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티(Yeti)는 히말라야에 산다는 상상 속의 유인원으로 보통 설인(雪人)이라고 부른다. 예티는 키가 2미터가 넘고 털은 흰색 또는 갈색이며, 힘은 야크를 제압할 정도로 세지만 겁이 많고 온순하여 거의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예티를 네팔 산악 박물관에 가니, 상상도와 발자국 등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 예티 이름을 딴, 예티항공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서 카드만두로 올 때 일어났던 실수담을 창피하지만 이실직고하겠다.
나는 예티항공, 작고 아담한 비행기를 타고, 그 비행기에 하나밖에 없는 예쁜 여승무원에게 보딩패스를 내밀었다.
flight no 687, 좌석번호 2D.
그녀는 나를 제일 앞에서 두 번째 자리로 안내했고, 나는 거기 앉았다.
아무 이상 있을 게 없었다.
헌데, 조금 있다가 50대쯤으로 보이는 네팔 사람이 내 자리로 오더니 자기 표를 내밀었다. 역시 좌석번호 2 D.
나도 지지않고 내 좌석표를 내밀었다. 나 역시 2 D.
이미 비행기는 활주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비행기는 중간에 잠시 섰다 가는 일이 없음으로 기왕 떴으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든, 카트만두까지 가야 멈춘다.
마침 여승무원은 비상탈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두 손을 올렸다 앞으로 내밀었다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나라 비행기에서는 비상시 바다에 떨어질 때 탈출 요령을 설명하는데, 내륙국인 더군다나 히말라야 산중을 오가는 네팔 비행기에서 무얼 설명할까? 궁금했지만, 네팔 말을 모르니 알 수가 없다.
이윽고 탈출 시범이 끝났다. 나는 옆사람표와 내 표를 그녀에게 주며 어찌 같은 비행기에서 한 좌석에 두장의 표를 발행할 수 있는지 따졌다. 그녀가 우리 둘의 표를 가지고 가더니 한참 만에 돌아와서 말했다. 둘 중 하나가 이번 비행기 표가 아니라 날자가 지난 표라고 했다.
나는 놀라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앗차! 내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올 때 받았던 보딩 패스를 낸 것이다.
얼른 여권을 꺼내보니 새로 받은 보딩 패스가 접힌채 끼워져 있었다. 내 좌석은 6 C.
여승무원은 네팔 사람이 지나간 표를 잘 못 낸 줄 착각하고, 그에게 네팔 말로 몇 마디 잔소리를 했다.
아마 "조심하세요." 하는 말이었겠지.
그는 누명을 썼지만 별 대꾸 없이 덤덤히 앉아 있었고, 죄를 진 나야 더욱 할 말이 없으니 그냥 있을밖에.
문득 내가 앉았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니 거기도 누군가 앉아 있었다.
다행히 나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탄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윽고 비행기는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와 공항 건물로 가는 버스 속에서, 어떤 네팔 아줌마가 옆 사람에게 핏대를 올리며 얘기하고 있었다.
네팔 말을 모르니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코리안 어쩌고 하는 품이 나 때문에 엉뚱한 좌석에 앉아왔다고 푸념하는 것 같았다.
"이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무슨 네팔까지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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