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네 큰 벙어리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모친에게 경탄을 표시했다.
그의 입에서 짧은 음절들도 흘러나오며, 모친에 대한 경탄을 엄지 척으로 표시한 것을 보충했다.
그녀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벙어리에게 말했다."넌 이제 가거라."
벙어리는 팔을 휘두르더니 발로 허공을 찼다.
모친은 그의 집 방향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너 이제 가도 돼!"
벙어리는 모친의 의사를 알아차렸고, 나에게 장난스럽게 귀신 흉내를 냈다. 그의 윗입술에 더부룩하게 난 짧은 수염은 마치 파란색 기름을 바른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나무를 기어 오르는 동작을 정확하게 흉내 내었고, 새가 날아가는 동작을 정확하게 흉내 내었다. 그런 다음 손에 펄럭펄럭 뛰는 작은 새를 쥐고 있는 시늉을 하더니 웃으며 나를 가리키고, 또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모친은 다시 한번 그의 집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해있더니, 알아들었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모친에게 ---- 모친은 얼른 몸을 피했다 ----- 그래서 도마 위의 무 조각을 향해서, 머리를 땅에 찧는 큰 절을 하고는 일어서서, 득의양양하게 갔다.
밤이 되자, 극도로 피곤했던 모친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는 잠이 깨면선서, 정원 안의 오동나무 위, 참죽나무 위, 살구나무 위에 수십 마리의 살찐 산토끼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나무에 기이한 과실들이 매달려있는 것 같았다.
모친은 손으로 문틀을 부여잡고, 천천히 문턱에 앉았다.
열여덟 살 상관라이디가 그녀의 검은 담비 외투를 입고, 빨간 여우 목도리를 두르고, 검은 나귀 조총대 대장 샤우에량을 따라 도망갔다.
그 수십 마리의 산토끼는 샤우에량이 내 모친에게 주는 폐백 선물이었으며, 모친을 향한 과장된 시위기도 했다.
큰 누나의 야반도주에 둘째, 셋째, 넷째 누나가 공모했다.
일이 발생한 자정너머 한밤중, 모친이 피곤해서 코를 골고 있을 때,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누나들은 꿈나라에 가 있었다.
둘째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맨발로 땅바닥에 내려가 더듬거리며 문뒤에 모친이 쌓아놓았던 보루를 옮겼고, 셋째 누나와 넷째 누나는 양쪽 문짝을 잡아당겨 열었다.
저녁 무렵, 샤우에량은 문둔테에 총기름을 부어놓아 문짝이 소리 없이 열리게 해 놓았다.
한밤중 처량한 달빛 아래, 자매들은 서로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샤우에량은 나뭇가지에 걸린 토끼들을 보며 몰래 웃었다.
세쨋날은 벙어리와 큰 누나가 혼례식을 치러야 하는 날이다.
모친은 평온하게 온돌에 앉아, 옷을 꿰맸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마침내 기다리다 못한 벙어리가 왔다.
그는 동작과 표정으로 모친에게 들어가겠다고 했다.
모친은 온돌에서 내려와 정원으로 가서, 동쪽 사랑채를 가리켰고, 또 여전히 나무에 걸려있는, 이미 얼어서 딱딱해진 토끼들을 가리켰다.
모친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벙어리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다.
황혼 무렵, 우리 가족이 온돌 위에서 무 조각과 밀가루 죽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대문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렸다.
서쪽 사랑채에서 상관뤼스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던 둘째 누나가 숨 가쁘게 뛰어 들어와 말했다.
"엄마, 큰일 났어요. 벙어리 형제들이 개떼까지 끌고 와요"
누나들은 놀라서 벌벌 떨었다.
모친은 맷돌처럼 끄떡없었다.
그녀는 여덟째 누나 위니에게 숟가락으로 죽을 떠 먹이고 난 다음, 우적우적 무 조각을 씹었다.
그녀의 표정은 새끼를 밴 어미 토끼처럼 편안했다.
대문 밖의 소란스러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짐작컨대,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에 세 마리의 붉은 빛을 번쩍거리는 검은 그림자들이 우리 집 얕은 남쪽 담장 위를 뛰어넘어 들어온 것 같았다.
손씨네 벙어리 삼 형제가 왔다.
그들을 따라 들어온 것은 기름을 칠한 것처럼 빤질빤질한 검은 개들이었다. 그놈들은 세 개의 검은 무지개같이 담 위를 미끄러지듯 들어왔고, 아무 소리나 기척도 없이 땅 위로 떨어졌다.
새빨간 저녁노을 속에서, 벙어리들과 그들의 개는 잠시 정지상태로 있었는데, 그 순간은 마치 한 세트의 조각 같았다.
큰 벙어리는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미얀마 연도(软刀: 사람을 살해할 때 쓰는 부드러운 칼)를 들고 있었다.
둘째 벙어리는 파란 요도(腰刀: 허리에 차는 칼)를 짚고 있었다. 셋째 벙어리는 한 자루의 녹이 얼룩덜룩 슨 박도(朴刀 : 날이 좁고 길며 자루가 짧은 칼)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남색 천에 흰 무늬가 있는 보따리를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있어서, 멀리 떠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들은 너무 놀라서 숨도 못 쉬고 있었지만, 모친은 태연자약하게 후룩후룩하며 죽을 먹었다.
갑자기 큰 벙어리가 고함을 지르자, 둘째 벙어리와 셋째 벙어리도 따라서 고함을 쳤다. 그러자 그들의 개도 따라서 으르렁 거렸다.
사람의 입과 개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침이 흩어지면서, 황혼 속에서, 마치 짝 반짝 빛나는 작은 벌레처럼 춤추며 날았다.
이어서 벙어리들은 검법 실연을 했다. 바로 밀밭에서 장례를 지내던 날 있었던 그들과 까마귀 떼와의 대전(大战)이 똑 같이 그때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초겨울의 황혼 녘, 우리 집 정원에서 재현되었다. 칼빛이 번뜩였고, 세 명의 사냥개같이 씩씩한 남자들이 끊임없이 위로 껑충껑충 뛰면서, 있는 힘을 다해 철판 같은 신체를 펴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수십 마리의 산토끼를 산산조각 나게 베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개들도 흥분하여 울부짖으면서, 잘린 토끼의 시체를 물고, 커다란 머리를 흔들어 그것을 접시처럼 날려 보냈다.
그들은 분풀이를 충분히 했는지, 얼굴에 안 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 정원은 산토끼 시체 파쇄장이 되어버렸다.
몇 개의 토끼 대가리가 외롭게 나뭇가지에 걸려있멌는데, 그것은 마치 바람에 말려진 과실 같이 남아있었다.
벙어리들은 개들을 데리고 무공을 빛내고 위세를 떨치듯 정원을 몇 바퀴 돈 다음, 올 때와 똑같이 제비처럼 담장 꼭대기를 스치며, 어두운 하늘, 불길한 기운 속으로 사라졌다.
모친은 죽 그릇을 들고, 가볍게 웃었다.
이때의 독특한 웃는 얼굴은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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