곳마다 세운 임시 괴뢰 정치 조직) 회장인 ---- 이 울상을 지으며 무대에 나타났다.

그는 늘 치고 다니던 그 꽹과리를 들고, 떨떠름하게 치면서 무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 다음 삿자리 한가운데 서서 우리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고향 어르신, 큰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형제는 철교를 무너뜨리는 승리를 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서, 많은 친척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고, 표창장도 이십여 장이나 보내왔습니다.

이 특별한 큰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 형제는 연극배우 한 패를 초청했습니다. 그들은 검게 분장하고 나와서 신파극으로 우리 고향 사람들을 교육할 겁니다. 대보름에 영웅적이고 용감한 항전을 잊으면 안 되죠. 절대 일본  쪽발이들이 우리 고향을 점령하게 하면 안 됩니다.

쓰마팅은 중국 남아로서 더 이상 이따위 유지회장은 안 합니다! 고항분들 여러분. 우리는 중국인입니다. 일본 개새끼들의 시중을 들면 안 됩니다."

운율에 딱딱 맞게  말을 마치고 그는 관중들을 행해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서, 꽹과리를 들고뛰어 들어갔는데, 바로 이때, 대문에서 나오던 호금장이, 피리장이, 비파장이 와 마주쳤다. 음악가들은 악기를 옆에 끼고 나무 걸상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악사들은 삿자리 가생이에 앉아 삑삑 빽빽  현을 조율했고, 피리장이는 두 음부를 불어 기준을 맞추었는데, 높은음은 아래로 떨구고 낮은음은 위로 조절했다.

그들은 호금, 비파, 피리를 함께 음을 맞추게 하여 세 가닥의 음이 골고루 조화를 이룬, 하나의 끈처럼 엮이게  하고는  멈춰 기다렸다.

그리고 나자 북재비(鼓手 :고수), 쇠잡이(锣手:라수- 징을 치는 사람), 자바라수( 钹手 놋쇠로 만든 둥글넓적하고 배가 불룩한 자바라라는 타악기를 치는 사람)가 각자의 타악기를 옆에 끼고 나무 걸상을 들고 나와 악사들 맞은편에 좌정하고, 쾅쾅, 착착, 찰찰 소리 나게 한차례 두드렸다.

작은 꽹과리가 맑고 단조로운 소리를 몇 번 울리자, 작은 북도 몇 번 울렸고, 이어서 호급 비파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밧줄로 엮어서 우리들의 다리를 가지 못하게 묶어 놓는 것 같았고, 우리들의 혼(魂)을 생각하지 못하게 묶어 놓은 것 같았다.

곡조는 귀를 휘감고 계속 이어지면서, 슬프고 애잔하게, 어떤 때는 흥얼흥얼 하다가 쉴 새 없이 소근소곤거리고, 했다.

이게 무슨 극일까?

가오미 동북향의 무창(茂腔 : 산동성 고유 창극), 속칭 "마누라를 묶어 놓은 말뚝"이었다.

무창은 무너진 삼강오륜을 노래했고, 무창을 듣다 보면 친 아버지 친엄마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리듬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관중의 발이 떨리고, 관중의 입이 들썩들썩하며, 우리들의 가슴은 덜덜 떨린다.

우리는 활시위에 놓인 화살처럼 긴장해서 기다렸고, 이윽고 발사에 직면한 마지막 고비.... 다섯, 넷, 셋, 둘, 하나.

"하나"  소리의 높은 곡조는 곡조의 결말 부분에서 또 목도 쉬고  힘도 다 빠진 채, 높이 높이 뽑아져서 위로 말러 올라가 , 높은 하늘까지 찢었다.

"우리는 본래 속 깊고 얌전한 아리따운 아가씨 ---- 그런데 왜 ---- "

노랫소리가 하늘하늘하는 올라가는 여음 속에서, 우리 둘째 누나 상관자오디가 머리에는 빨간 자귀나무 꽃을 꽂고, 몸에는 푸른 세면포로 만든 한쪽으로 섶이 달린 중국 전통 저고리를 입고, 무술복장 바지를 입고, 파란 수를 놓은 신발을 신고, 왼 손에는 대바구니를 걸치고 오른손에는 빨래방망이를 들고,  성큼성큼 잰걸음으로 계곡 물 흐르듯 쓰마 집 대문에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눈부신 가스등 빛 아래, 삿자리에 오르자, 노랫소리가 멈추었다.

그녀는 포즈를 잡으며 얼굴을 내밀였다.

그녀의 눈썹은 눈썹 같지도 않은 먼 하늘가 초승달 같았고, 시선을 물처럼 우리들 머리에 뿌렸으며, 코는 앙상하고, 높고 곧았고, 두터운 입술은 오월의 앵두보다 더 눈부시도록 빨갛게 칠했다.

그다음은 정적이었다.

수많은 눈들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수많은 가슴이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힘을 모았다가 일순간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이어서 둘째 누나는 다리를 펴고, 허리를 굽힌 채 둥그런 무대를 뛰었다. 허리는 나긋나긋, 부드럽기가 연못가 봄버들 같았고, 발걸음은 경쾌해서 보리뱀이 보리 이삭 위를 미끄러져 가는 듯했다.

이날 밤, 바람은 없었으나, 매우 추웠는데 우리 둘째 누나는 몸에 홑옷만 입고 있었다.

모친은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장어를 먹고 난 때부터 둘째 누나의 신체가 발달하기 시작해서, 가슴 앞에 두 살덩어리가 커지더니 이제는 그것이 잘 익은 둥근 배와 막상막하로 커졌다.

게다가 유방의 형태도 단정하고 아름다워서 상관집안 여인의 영광스러운 전통인  풍유비둔(丰乳肥臀: 풍만한 젖가슴과 살찐 엉덩이)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둘째 누나는 둥그런 무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지도, 안색이 흐트러지지도 않은 채, 목청껏 두 번째 구절을 불렀다.

"쓰마쿠 영웅, 젊은 사내에게  시집와서---- " 이 구절은 곡조가 평온하게 지나가고, 끝으머리의 곡조도 높이 올라가지 않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반향이 일어났다.

자람들은 서로 귀에 입을 대고, 남몰래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저게 누구 집 딸이지?" ----  "저건 상관 집 딸이야."----  "상관 집 딸은 조총대장과 도망가지 않았어?" ----  "저건 둘째 딸이야." ----"그런데 언제 쓰마쿠의 첩으로 기어 들어갔지?"  ----  "당신 딸이나 걱정해. 이건 창극이야! 당신 딸이나 잘 단속하고, 입 닥쳐!"

우리의 셋째 누나 상관링디와 다른 몇 명의 누나들이 둘째 누나를 변호하느라고 군중 속에서 크게 소리쳤다.

군중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제 남편은 원래 교량 폭파 전문가, 소주를 뿌려 교룡하 다리에 불의 진을 쳤다네. 오월 하고도 오일, 푸른 불꽃이 높이 타오르자 일본 놈들이 아비 에미 찾으며 울부짖었지. 그때 내 남편, 그 사람은 엉덩이에 중상을 입었네.

어젯밤, 큰 눈보라가 치고 세상이 전부 하얗게 되었을 때, 내 남편은 대오를 거느리고 교량을 파괴하러 갔다네...."

이어서 둘째 누나는 얼음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얼음물로 옷을 빠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온몸을 떨었는데, 마치 섣달 나무 끝에 달린 한 장의 나뭇잎 같았다.

관중들은 극에 몰입했다.

어떤 사람은 찬탄을 금치 못했으며, 어떤 사람은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갑자기 꽹과리, 북이 한바탕 울리더니, 내 둘째 누나가 일어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  서남쪽 방향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큰 소리가 들리고, 밤하늘에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보였으니, 틀림없이 남편이 교량 파괴를 성공시켰을 거야. 일본 놈 기차는 염라대왕을 만났을 테고.

빨리 돌아가서, 소주를 데우고, 닭도 두 마리 잡아서 솥에 넣고 끓여야지 ----  "

그런 다음 둘째 누나는 옷을 주워 담는 모습을 지어 보이고, 제방을 기어 오르는 모습을 지어 보이더니, 이어서 노래했다.

"머리를 드니 네 마리의 승냥이 ---- 먼저 삿자리를 펴고 나왔던 네 명의 다리가 어지럽게 보이고, 만면에 물감칠을 한 사람들이 연달아 공중제비를 돌며 대문에서 구르듯 나왔다.

그들은 내 둘째 누나를 에워싸더니, 이놈이 발톱을 내미는가 하면, 저놈이 발톱을 내밀고 했는데, 마치 고양이 네 마리가 쥐새끼 한 마리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에 얼룩덜룩한 오소리 모양을 그린 샤람이 괴상한 곡조의 창을 뽑았다.

"나는 일본국 가메다(龟田) 대장, 바람 난 아가씨를 찾으러 왔다. 진작부터 동북향에 미녀가 많다고 들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바로 미모가 뛰어난 아가씨가 있구나 ---- 아가씨야. 가자. 이 나으리 하고 가면 평생 편히 살 것이다."

곧바로 그들은 둘째 누나를 손으로 틀어잡았다.

둘째 누나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막대기같이 뻣뻣하게 버텼으나, 네 명의 "일본 놈"에게 번쩍 들려져서 삿자리 위를 한 바퀴 돌았다.

꽹과리, 북이 다급하게 두들겨졌다. 마치 폭풍우가 치는 것 같았다.

관중들은 흥분이 물결처럼 용솟음치면서 앞으로 움찔 나아갔다.

모친이 크게 소리쳤다. "내 딸 내려놔!"

모친은 고함을 치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포대기 속에서 두 다리로 버티며 똑바로 섰다.

이 느낌은 내가 나중에 말을 탔을 때 느꼈던 느낌과 상당히 비슷했다.

모친은 두 손을 뻗어 매가 토끼를 잡듯, 가메다 대장의 두 눈을 움켜쥐었다.

그가 울부짖으며 손을 놓자, 다른 세명도 손을 놓았고, 둘째 누나는 삿자리 위로 떨어졌다.

세명의 배우는 달아났고, 모친은 "가에다 대장"을 깔고 앉아 그의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둘째 누나가 모친을 뜯어말리며 높은 소리로  소리쳤다.

"엄마, 엄마. 이건 창극이에요. 진짜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