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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2장 (4/5)

다음날, 모친은 나를 업고 나는 듯이 환씨 셋째 아저씨네 집으로 달려가서 그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손 씨 큰고모에게 목숨을 구한 은혜를 입었으니, 거기 대한 답례로 손 씨 집의 제일 큰 벙어리  ----  손에 칼을 들고 까마귀 떼와 분전했던 영웅  ---- 와 상관라이디의 혼인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혼약을 매듭짓기 위해, 오늘 약혼을  하고, 둘째 날 혼수를 보내고, 세쨋날 혼례를 치르자고 했다.

환씨 셋째 아저씨는 얼떨해서 모친을 바라보았다.

모친이 말했다."아저씨, 자세한 이유는 묻지 마세요. 매파에게 답례할 술은 아저씨에게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오."

환씨 셋째가 말했다. "뭣 때문에 그래?"

모친이 말했다. "아저씨. 묻지 마시라니까요. 아저씨께서 큰 벙어리에게 점심때 우리 집에 약혼하러 가라고 하시면 돼요.."

환씨 셋째 아저씨가 말했다. "그 집이 뭐 볼 게 있다고?"

모친이 말했다. "있다면 있는 거죠, 뭐.."

우리는  집으로 달려왔다.

오는 내내 모친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모친의 예감은 대단히 정확했다.

우리가 문에 들어서자, 바로 한떼의 동물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족제비도 있고, 검은 곰도 있고, 노루도 있고, 얼룩 개도 있고, 양도 있고, 흰 토끼도 있었는데 유독 검은 담비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담비 목 위에 둘렀던 여우가 동쪽 사랑채, 밀 쌓아 놓은 곳 위에 앉아 오로지 조총대장만 보고 있었다.

조총대장은 바닥에 앉아서 그의 쇠탄환을 담은 호리병과 조총을 닦고 있었다.

모친은 상관라이디를 밀 더미에서 끌어내리며 샤우에량에게 차갑게 말했다.

"샤 대장, 이 애는 주인이 있는 사람이에요. 당신들은  항일 전선에 나선 사람들이니 결코 남편 있는 유부녀를 꼬여내면 안 되지 않아요?"

샤우에량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 말을 뭐 하러 나한테 하시는 거죠?"

모친은 상관라이디를 동쪽 사랑채에서 끌어냈다.

정오 무렵, 손씨네 큰 벙어리가 산토끼 한 마리를 들고 우리 집에 왔다.

그는 작은 솜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저고리 아래쪽으로는 뱃가죽이 드러나고, 위쪽으로는 목이 드러났으며 두 굵은 팔뚝도 절반쯤 드러나 있었다. 솜 저고리의 단추는 모두 떨어져 나가서 그의 허리 가운데를 지나가는 것이라곤 삼밧줄 한가닥이 전부였다.

그는 모친에게 굽신거리며, 얼굴에 멍청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두 손으로 산토끼를 들어 모친에게 바쳤다.

큰 벙어리를 데려온 환씨  섯째 아저씨가 나서서 말했다.

" 상관쇼우씨네 안사람. 난 시키는 대로 했소."

모친은 입가에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산토끼를 보고, 한참 동안 정신이 멍했다.

"아저씨, 빨간 무(红罗卜:홍낭무가 아닌 껍질만 빨간 중국 무)에 토끼 고기를 삶아서 아이들에게 주면 그걸로 약혼이 되겠네요. "

동쪽 방에서 갑자기 상관라이디의 울음소리가 폭발했다.

그녀가 울기 시작했을 때, 울음소리는 여자아이처럼 높고 찢어지는 유치한 소리였는데, 몇 분이 지나자, 걸걸하게 목이 쉬었으며, 거기에 무섭고 더러운 욕이 섞여있었다

수십 분 후에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고 건성 소리만 내는 울음소리로 변했다.

상관라이디는 동쪽 방 온돌 앞의 더러운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아끼고 아끼는 보물 같은 모피도 잊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떴으나, 얼굴에는 눈물 한 방울 없었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서, 마치 물이 마른 우물 같았다.

우는 체하는 소리는 그 마른 우물에서 지속적으로 끊이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나의 여섯 누나들은 낮은 소리로 훌쩍였다.

눈물방울이 곰 가죽 위에 떼구르 굴렀고, 노루 가죽 위에 튀었으며, 족제비 가죽 위에서 반짝였고, 양가죽을 축축하게 했으며, 토끼 가죽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환씨 셋째 아저씨가 동쪽 방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귀신을 본 것처럼, 시선의 초점을 잃고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면서, 입술을 달달 떨었다.

그는 뒷걸음치며 물러나  우리 집을 나가더니 숨 가쁘게 뛰어 달아났다.

손씨네 큰 벙어리는 우리 집 본채에 서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저쪽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멍청한 웃음 외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화석 같은 황량함과 무감각한 슬픔의 표현이었다.

나중에, 나는 그가 분노했을 때 얼굴에 나타나는 무서운 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모친은 가느다란 철사로 산토끼의 입을 꿰어 안채 가운데 문틀에 걸어 놓았다.

큰누나는  무섭다고 고함을 쳤으나 모친은 못 들은 체했고, 벙어리의 얼굴에 나타난 기이함도 못 본 체 했다.

그녀는 녹슨 자국이 점점이 박힌 부엌칼을 들고, 서툴게 토끼 가죽을 벗겼다.

샤우에량이 조총을 메고 동쪽 사랑채에서 걸어 나왔다.

모친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샤 대장, 우리 집 큰딸이 오늘 약혼해요. 이 산토끼가 예물이에요."

샤우에량이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예물이군요."

"오늘 약혼하고, 내일  혼수를 보내고, 모레 결혼 해요."

모친은 토끼 머리를 칼로 자르다가 돌아서서 샤우에량을 보며 말했다.

"잊지 말고, 꼭 와서 축하주 드세요!"

"잊을 리가 있나요." 샤우에량이 말했다. "절대 안 잊어요."

말을 마치자 그는 바로 조총을 메고, 큰 소리가 나게 휘파람을 불면서 우리 집 문을 나갔다.

모친은 계속해서 토끼 가죽을 벗겼지만, 이미 흥미가 싹 달아났다.

그녀는 산토끼를 문틀에 걸어놓고, 나를  업고 방으로 들어왔다.

모친이 큰 소리로 말했다. "라이디야. 전생에 원한이 없으면 부모자식으로 맺어지지 않고, 은혜가 없어도 부모 자식으로 맺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  너 나를 실컷 원망해라!"

이 험한 말을 마치고, 모친은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모친은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무를 썰기 시작했다.

썽둥, 칼을 내니치자, 무가 두 조각이 나면서 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한 속이 드러났다.

썽둥, 다시 한칼에 무는 네 조각이 되었다.

썽둥 썽둥 썽둥, 모친의 동작은 점점 더 빨라졌고, 점점 더 과장되었다.

도마 위의 무는 뼈가 부서지고 몸이 가루가 되었다.

모친은 칼을 다시 높이 쳐들었다가 가볍게 하늘하늘 내리쳤다.

부엌칼이 그녀의 손을 벗어나며 부서진 무 위로 떨여졌다.

집  안에 매운 무 냄새가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