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을 입은 사람은 그의 말을 못 들었는지 여전히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두 사람이 덜덜 떨며 비틀비틀 몇 발자국 가다가 다시 쓰러졌다.
"형제들 빨리 흩어져!" 그는 크게 소리쳤고, 발로 옆에 엎드려있던 사람의 엉덩이를 찼다.
그 사람은 몇 발자국 기어가다가, 발버둥을 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울면서 소리쳤다.
"대장, 내 눈, 내 눈이 왜 안 보이는 거지...."
그녀는 비로소 검은 얼굴의 그 사람이 대장으로 불린다는 걸 알았고, 대장의 초조한 고함소리도 들었다.
"형제들, 놈들이 오고 있어. 빨리 가...."
그녀는 동쪽 높은 강둑에 이십여필의 일본군 큰 말이 등에 병사들을 태우고 이열 종대로 서서 물결처럼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비록 강둑 위는 연기와 불로 가득했지만, 일본 기마대는 대형이 흐트러짐 없이 정연하게 말머리를 내밀고, 보폭 짧은 잰걸음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오고있었다.
집들이 몰려있는 골목까지 오자, 앞에 있던 말은 앞장서서 강둑으로 달려갔고, 뒤에 있던 말은 뒤를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강둑 밖의 개활지 (이 개활지는 쓰마 집안의 볏짚을 말리고 탈곡장으로 쓰이는 금황색 모래로 덮여있는 평평하고 단단한 토지이다)에 이르자 말들은 갑자기 속도를 내었다. 말은 허리를 낮추고 큰 걸음으로 내딛으며 한 줄로 달려왔다.
일본 병사들은 일제히 눈부신 날이 가느다란 군도를 빼 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질풍같이 돌진했다.
대장은 총을 들고, 일본군 기마대에 맞서서 마구 총을 쏘았다.
총구에서 작은 흰 연기가 한 가닥 뿜어다왔다.
그런 다음 그는 총을 던져버리고, 한쪽 다리를 절며, 상관 자매들이 숨어있는 곳을 향하여 비스듬히 뛰어왔다.
살구빛 큰 말이 그가 뛰어오는 쪽으로 바짝 쫏아오더니, 말위에 탄 일본인이 채 빨리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군도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의 몸이 순간 앞으로 숙여져서, 머리는 전혀 다치지 않았지만, 어깨에서 살가죽이 베어져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그 손바닥만 한 살가죽이 껍질 벗긴 청개구리 마냥 땅 위에서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대장은 구슬픈 소리를 지르며 땅 위로 거꾸러지더니, 앞으로 몇 바퀴 굴렀다. 그는 도꼬마리 덤불 근처에 엎드려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살구색 말에 탄 일본병사는 말머리를 돌려, 맞은편에서 큰 칼을 들고일어나는 키 큰 담자를 향해 돌진했다.
그 남자는 공포에 질려 무력하게, 큰 칼로 말머리를 찌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의 잎 발굽이 번쩍 들리더니 단번에 그를 밟아 넘어뜨렸다.
일본병사는 말에서 몸을 굽히고 한칼에 그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 하얀 뇌수가 일본 병사의 바지에 튀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관목 덤불에서 뛰어나온 십여 명의 남자들이 바로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일본인들은 여흥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리저리 몰아 그들의 시체를 짓밟게 했다.
이때 마을 서쪽에 펼쳐진 소나무 숲에서, 다시 한떼의 기병들이 달려왔다. 기병 뒤쪽은 온통 황색의 사람 무리였다.
두 기병 부대가 만난 후, 남북 대로를 따라 마을로 쳐들어갔다.
기병 뒤를 따라, 시커먼 철통을 메고, 둥근 철모를 쓴 보병들이 벌떼같이 밀려들었다.
둑 위의 불은 꺼졌으나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하늘로 올라갔다.
강 둑은 온통 까맣게 되었고, 타다 남은 관목 가지에서는 좋은 불 냄새가 났다.
무수한 파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파리들은 말발굽에 밟혀 엉망이 된 시체 위에 내려앉았고, 땅바닥에 떨어진 피에 내려앉았고, 식물의 줄기와 잎에 내려앉았으며 대장의 몸 위에도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파리에 덮여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말라있었고, 눈꺼풀은 끈적였다.
눈앞에 흐리멍덩하게 매우 기괴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경들이 펼쳐졌다.
말 몸뚱이를 벗어 나와 뛰는 말 다리, 머리에 칼이 박힌 망아지, 벌거벗은 나체, 양다리 사이에 거대한 양물을 늘어뜨린 남자, 달걀을 낳은 암탉처럼 '구구구구' 소리 내며 여기저기 굴 러다니는 사람 머리. 그리고 몇 마리의, 섬세한 작은 다리가 난, 그녀 바로 앞 깨 밭에서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는 물고기도 있었다.
가장 그녀를 겁나게 한 것은 그녀가 벌써 죽은 죽 알았던 대장이 뜻밖에 천천히, 끙끙거리며 일어나더니 무릎으로 걸어가, 자기 어깨에서 잘려나간 살가죽을 찾아내 늘려 펴서 상처에 붙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살가죽은 금세 상처에서 떨어져 잡초 덤불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그것을 집어 땅바닥에 몇 번 털고는 털기를 그쳤다.
그러고 나서 걸치고 있던 누더기에서 천을 한 조각 찢어 그것을 단단히 싸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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