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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8장 (2/2)

 

남편이 다시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오려는 순간, 그녀는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한쪽 팔을 쳐들고 그에게 손을 내저으면서  냉랭하게 한마디 내뱉었는데 ----  그녀는 이 말이 정말 자기가 한 말인지 의심스러웠다---- "개 에미가 기른 자식, 이리 와! "----  그녀는 생각했다. 남편에 대하여 진작부터 한이니 원망 따위는 이미 싹 다 사라진 상태인데, 내가 뭐 하러 그에게 욕을 하나?

그에게 "개 에미가 기른 자식(狗娘养的)"이라고 한 것은 그를 욕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시어머니를 욕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개다. 그것도 늙은 개.... 늙은 개가 함부로 이빨을 드러내고 , 이빨을 드러낸 채,  너에게 대나무 갈퀴를 꺼내주었어.....

이십여 년 전 큰고모네 집에 얹혀살 때 들었던, 어리석은 사위와 장모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가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비가 많이 오고 무더웠던 그 해, 가오미(高密) 동북향이 막 개발 될 때였다. 그때는 밥 짓는 연기도 거의 보이지 않았던 때인데, 큰 고모네는 제일 빨리 여기로 이민을 왔다. 고모부는 덩치가 커서 사람들은 그를 "큰 손바닥"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가 커다란 손을 움켜쥐면 말발굽 두 개만한, 큰 주먹이 되었고, 한 주먹으로 능히 노새 한 마리는 때려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는 노름꾼이어서 손에 푸른 구리 녹을 잔뜩 묻히고 다녔고.... 쓰마쿠 집안 탈곡장에서 반(反)  전족대회가 열렸을 때, 나를 상관뤼스가 마음에 들어 하는 바람에....

"날 찾는 거야?" 그녀는 상관쇼우씨가 온돌 앞에 서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얼굴 가득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왜 찾느냐고 했고....  그녀는 연민의 정이 없지 않아, 자기와 21년을  같이 산 이 남자를 바라보다가, 마음속에 갑자기 미안하다는 생각이 충만했다.

홰나무 바다에서 풍랑이 거세게 솟구치는데..... 그녀는 머리칼 같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기는....  당신 애가 아니야...."

상관쇼우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애 엄마야.... 죽으면 안 돼.... 내가 손 씨 큰 고모를 부르러 가겠어...."

"그러지 마...."그녀는 남편을 보면서 간절히 기구했다. "말로야 목사님을 불러 줘...."

정원에서는 상관뤼스가 살을 베어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품 안에서 기름종이 봉지를 하나 꺼냈다. 여러 겹 종이를 벗겨내자 한 개의  대양(大洋 : 옛날 일 원(元) 짜리 은화 이름) 은이 나타났다.

그녀는 대양을 집으면서, 겁난다는 듯  양 입가를 쫑긋 세웠고, 두 눈동자가 벌게졌다.

햇볕에 비친 그녀의 하얗게 된 백발이 눈부셨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검은 연기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왔고, 공기는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북쪽 교룡하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더니, 총탄이 공중에서 슉슉 날아왔다.

그녀는 거의 울면서 말했다.

" 환씨 셋째. 설마 당신은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을 수 있어? 정말, 횡봉침 보다 독한 건 없고,  의사 마음같이 모질은 건 없다더니...

격언에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했어. 환씨 셋째, 이 대양은 내 살에 붙이고 다닌 지 이십 년도 더 된 거야. 이걸 줄 테니 우리 며느리 목숨 좀 살려줘!"

그녀는 대양을 환씨 셋째  손에 쥐어 주었다.

환씨 셋째는 마치 상관뤼스가 그의 손에 빨갛게 단 쇳조각을 쥐여준 것처럼 거칠게 그 대양을 던져버렸다.

그의 반질반질한 얼굴에 기름 땀이 배어 나왔고, 두 뺨이 실룩거리더니 눈, 코와 입이 따로따로 놀았다.

그는 배낭을 등에 메고 큰 소리로 말했다

"형수, 나 좀 가게 해줘..... 내가 무릎 꿇고 절 할게...."

환씨 셋째가 아직 상관네 집 대문을 빠져나가지 않았을 때, 어깨를 드러낸 상관후루가 뛰어들어왔다.

그는 발에 신발 한 짝 밖에 신지 않았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여윈 가슴에는 녹색의 구리스 같은 더러운 것이 묻어 있어서 마치 큰 썩은 상처 같아 보였다.

"당신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이런 늙어도 죽지도 않을"

상관뤼스는 화가 나서 악담을 했다.

"형님, 밖에 무슨 일이 났어?"

환씨 셋째가 급하게 그에게 물었다.

그는 뤼스의 악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씨 셋째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얼이 빠진 것처럼 바보같이 웃으며, 입에서 '더 더 다다' 하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마치 한떼의 닭이 급하게 오지항아리를 쪼아대는 소리 같았다.

상관뤼스는 남편의 턱을 쥐고 위아래로 밀었다  당겼다 하며, 그의 입이 옆으로 갔다 아래로 갔다 하게 했다

그의 입에서 허연 가래침이 흘러나왔다. 그는 컹컹 기침을 하면서, 침을 뱉더니 결국 평온을 되찾았다.

"애 아버지. 밖은 어떻게 됐어?"

그는 슬프게 마누라를 보더니, 입이 비뚤어지며 울면서 말했다.

"밀본 기마대가 뒷 강둑에 올라왔는데...."

묵직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고 정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경직되었다.

한떼의 흰 꼬랑지를 늘어뜨린 들까치가 '깍깍' 놀라 소리치며 정원 위쪽으로 날아왔다.

교회당의 종루에 있는 무늬유리가 소리도 없이 조각조각 갈라졌고, 깨진 유리 조각이 반짝반짝 빛났다.

무늬유리가 산산조각 난 후 폭발음이 종루에서 울렸다.

폭발음의 음파는 무겁게, 기차 바퀴처럼 철커덕철커덕 울리며 사면팔방으로 깔려나갔다.

대단히 큰 폭풍이 몰아쳐왔고, 환씨 셋째와 상관후루는 볏단처럼 넘어졌다. 상관뤼스도 연달아 뒷걸음치다가 등을  담벼락에 기댔다.

무늬가 조각된 검은 도기 굴뚝이 집 추녀 위에서 구르더니, 그녀 눈앞의 푸른 벽돌 통로 위로 떨어지며 '퍽석' 소리를 내며 한 무더기의 깨진 벽돌 무더기로 변해버렸다.

상관쇼우씨가 방에서 뛰어나오며 울며 소리쳤다.

"어머니! 처가 곧 죽을 거 같아. 빨리 가서 손 씨 큰고모를 불러와야 해...."

뤼스는 엄숙하게 아들을 보며 말했다.

"사람이 죽으려면, 어떻게 해도 죽고, 사람이 안 죽으려면 어떻게 해도 안 죽는 거야!"

정원 안에 있는 남자들은 그녀의 설교를 알이 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환씨 셋째.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다는 분만 촉진약  남은 거 있어? 있으면 우리 며느리에게 한병 먹여줘. 없으면 말고."

그녀는 말을 마치자 환씨 셋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누구도 보지 않으면서, 고개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편채, 휘청휘청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