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륙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대룩의 여인<原題:풍유비둔(丰乳肥臀):莫言>. 3장 (1/2)

살바도르 달리 "전쟁의 민낯" (1940-1941년 작)

 

 

서쪽 사랑채 방의 돌절구대 위에는 평평한 모양의 지저분한 콩기름 등잔불이 밝혀져 있었다. 등잔불의 어슴푸레한 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뾰족한 불꽃 끝에서는 한줄기 검은 연기가 나선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콩기름 타는 냄새가 나귀 똥, 나귀 오줌 냄새와 함께 뒤섞여 사랑채 안의 공기는 혼탁했다.

돌절구 한쪽에는 청석 구유가 바짝 붙어있었다.

상관 집안의 이 출산이 임박한 검은 나귀는 돌절구와 구유 중간에 누워있었다.

상관뤼스가 사랑채로 들어가니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콩기름 등불뿐이었다.

어둠 가운데서 상관후루(上官福禄)가 조바심하며 물었다.

"애 엄마가 뭐 낳았어?"

상관뤼스는 남편 방향에 대고 입을 삐쭉거렸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땅바닥에 있는 검은 나귀와 나귀 옆에 꿇어앉아 나귀 배에 안마를 해주고 있는 상관쇼우씨를 지나 창호문 앞으로 가더니, 화가 난 것처럼 창에 바른 검은 종이를 확 찢어 내렸다.

십여  가닥의 네모난 금빛 햇살이 돌연 벽면의 반을 환하게 비췄다.

그녀는 몸을 돌려 돌절구 앞으로 가더니 절구 위에 있는  기름 등불을 훅 불어서 껐다.

콩기름 타는 향기가 금세 방안에 가득 차면서 사랑채 안의 비릿한 냄새를 눌러버렸다.

상관쇼우씨의 검고 번지르르한 작은 얼굴에 햇빛이 비추자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두 개의 새까만 작은 눈이 반짝거려 마치 두 덩이의 숯불 같았다.

그는 쭈뼛쭈뼛하며 자기 모친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우리도 도망가요. 복생당 사람들도 모두 달아났고, 일본 놈들이 곧 올 거래요...."

상관뤼스가 제대로 사람 구실을 못해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정면으로 쏘아보며, 그가 시선을 슬슬 피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자, 그는 땀방울에 젖은 작은 얼굴을 푹 숙였다.

"누가 너에게 일본 놈이 올 거라고 그래?"

상관뤼스는 사납게 아들에게 물었다.

"복생당 큰 주인이 또 총을 쏘고  또 소리쳤는데...."

상관쇼우씨는 한쪽 팔을 들어 올려 나귀 털 투성이인 손등으로 얼굴의 땀을 문지르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관뤼스의 큼직하고 살이 쪄서 두툼한 손바닥과 비교해 보면, 상괸쇼우씨의 손은 작았고 또 허약했다.

그는 갑자기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섬세하고 민첩한 작은 두귀를 쫑긋 세우고 무언가 세심히 들으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소리 좀 들어보세요!"

쓰마팅의 목쉰 목소리가 멀리서 사랑채까지 바람에 날려 왔다.

"큰 아버님, 큰 어머님들 ---- 아저씨, 아주머니들 ---- 형님, 형수님들 ---- 형제자매들 ---- 빨리 도망가세요. 피난 가세요. 동남쪽 황무지에 농작물 묘목 심어놓은 곳으로 잠시 피하세요 ---- 일본 놈들이 곧 들이닥쳐요 ----  나에게 믿을만한 정보가 있어요. 절대  거짓이 아니에요. 여러분들 절대 머뭇거리지 말고 도망치세요. 집 몇 칸 부서지는 거 아까워 마세요. 깊은 산에도 사람이 살고, 세상이 또 있는 거예요. ----  여러분 얼른 도망가세요. 늦으면 제시간에 못 가요...."

상관쇼우씨는 얼른 일어나 두려워하며 말했다.

"어머니, 저 소리 들려요? 우리 집도 도망가요...."

"도망가긴, 어디로 도망간다는 거야?" 상과뤼스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복생당이야 당연히 도망가야겠지. 그런데 우리가 도망가서 뭐 해? 상관네 집안은 쇠나 두드리고, 밭이나 심어 먹고살았는데, 우리가 나라 곡식을 빚졌나, 세금을 빚졌나? 그렇다고 누가 벼슬을 살았나? 우린 언제나 남을 위해 산 거야. 일본인이라고 사람이 아니야? 일본인이 동북향을 점령하더라도 그들 역시 우리 백성에게 의지할 테고, 그들에게 세금 몇 푼 바치면 되는 거 아니야? 여보, 당신이 집안 어른인데, 내 말이 맞아요, 틀려요?"

상관후루가 입을 벌리자, 두 줄의 단단한 누런 이빨이 드러났고, 얼굴 표정은 웃는지 우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상관뤼스가 화를 내며 말했다. "닌 당신한테 물었어요. 이빨을 드러내고 입만 벌리면 뭘 해요? 돌태(탈곡하는데 쓰는 농기구)로 누른다고 방귀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상관후루가 우거지상이 되어 말했다. "내가 뭘 알겠어? 당신이 도망가자고 하면 우리가 도망가는 거고, 당신이 도망 안 간다고 하면 우리가 도망가지 않는 거지 뭐!"

상관뤼스는 탄식하며 말했다. "이 판 사판이에요. 멍하니 뭐 하고 있어요? 얼른 나귀 배나 주무르세요!"

상관쇼우씨는 입을 벙끗벙끗하다가, 용기를 내어,  뱃심을 주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애 엄마가 애를 낳았어요, 말았어요?"

"사내대장부가 한번 결심했으면 곁눈질하면 안 돼. 넌 그저 나귀만 돌보면 되지, 마누라 일은 왜 신경 쓰고 그래? 걱정하지 마." 상관뤼스가 말했다.

"내처니까 그러죠..." 상관쇼우씨가 중얼거렸다.

"그 애가 네 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마무도 없어." 상관뤼스가 말했다.

"내  예상으로는 처가 이번에는 남자아이를 임신했을 거예요."상관쇼우씨가 나귀 배를 주무르며 말했다. "배가 놀랄 만큼 크거든요."

"못난 놈...."  상관뤼스가 아들의 기를 꺾으며 말했다. "관세음보살이 보우하셔야 돼."

상관쇼우씨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었지만, 모친의 슬픈 눈빛에 입을 닫았다.

상관후루가 말했다. "당신들은 여기서 수고 좀 하고 있어. 내가 거리에 나가서 동정을 좀 살펴볼게."

"당신 내쪽으로 와요." 상관뤼스가 남편의 어깨를 잡고, 그를 나귀 앞으로 끌고 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거리에 무슨 당신이 살펴볼 동정이 있다고 그래요? 나귀 뱃가죽이나 안마하세요. 그놈이 조금이라도 빨리 새끼를 낳도록!

관세음보살님, 하느님. 상관 집안의 조상들은 모두 쇠를 주무르는 대장부 들인데 어떻게 저런 못난이 자손들이 생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