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있다.
큰 놈은 하얀 소형 몰티즈인데 유기견을 분양받아온 거라 정확한 나이는 모르고 대충 10살 정도 된 것 같다.
작은놈은 갈색의 7살 먹은 아주 작은 요크셔테리어다.
이놈들은 둘 다 7kg으로 내가 봐도 덩치에 비해 과체중으로 보였는데, 과연 와이프가 이놈들 털을 깎으러 갔을 때 애견센터 아가씨 말이 비만이 심해 체중을 줄이지 않으면 병이 올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7kg이 넘게 되면 털 깎는 비용을 더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동안 이놈들에게 하루 종일 밥그릇에서 사료가 떨어지지 않게 주었는데, 이놈들도 사료가 늘 있어서 그런지 별로 사료에 관심도 없고 잘 먹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와이프의 강력한 체중감량 계획이 시행되었다.
그건 아침에 강이지를 손으로 들어보고, 기분에 무겁다 싶으면 밥을 아예 굶기는 다소 비과학적인 방법이었는데, 굶기기로 한 날은 하루종일 물만 주고 사료는 아예 주지 않았다.
이놈들로서는 느닷없이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지옥(餓鬼地獄 : 음식을먹려고 하면 불덩이로 변해 수백 년 배 고프게 지낸다는 지옥)에 떨어진 셈이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밥을 굶기자 이놈들은 먹을 것만 보면 환장을 했다.
전 같이 사료를 주어도 건성건성 관심을 안갖던 시절은 까마득히 사라졌고, 양을 대폭 줄인 사료는 주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먹는다기 보다 그대로 꿀떡굴떡 삼켰다는 편이 맞다.
잔혹한 체중감량이 시행되자, 이놈들의 관심은 온통 먹는 것뿐이었다.
내가 무엇이든 먹을 때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고, 식사 때는 혹시 떨어뜨리는 음식이라도 있을까 해서 식탁 밑에 앉아있다가 가끔 하늘에서 예고 없이 떨어지는 신(神)의 선물을 기다렸다.
급기야는 태평양 전쟁 때 굶주린 일본군이 혁대를 삶아 먹었다든가 인육을 먹었다던가 하는 것처럼, 이놈들도 쓰레기통을 뒤져 휴지를 먹는가하면, 귤껍질까지 찾아 먹었다. 이놈들이 몰래 먹다 보니 그런 것들을 먹는 것은 보지 못했으나, 똥에서 휴지도 섞여 나오고 귤껍질도 섞여 나왔다.
이후 나는 쓰레기통에 무거운 책을 덮어놓았다.
어느날, 이놈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것들도 내세엔 인간으로 환생할 지도 모르는데.....
나는 와이프 몰래 이놈들을 위하여 정성껏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장 가운데 치즈도 넣고 햄도 넣어 제대로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먹기 좋게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잘라 네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강아지들을 불러 큰 놈부터 하나, 이어서 작은놈도 하나, 연달아 네 개를 주었다. 아! 얼마나 맛있었을까?
헌데 이놈들은 맛을 보기는 커녕, 그냥 꿀떡 굴떡 삼켰다. 목구멍으로 그대로 넘어가 버렸으니 맛을 즐길 찰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름 이놈들에게 아귀지옥에서 맛볼 수 있는 꿈같은 행복을 주려고 했었는데.... 시도는 그냥 싱겁게 끝났다.
어느날 이놈들의 체중이 각각 6.5kg으로 떨어지자 우리 집 염라대왕께서 관대하게 이놈들을 아귀지옥 형벌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아귀지옥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풍성한 식사가 제공된다는 뜻은 아니고, 최소한의 식사만 제공하되 , 단지 느닷없이 하루 종일 통째로 굶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후 나는 건빵을 한 봉지 사다 놓고, 두 놈에게 외출하면서 한 개, 들어오면서 한 개씩 주었다.
한놈에 한개씩 준 것이 아니라, 건빵 한 개를 3/4, 1/4씩 둘로 잘라 큰 놈에게는 큰 것을 주고 작은놈에게는 작은 것을 주었다.
건빵을 줄때는 두 놈이, 발을 의자에 앉은 내 무릎에 올려놓고 다소곳이 건빵 잘라주기를 기다렸다.
이때 큰 놈은 그냥 뜸숙하게 기다렸지만 촉삭맞은 작은놈은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깽 깨개개 갱~~"
그것은 빨리 달라고 보채는 소리 같기도 했고, 축생도(畜生道)에다 아귀지옥에까지 떨어진 자신에 대한 연민같이 들리기도 했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무언가 말하려 한다는 느낌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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