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8일.
랑탕 마을(해발 3400m)에서 강진곰파(하발 3850m)까지 6km를 걸어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둘러 숙소를 정하고, 점심을 먹은 후, 바로 동네 앞에 있는 강진리 1봉을 향해 지그재그 형태로 길이 나 있는,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표는 4350m, 강진리 1봉.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만되어 나는 갑자기 고소증세를 느꼈다.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다리 힘이 쭉 빠지면서, 아주 천천히 걷는데도 힘이 들었다. 친구들은 벌써 나를 앞서 갔고, 나도 뒤에 쳐지긴 했지만 계속 멈추지 않고 따라갔다.
나는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고통을 잊기 위해서 발자국 수를 세면서 올라갔다. 하나, 둘, 셋.... 스믈. 거기서 숨을 돌리고 또다시 스무 발자국.
이렇게 가다가 더욱 힘이 빠지자 이번에는 열 발자국씩 걸었다. 나는 열 발자국 걸음을 멈추고 쉴 때마다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앞서 가던 산악 가이드 유보가 걱정이 되는지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물을 건네주면서 괜찮은지 묻는다.
나는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I must go there! (나 거기 꼭 가야 해).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앞서 올라갔고, 나는 또다시 뒤처지기 시작했다.
내가 겨우겨우 중턱쯤 올라갔을 때, 우리 일행은 벌써 팔부 능선 정도에 올라가 있었다. 강진리 1봉 정상은 아득하게만 보였고, 다리는 힘이 더욱 빠져서 이제는 한 발짝 옮기는데도 한참 걸리는 지경이 되었다.
신(神)을 만나러 갈 때는 네발로 기어서 가야 한다더니, 오늘 하늘에 있는 우리 외손녀를 만나려다 보니 이렇게 힘드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유보가 다시 내려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I must go there."
하지만 이번에는 꼭 가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I want to build a little tarcho, for my grand daughter. She went to heaven 13 years ago. I want to have a little farewell ceremony at the top of the mountain for her."
(나는 우리 손녀를 위해 작은 타르초를 세우고 싶어. 그 애는 13년 전 하늘나라로 갔는데, 나는 山頂에서 작은 이별 의식을 하고 싶은 거야.)
사실 나는 타르초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펄럭이는 타르초를 세워주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가이드 유보는 티베트계 고산족답게 금세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나에게 조그만 스투파(돌탑)를 세우자고 한 것이다. 그는 타르초와 스투파는 형태는 다르지만 바람 앞에 서 있는 의미는 같은 것이라고 했다.
어디서 없던 힘이 생겼는지, 나는 유보와 곧 4350m 산정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맞은편에 높은 설산이 보이고 앞이 환히 트였으며, 큼직한 타르초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외손녀를 위한 스투파를 세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조그만 돌탑을 쌓을 적당한 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에 유보는 부지런히 근처를 오가며 돌을 주워왔다.
우리는 얼기설기 돌을 쌓아 작은 탑을 만들었다.
탑이 완성되자 나는 간단한 이별 의식을 집행했다.
"우리 외손녀, 잘 가라.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라!"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으나, "우리 외손녀 잘 가라"라는 첫 말도 목이 메어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산정에 올라 사진을 찍던 서양인 젊은 남녀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보았다. 내가 그들에게 하늘나라에 간 손녀를 위한 고별 의식이라 하니 금세 산정은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내려오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늘 마음속에 숙제처럼 남아있던, 외손녀를 위한 타르초 짓는 일을 마쳐서인지, 뿌듯한 기분에 힘이 생겼나 보다. 나는 가이드 유보와 거의 같은 속도로 내려올 수 있었다.
"외손녀야, 잘 가라. 너는 언제나 내 가슴속에 살아있다. 이제 이렇게 높은 히말라야 봉우리에 너를 위한 돌탑까지 세웠으니 너와 나는 마음이 연결된 거다. 저 스투파는 너와 나를 마음으로 이어주는 변함없이 튼튼한 밧줄인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여러 차례 유보에게 스투파를 만들어 준 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다가 마을 가까이 내려오자 덤덤히 말했다.
"That's my duty! (그건 내 의무입니다)"
나는 그 말은 그의 산악 가이드로서 의무가 아니고 고산족 불교도로서의 의무임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랑탕 계곡을 올라갔다.
나는 일행과 떨어져 유보와 같이 뒤따라 오면서, 내가 세운 스투파가 있는 강진리 1봉의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유보에게 와이프가 여기 와서 볼 수는 없지만 스투파가 있는 4350m 봉우리를 사진으로라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내가 왜 자꾸 뒤처져서 오는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속의 타르초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오늘도 히말라야, 높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는 어김없이 타르초가 펄럭인다.
그건 하늘에 알리고 싶은 염원을 바람이 실어가 신(神)에게 전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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