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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4장 (2/2)

 

 

손씨네 정원 담장 앞을 지나갈 때, 그는 천만다행으로 손씨네 민둥민둥한 담장 위가 조용한 것을 보았다.

터진 입구를 말처럼 타고 있던 벙어리도 없었고,  담장 앞에 웅크리고 있던 닭도 없었으며, 개들도 담 쪽에서 꿈을 꾸고 있지 않았다.

손씨네 정원 담장은 원래 매우 낮았는데, 벙어리들이 기어 나오는 터진 곳 뒤는 더욱 낮았다.

그의 시선은 담장 너머를 향했고, 손씨네 정원 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정원 안에서는 막 한바탕 살육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살육되는 쪽은 손씨네 고독하고 거만한 닭이었고, 도살자는 손씨네 늙은 할머니, 무술이 뛰어나다는 여인, 손씨네 큰 고모였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손씨네 큰 고모가 젊었을 때는 능히 추녀와 담벼락을 뛰어넘는 강호의 유명한  여자 마적이었다고 하는데, 단지 큰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땜장이 손 씨에게 시집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원 안에 널브러져 있는 일곱 개의 죽은 닭 대가리를 보았다.

반들반들하고 하얗게 보이는 지면에 둥글둥글 닭피가 칠해져 있었는데, 그것은 죽음에 임박한 닭이 최후의 발악을 할 때 남겨진 흔적이었다.

다시 한 마리의 숨통이 잘린 닭이 손 씨 큰 고모의 손에서 내던져졌다. 닭은 땅에 떨어지면서 목을 움츠리고, 날개를 푸드덕대며 발로 버티며 빙글빙글 돌았다.

다섯 벙어리들은 모두 어깨를 드러내고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 멍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발버둥 치며 도는 닭을 보았고, 때때로 날카로운 것을 손에 든 할머니를 보았다.

그들의 표정과 동작들은 모두 놀랄 만큼 일치되어 있어서, 시선을 돌리는 것마저도 통일된 호령을 따르는 것 같았다.

시골에서 훌륭한 명성을 뽐내는 손 씨 큰고모는 기실 뼈만 남아 앙상하고, 얼굴이 파리하게 여윈 노인이었다.

그녀의 얼굴, 안색, 몸놀림, 거드름은 옛날 정보가 전해진 것이었고, 사람들은그것으로 그녀의 당시의 영웅적인 자태를 추측했다.

그 다섯 마리의 검은 개들은 함께 무리를 이루어 머리를 치켜들고 앉아있었다. 개들 눈에서는 막연하기 짝이 없는 신비 그리고 황량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아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할 수 없었다.

손씨네 정원 안의 정경은 하나의 매력 넘치는 무대여서, 상관쇼우씨의 시선과 발걸음을 사로잡았고, 그로 하여금 복잡하게 얽혀있는 번뇌를 잊어버리게 했으며, 무엇보다 모친의 명령마저 잊게 했다.

이 42세의 철부지 남자는 손씨네 담장을 굽어보는데  몰두했다.

그는 손씨네 큰고모가 사방을 휘둘러 보다가 그 눈길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한 자루의 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바람처럼 예리한 보검 같아서, 거의 자기 머리를 벗겨버릴 것 같았다.

벙어리들과 그들의 개들도 얼굴을 돌리고, 눈동자를 돌렸다.

벙어리들의 눈에서 거의 사악하고 흥분되고 불안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개들은 머리를 기울이며 예리한 하얀 이빨을 드러냈고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낮으막한 포효소리를 냈다. 개들 목 위의 빳빳한 털이 똑바로 서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의 개는 다섯 개의 당겨진 활시위에 걸린 화살같이 언제든지 발사되어 날아올 수 있었다.

그가 막 도망치려고 하는데, 손씨네 큰고모의 위엄 있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벙어리들의 흥분으로 팽창했던 머리가 갑자기 활기를 잃고 수그러들었고, 다섯 마리의 개들도 공손하게 앞 발을 펴더니 엎드렸다.

손씨네 큰고모가 유연하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상관네 큰 조카구나.  네 엄마는 집에서 뭐 하고 있냐?"

그는 순간 손씨네 큰고모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일 수 없었다.

마치 천 가지 만 가지 말이 입가에서 용솟음쳤지만, 말 한마디조차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얼굴에 궁색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우물했는데, 마치 범행 현장에서 목덜미를 집힌 좀도둑 같았다.

손씨네 큰고모는 그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붉은 꼬리 날개가 난 큰 수탉을 한 손에 움켜잡더니, 가볍게 닭의 비단같이 매끄러운 깃털을 어루만졌다.

수탉은 겁을 먹고 불안해서 꼬꼬댁거렸다.

그녀는 닭의 꼬리털에서 풍성하고 탄력 있는 깃털을 뽑아, 갯버들로 짠 자루에 쑤셔 박았다.

수탉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고 결사적으로 발톱으로 흙을 튀겼다.

손씨네 큰 고모가 말했다. "너희 집 아낙네들도 제기찰 줄 알지? 살아있는 수탉에서 뽑은 깃털로 제기를 만들면 얼마나 차기 좋은데, 음,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는 상관쇼우씨를 흘끗 보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고,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멍한 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흙 담을 보는 것 같기도 하였고, 또 흙벽을 꿰뚫고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상관쇼우씨는 눈알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감히  숨도 크게 내쉴 수 없었다.

결국 손씨네 큰고모는 고무공에서 바람이 빠지듯, 원기 왕성하고 반짝반짝하던 눈빛이 부드럽고 처량하게 변했다.

그녀는 수탉의 두발을 밟고 왼손으로 닭의 날갯죽지를 틀어쥐고, 집게손 가라과 엄지 손가락으로 수탉의  목을 쥐었다.

수탉이 꼼작도 못하게 되자 발버둥 칠 능력도 사라졌다.

그녀는 오른손의 집게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뻗어 수탉 목에 빽빽이 나있는 가느다란 깃털을 뜯어냈다. 붉은색 닭 피부가 드러났다. 그녀는 오른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닭 목구멍을 튕겼다.

그런 다음 눈부신, 버들잎 같은 작은 칼로 가볍게 한번  긋자, 닭의 목구멍이 훤하게 열렸고, 한줄기 검은색 피가 뭉글뭉글, 큰 방울이 작은 방울을 뒤쫏듯 뿜어져 나오며....

손씨네 큰고모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수탉을 들고 느릿느릿 일어났다.

그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밝은 햇살에 그녀는 실눈을 떴다.

상관쇼우씨는 머리가 어찔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계수나무 향기가 그윽이 퍼져왔다.

"가거라!" 그는 손씨네 큰 고모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시꺼먼  큰 수탉은 날다가 공중에서 뒤집히며 곤두박질치더니 결국 무겁게 정원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담장 위를 잡고 있던 두 손을 천천히 풀었다.

이때 그는 문득 검정 노새의 새끼를 받기  위해 환씨 셋째 아저씨를 부르러 가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몸을 빼어 가려고 하는 순간, 기적처럼 수탉이 양 날개에 몸을 지탱하고 죽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일어섰다.

그놈은 높게 뻗쳤던 꼬리 깃털을 잃고, 발가 벗겨진 꽁무니 털 뿌리를 치켜들었다. 추하고 기괴한 모습은 상관쇼우씨를 놀라고 두렵게 했다. 닭의 목은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졌으며, 선혈이 뚝뚝 떨어졌고, 원래 핏빛으로 빨갛게 솟아있는 벼슬을 했던 닭 머리는 견디지 못하고 창백하게 변했다.

그놈은 머리를 들려고 노력했다. 아, 노력이라니!

그놈은 머리를 치켜들고, 치켜들다가, 갑자기 목이 아래로 숙여져서,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그놈의 머리는 치켜들었다가 떨어지고, 치켜들었다가 떨어지고, 하지만 결국은 치켜들었다.

수탉은 흔들흔들하는 머리를 쳐들고,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았다. 피와 거품이 그놈의 단단한 부리와 목 위의 칼에 베인 상처에서 꾸르륵꾸르륵 흘러나왔다.

그놈의 황금색 눈알은 두 개의 금빛 별 같았다.

손씨네 큰 고모는 조금 불안해 떠는 것 같았고, 한 움큼 잡초를  듣어 손을 문질렀다.

그녀는 무언가 중얼중얼하는 것 같았는데, 실은 아무것도 중얼거리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가 침을 탁 뱉더니 다섯 마리 개에게 한마디 소리쳤다.

"먹어!"

상관쇼우씨는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아있었다.

그가 담벼락을 잡고 일어났을 때, 손씨네 집 정원 안에서는 벌써 검은 털이 어지러이 날았고, 그 거만했던 수탉은 네 다섯 동강이로 찢어져, 피와 고기가 땅 위에 나뒹굴었다.

개들은 늑대같이 닭의 내장을 두고 싸움을 벌였다.

벙어리들은 박수를 치면서, 하하 거리며 바보같이 웃었다.

손씨네 큰 고모는 문턱에 앉아, 긴 담배대를 들고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듯 담배를 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