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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紀行

나는 휴대폰을 잃고, 자유를 찾았다.

노천 목욕탕(휴대폰 분실 장소)

 

2024.3.12.

날이 참으로 화창했다.

우리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끝내고, 처음 출발했던 높은 마을 좀롱에서 잤다. 그리고 이침에 촘롱을 내려와 포카라로 가는 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가게와 음식점이 몇 집 있는 제일 아랫마을에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가이드 보라딥은 시간도 많으니 노천 온천에 가자고 했고, 우리는 식당에 짐을 맡겨둔 채 수건 등 간단한 물품만 챙겨서 그를 따라나섰다. 보라딥이 노천온천이 멀지 않은 곳이라 슬리퍼를 신고 가도 된다고 해서 나는 슬리퍼를 신고, 핸드폰과 수간을 넣은 비닐백만 들고 따라갔다.

15분이면 간다던 노천 온천은 꽤나 멀어서 30분은 걸린 것 같았고, 길도 오르막 내리막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등산화를 신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겨우 겨우 가이드 보라딥을 따라갔다.

노천 온천은 넓은 계곡 한옆에 있는 노천 욕조로 경치도 좋았고, 몰도 따뜻해서 나흘간의 트레킹 피곤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사람도 많지 않아 우리 일행과 유럽인인듯한 서너명이 전부였다.

목욕을 마치고 짐을 챙겨 돌아오는데, 휴대폰이 인 보였다.

생각해 보니, 여기 올 때 가지고 왔었나 하는 것도 확실치 않아서, 식당에 놓고 왔겠거니 편하게 생각하고 돌아왔다.

식당에 돌아와 짐을 꺼내놓고 하나하나 뒤져 보았으나 역시 없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이다.

순간 앞이 노래졌다. 이걸 어쩌지? 연락처가 모두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엄연한 현실.

지프차를 타고 포카라로 오는 내내 암울하기만 했다.

어찌나 걱정되었는지 길이 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별의별 비관적인 생각이 다 났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포카라에서 나는 180루피(1800원)를 주고 작은 노트를 하나 샀다.

휴대폰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갈 랑탕히말 여정에서 떠오르는 상념들을 적기 위해서다.

랑탕계곡을 오르며, 친구들은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메고 간 소니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사진 찍는 문제는 아쉬울 게 없었다.

로지에서 머무는 시간, 친구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휴대폰을 주물럭 거렸는데, 그들이 바쁜 동안, 나는 참으로 한가했다.

며칠 지나자, 휴대폰에서 해방되어 편해졌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생각이  자유로워진 나는, 남들이 휴대폰에 매여있을 때, 나는 공책에 볼펜으로 떠오르는 상념들을 적어갔다. 쓰다가 생각이 바뀌면 볼펜으로 쓱쓱 긋고 다시 쓰고...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일부러 그렀던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휴대폰에서 해방된 것이다.

히말라야 로지에서 잠 안 오는 기나긴 밤, 노트에 끄적끄적 적어온 생각들로 나는 벌써 히말라야 기행문을 여섯 편이나 썼다.

그리고 아직도 서너 가지는 더 쓸 게 있다.

25일간의 히말라야 여정에서 열 편의 수필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고 다녔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는 핸드폰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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