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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4장 (1/2)

 

 

수의사이자 "궁수(弓手)"인 환(樊) 씨네 셋째 아저씨의 집은 마을 동쪽 끝이고, 동남쪽 방향으로 계속 가면 흑수하(黑水河) 강변에 닿는, 황폐한 습지와 바짝 붙어있었다.

그의 집 마당 뒤쪽은 구불구불 백리나 뻗어있는 교룡하(蛟龙河)의 높은 제방이었다.

상관쇼우씨는 모친이 다그치는 바람에, 겁이 나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마지못해 집을 걸어 나왔다.

그는 숲 나무 끝을 넘어선 태양이 이미 빛나는 하얀 공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교회당 종루 위에 있는 십여 개의 스테인드 그라스가 눈 부셨고, 종루와 같은 높이의 전망대에는 복생당 큰 주인 쓰마팅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소리치며, 일본인들이 곧 마을로 들어올 것이라는 경고를 퍼뜨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어깨동무를 한 한기한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상관쇼우씨는 골목 한가운데 서서, 환씨네 셋째 아저씨네 집을 어느 길로 갈까 머뭇거렸다. 환씨네 셋째 아저씨 집에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큰 거리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둑길로 가는 길이었다.

둑길은 손 씨네 검은 개떼들이 시끄럽게 할까 봐 겁이 났다.

손 씨네 허름한 정원은 골목 북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정원 담장은 낮았고, 담장에는 몇 군데 훤히 터진 곳이 있었으며, 터지지 않은 곳에는 늘 닭 무리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손 씨네 집의 가장은 손씨 큰고모였는데, 다섯 벙어리  손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벙어리들의 부모는 아예 존재한 적도 없는 것 같이 보였다.

다섯 벙어리들은 담장 위로 기어서 왔다 갔다 했는데, 다섯 군데의 터진 틈으로 기어 나오기도 했다. 담장은 은 꼭 말안장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씩 번갈아 갈라진 틈 담장 위에 올라탔는데 마치 준마를 탄 것 같았다.

그들은 손에 곤봉, 새총, 혹은 나무를 깎아 만든 칼과 창을 들고, 흰자위가 훨씬 많은 눈으로 음흉하게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존중했으나, 동물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송아지든 살쾡이든 거위든 혹은 개나 닭이든 보기만 하면 바로 그들의 개를 시켜 끝까지 쫓아가게 했다.

그러면 그렇게나 큰 시골 마을이 순식간에 수렵장으로 변했다.

작년에 그들이 한패가 되어 복생당의 고삐를 벗은 큰 노새를 쫓아가 죽이고는 왁자지껄한 큰 거리에서 가죽을 벗기고 살을 도려낸 일이 있었다.

사람들마다 큰 구경거리를 보려고 기대했다.

복생당의 사업은 컸으며, 외지에서 연대장을 하는 사촌도 있었고, 현성에서 경관을 하는 친척도 있었고, 집안에서 큰소리 땅땅 치는 장난감권총 찬 아이들도 기르고 있었다.

복생당 큰 주인이 큰  거리에 나서자 현의 절반 정도가 벌벌 떨었다.

공공연히 남의 집 노새를 도살했으니, 죽으려고 작정한 것과 뭐가 다르겠나?

복생당의 둘째 주인, 쓰마쿠(司马库) ---- 그의 사격술은 기막히게 정확했고, 얼굴에 손바닥만 한 붉은 반점이 있다 ---- 그는 총을 꺼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전  다섯 개를 꺼내 벙어리 오 형제에게 상을 주었다.

이때부터 벙어리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졌고, 마을 가축들은 그들을 보면, 오직 부모가 두 날개를 빼놓고 낳아준 것을 원망하며 도망가기 바빴다.

그들이 담장을 타고 앉아 위엄을 뽐낼 때, 다섯 마리의 먹물에서 건져올 린 듯 전신에 한 오라기의 잡털도 없는 검은 개들은 언제나 게으름을 부리면서 담장 밑에 누워,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놈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손씨네 벙어리들과 그들의 개들은 같은 골목에 사는 상관쇼우씨에 대하여 깊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인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열개의 도깨비들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담장을 타고 있는 그들과 담장 밑에 진을 치고 누워있는 개들을 마주치기만 하면  그건 악운이 눈앞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비록 그가 벙어리들에게 매번 미소를 짓지만, 여전히 다섯 개의 화살처럼 달려드는  검은 개떼의 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비록 이 습격이 기껏 위협하는 것일 뿐, 결코 그를 물어서 가죽과 살에 상처를 내놓지는 않지만, 그는 겁에 질려 전전긍긍앴고, 그런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그는 남쪽으로 가서, 횡관촌 마을 큰길을 경유해서, 환씨네 세채아저씨 집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큰 거리를 가려면 반드시 교회당 문 앞을 지나가야 한다.

키 크고 뚱뚱한, 붉은 머리털에 파란 눈동자의 말로야 목사가 지금 이때쯤이면 반드시, 대문 밖, 전체가 단단한 가시로 덮인, 매운 냄새를 퍼뜨리는 산초나무 아래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가늘고 부드러운 노란 털이 숭숭 난, 새빨간 커다란 손으로, 아래턱에 세 뭉치의 수염이 난 염소의 빨갛게 퉁퉁 부은 젖을 짜고 있을 것이다. 푸르다 할 만큼 하얀 젖은 소리를 내며 그의 이미 벗겨져서 녹이 슨 법랑 대야 속으로 소리 내며 뿜어질 것이다.

떼를 이룬 빨간 대가리의 푸른 파리들은 말로야와 그의 염소를 에워싸고 붕붕거리며 날며 춤추고 있을 것이다.

산초나무의 매운 냄새, 염소의 노린내, 말로야의 비린내가 혼합되어 더럽고 탁한 냄새가 진동하면서, 화창한 세계로 퍼져나가고, 거리의 반을 오염시킬 것이다.

상관쇼우씨가 제일 참기 힘든 것은 젖 산양 엉덩이 뒤에서 말로야가 고개를 들고 던지는 그 모호하고 애매한  일별(一瞥: 흘끗 봄)이었다.

비록 그의 얼굴에 우호적이고, 세상을 한탄하고 백성들의 질곡을 불쌍히 여기는 미소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미소 때문에 말로야의 입술이 위로 당겨지면, 말같이 새하얀 치아가 드러난다.

굵고 큰 더러운 손가락으로 털이 더부룩한 가슴에 성호를 그리며, 아엔!

상관쇼우씨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는 언제나 오장육부가 뒤집히고, 만감이 교차하여 꼬리를 다리사이에 감춘 개처럼 도망갔다.

벙어리 집안의 흉악한 개를 피하는 것은 공포 때문이다.

말로야와 그의 염소를 피하는 것은 혐오 때문이다.

더욱 그를 혐오하게 만든 것은 자기 처, 상관루스가 뜻밖에 이 붉은 털북숭이 자식에 대하여 일종의 특별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경건한 신도였고, 그는 그녀의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 짐작을 거듭한 끝에, 상관쇼우씨는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동쪽으로 꺾어서 환씨네 셋째 아저씨를 부르러 가기로 결정했다.

비록 전망대 위에 있는 쓰마팅과 전망대 아래의 왁자지껄함이 그를 심하게 유혹할 테지만 어쩔 수 없다.

전망대 위에서 엉터리 짓을 하는 복생당 큰 주인을 빼면 마을은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일본인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졌고, 모친의 판단력에 경탄했다.

그는 다섯 마리의 흉악한 개에 대응하여 벽돌 덩어리를 두 개 주워 손에 꽉 쥐었다.

그는 거리에서 당나귀가 높고 낭랑한 소리로 우는 소리를 들었고, 그밖에  어떤 여인이 이이를 부르는 고함 소리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