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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10장 (1/5)

마르크 샤갈

 

모친이 드디어 의식이 돌아왔다.

그녀는 처음으로 나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번데기같이 작은 음경을 보았다.

암담했던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갑자기 광채가 발산되었다.

그녀는 나를 안고, 마치 닭이 쌀알갱이를 쪼듯 나에게 뽀뽀를 했다.

니는 쉰 목소리로 울면서, 입을 벌리고 유두를 찾았다.

그녀는 유두를 내 입속에 밀어 넣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빨았으나 유즙은 없었고 오직 피비린내뿐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울었다.

여덟째 누나가 내 옆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모친은 나와 여덟째 누나를 함께 놓아두고는 손바닥을 짚고 일어나 온돌에서 내려갔다.

그녀는 비틀비틀 물항아리로 가더니, 넙죽 엎드리고 노새같이 물을 먹었다.

그녀는 무감각하게 정원 가득한  시신들을 보았다.

어미 나귀와 그의 새끼 노새는 땅콩더미  주변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때마침 누나들이 난감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정원에 들어섰다.

그녀들은 모친 옆으로 뛰어와 피곤에 지쳐 몇 번 소리 내어 울더니, 바로 비스듬히 넘어졌다.

일본인은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였지만, 우리 모자 셋의 생명을 구했다.

우리 집 굴뚝에서 큰 난리를 겪은 후, 처음으로 한줄기 밥 짓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모친은 할머니의 상자를 부수고 계란, 빨간 대추, 얼음사탕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보관해 두었던 산삼 한뿌리를 꺼냈다.

솥 안의 물이 펄펄 끓자 계란이 솥 안에서 이리저리 굴 렀다.

모친은 누나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러, 양푼 주위를 둘러싸고 앉게 했다.

모친은 솥 안의 먹거리를 양푼에 떠 담더니 말했다.

"얘들아, 먹어."

모친은 나에게 젖을 먹였다. 나는 대추 맛, 사탕 맛, 계란 맛의 유즙을 빨아들였다. 그것은 하나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액체였다.

나는 눈을 떴다. 누나들은 흥분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흐리멍덩하게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모친 유방 안에 있는 즙액을 전부 깨끗이 빨아먹고, 여덟째 누나의 목쉰 울음소리 속에서 눈을 감았다.

나는 모친이 여덟째를 안으며 탄식하는 말을 들었다. "네 건 없어."

둘째 날 새벽, 골목 안에서 '땡땡'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복생당 큰 주인 쓰마팅이 쉰 목소리로 고함쳤다.

"마을 사람 여러분. 각 집의 시신을 들어냅시다. 들어냅시다...."

모친은 나와 여덟째를 안고 정원에 서서 길게 중국 전통 사설을 뽑으며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눈물은 없었다.

누나들도 모친 주변을 둘러싸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울지 않았다.

그녀들의 얼굴에도 역시 눈물은 없었다.

쓰마팅은 동라(꽹기리)를 들고 우리 집 정원에 들어왔다.

그는 바람에 말린 수세미 같은 사람으로 그의 정확한 나이를 말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의 주름살 투성이 얼굴에는 딸기 같은 코가 있었고, 두 개의 새까만 데굴데굴 구르는 어린아이 같은 눈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등허리는 새우 등이어서 거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노년 같았지만, 그의 두 손은 잘 먹어서 하얗고 통통했으며, 손바닥에는 다섯 개의 동그란 살 소용돌이가 나 있었다.

그는 모친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라도 하는 듯이, 모친에게 불과 한 발작 떨어진 곳에 서서, 맹렬하게 동라를 두드렸다.

쾅랑랑낭, 동라소리는 갈라지고,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친의 울음소리는 중도에 그쳤으나,  그녀는 목을 빳빳이 세우고, 일분동안 숨을 마시지도 숨을 내쉬지도 않았다.

 

"어찌 이리 참혹할 수가!"  쓰마팅은 우리 집 정원 안의 시신을 보고 과장해서 탄식했다.

그의 입 주위와 입술, 뺨, 귀에까지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의분이 가슴에 가득 찬 감정이 드러나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코와 눈동자에는 남의 재앙에 고소해하는 감정과 몰래 기뻐하는 마음이 노출되었다.

그는 뻣뻣하게 누워있는 상관후루 옆에 가서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그런 다음 다시 머리가 몸에서 떨어진 상관쇼우씨 옆에 가서, 허리를 굽히고, 광채를 잃어버린 눈동자를 주시했다. 마치 그와 감정을 교류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입이 벌어졌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줄기 침이 흘렀다.

상관쇼우씨의 평온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우둔하면서  야만스러웠다.

"당신들 내 말을 안 듣더니.... 당신들 왜 내 말을 안 들었던 거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는데, 죽은 사람을 꾸짖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혼잣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모친 앞으로 와서 말했다. "쇼우씨 안사람, 내가 사람을 시켜서 그들을 내 갈게요. 날씨 좀 보세요."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고, 모친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머리 위의 하늘은 답답한 납 회색빛이었고, 동쪽에서는 핏빛 아침노을이 한 뭉텅이 검은 구름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우리 집 돌사자가 땀을 흘렸으니, 곧 비가 올 거예요. 그들을 끌어내가지 않으면 비에 젖었다가 태양에 말랐다 할 건데, 생각해 보세요...."

쓰마팅은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모친은 나와 여덟째를 안고 쓰마팅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큰 주인님, 우리 고아, 과부는 당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얘들아, 너희들도 와서 아저씨께 무릎 꿇고 인사드려라."

누나들이 쓰마팅 앞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그는 '땡땡' 몇 번 꽹과리를 쳤는데, 치는 힘이 맹렬했다.

"조상 대대로 나쁜 새끼(원문 표현: 操他老租宗:  너무 격분했을 때 상대방의 조상까지 싸잡아하는 중국 욕)."

그는 욕을 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모두 샤우에량(沙月亮: 검은 나귀부대 유격대장), 그 잡놈 때문에 일어난 화예요. 그놈이 매복 공격한 건, 호랑이 똥구멍을 쑤신 거예요. 일본 놈들이 화가 나서 백성들을 마구 죽인 거라고요.

동생, 조카들 모두 일어나요. 재난을 당한 건 당신네 집뿐만 아니에요.

장웨이한(张唯汉) 현장이 쩐장(镇长)을  맡긴 내가 누굽니까? 현장은 도망갔지만 쩐장은 도망가지 않았어요. 이런 조상 대대로 나쁜 새끼!"

그는 대문 밖에 대고 외쳤다. "고우 셋째( 苟三), 야오 넷째(姚四)야. 너희들 뭘 꾸물대고 있니? 설마 나보고 너희들을 가마에 태워 모시고 다니란 말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