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지나가자, 잘게 부서진 구름 덩어리들은 급히 달아나 버렸다.
구름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햇볕은 쨍쨍하기 그지없었다.
남아있던 우박은 순식간에 수증기로 변해서,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우박에 손상된 밀은 어떤 것은 허리를 폈고, 어떤 것은 영원히 허리를 펴지 못했다.
차가웠던 바람은 빠르게 뜨거운 바람으로 변했고, 밀은 빠른 속도로 성숙하여 일분 차이로 더욱 노래졌다.
우리는 공동묘지 가장자리에 모여있다가, 쓰마팅 쩐장이 팔자걸음으로 묘지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메뚜기는 그의 발 밑에서 날아올랐고, 메뚜기의 연두색 바깥 날개 안에서 분홍빛 안 날개가 반짝였다.
쓰마팅은 한 무더기의, 노란색 작은 꽃잎이 만개한 들국화 옆에서, 발꿈치로 땅을 구르며 큰소리로 말했다.
"바로 여기다. 여기를 파라."
일곱 명의 검은 남자들이 나른하게 한데 모여 서서 삽을 짚고 , 네가 나를 보면, 내가 너를 보는 식으로, 서로 살펴보았는데, 마치 상대방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 그들의 시선은 쓰마팅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당신들 나는 봐서 뭐 해?" 쓰마팅이 노성을 질렀다.
"땅이나 파!" 그는 동라와 징채를 뒤로 던졌다.
동라가 가볍게 날아가다 흰 술잎이 달려있는 띠(여러 해 살이 풀) 속으로 떨어져서 도마뱀 한 마리를 놀라게 했다. 징채는 강아지풀 잎에 떨어졌다.
그는 삽을 빼앗더니, 그 자리에 삽을 찌르더니 발로 삽을 밟고 몸을 흔들면서 힘껏 박았다.
그는 힘들여 둥그런 접시 모양의, 잡초 뿌리가 빽빽한 진흙을 떠내서, 투 손으로 삽자루를 가지런히 들었다.
그는 먼저 몸을 왼쪽으로 구십도 돌리고, 이어서 급히 오른쪽으로 백팔십도 돌리더니, 철석 소리가 나게, 죽은 수탉 같은 진흙덩이가 데굴데굴 구르게 던졌다.
진흙은 담황색 작은 꽃이 핀 납작한 민들레 위로 떨어졌다.
그는 삽을 되돌려주고, 숨을 씩씩 몰아쉬며 말했다.
"빨리 파. 설마 너희들 이 냄새를 못 맡고 있는 건 아니지?"
남자들이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고, 한 뭉텅이 한 뭉텅이 진흙이 날았다.
땅에 차츰 구덩이가 나타났고, 더불어 점점 깊어졌다.
시간이 벌써 정오가 되었다.
공기는 데일 것처럼 뜨거워졌고, 세상천지가 눈부시게 환해서 아무도 감히 태양이 지금 어디 있나 올려다보지 못했다.
마차에서 나는 시체 냄새는 더욱 강렬해졌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피했지만 냄새는 역풍으로 올라와서 여전히 사람들의 위와 장을 뒤집어 놓아서 토할 것 같았다.
까마귀들이 다시 왔다.
그놈들은 방금 목욕을 해서인지, 털이 깨끗해졌고, 짙은 남색이 반짝반짝 빛났다.
쓰마팅은 동라와 징채를 줏어들고, 시체냄새를 피하지 않고 마차 옆으로 뛰어갔다.
"망할 놈의 날 짐승 같으니. 네놈들이 어떻게 감히 내려오는 거야?
내려오기만 하면 이 몸이 네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그는 꽹과리를 치며 뛰어오르면서 공중에 대고 욕을 했다.
까마귀들은 마차에서 십여 미터 하늘을 빙빙 돌며, 소란을 떨었다. 동시에 물똥과 너덜너덜한 깃털이 뿌려져 내렸다.
"산까치(마부)"는 꼭대기에 붉은 헝겊 줄을 비 끌어 맨 장대를 들고, 까마귀들에게 휘둘렀다.
세 마리의 말은 콧구멍을 꽉 닫고, 머리를 필사적으로 숙여서 그러지 않아도 육중한 말머리가 더욱 육중해 보였다.
까마귀들은 조를 짜서 번갈아 가며 아래로 내리 꽂히닝 날카로운 소리가 길게 울렸다.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쓰마팅과 "산까치"의 머리를 포위했다.
동글동글한 작은 눈, 단단하고 힘 있는 날개, 불결하고 추한 발톱, 까마귀의 형상은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들은 팔을 휘두르며 까마귀들과 고군분투했다.
까마귀들은 단단한 부리로 그들의 머리를 쪼았다.
그들은 손에 쥔 꽹과리와 징채, 헝겊을 맨 장대로 까마귀들을 후려쳤는데, 휙휙 팍팍 소리가 났다.
상처 입은 까마귀들은 날개를 편채, 하얀 작은 꽃이 점점이 박힌 파릇파릇햔 초지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날개를 끌고 비틀거리며 밀밭 속으로 도망쳤다.
밀밭 속에 숨어있던 미친개들은 화살같이 튀어나와 상처 입은 까마귀들을 발기발기 찢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초지 위에는 끈적끈적한 까마귀 털만 남았다.
개들은 밀밭과 묘지 주변에 웅크리고 앉아서 시뻘건 혀를 늘어뜨리고 헐떡거렸다.
까마귀들은 병력을 다 누어, 일부는 쓰마팅과 "산까치"에게 치근대었고, 대량의 까마귀들은 마차 위로 빡빡 히 모여들어 스프링 같은 목과 송곳 같은 부리로 썩은 시체를 좋아 먹었다. 냄새가 지독했고 마치 마귀의 성대한 연회 같았다.
쓰마팅과 "산까치"는 지쳐서 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터운 먼지가 덮였으며, 겹겹이 층을 이룬 먼지에 땀으로 길들이 생겨나자 그들의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흙 구덩이는 이미 사람 키만큼 깊어졌다.
우리들은, 어렴풋하게 흔들리는 사람들 머리와 덩어리 덩어리 날아 올라오는 축축한 진흙 덩어리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밖에 싱그럽고 서늘한 진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남자가 흙구덩이에서 기어 나와 쓰마팅 옆으로 와서 말했다.
"쩐장님, 벌써 물이 나와 퍼냈어요."
쓰마팅은 멍하니 그를 보더니 천천히 한 팔을 들어 올렸다.
그가 또 말했다. "쩐장님, 한번 가 보세요. 깊이는 얼추 된 것 같아요."
쓰마팅은 그에게 둘째 손가락을 구부렸다. 하지만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바보 같은 놈!" 쓰마팅이 말했다. "이 노인 네 좀 일으켜 줘!"
그는 황망히 허리를 굽히고 쓰마팅을 일으켰다.
쓰마팅은 신음하면서, 빈주먹으로 허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의 부축 아래 새로 쌓인 흙 무더기에 올라갔다.
쓰마팅이 말했다. "이런 씨발 놈. 나까지 올라오라고 하다니. 또 팠다간 황천까지 데려가겠구나."
구덩이 속의 남자들은 잇달아 기어올라왔고, 올라오자 시체 냄새가 코를 찔러서 눈을 부라렸다.
쓰마팅이 마부를 차면서 말했다. "일어나서 마차를 가져와."
마부가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자, 쓰마팅은 소리쳤다.
"고우 셋째와 야오 넷째야. 이 늙은 것부터 구덩이에 던져라!"
고우 셋째가 구덩이 앞 흙무더기에 있던 남자 가운데서 대답했다.
"야오 넷째는?" 쓰마팅이 물었다.
"아침부터 신발에 기름칠을 하고 내뺐어요." 고우 셋째는 분하다는 듯 욕을 했다.
"돌아가면 그놈의 손자새끼들 밥그릇까지 박살 낼 거야."
쓰마팅은 말을 하면서 다시 마부를 발로 찼다.
"이놈아, 너 정말 죽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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