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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남해에 가서 나무 한 구루를 심다.(去南海栽一棵树 ) 3/5 : 刘醒龙

시안에 있는 종루

 

2008년 1월 10일, 시닝(西宁)에서 시안( 西安)으로 가는 항공편을 몇 번 놓치고, 저녁 6시 20분이 되어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시안에 도착해서 부친 짐을 찾는 중, 딸애에게서 전화가 와서, 아빠 생일을 즐겁게 보내라고 했다.

공항 밖에서는 산야(三亚)에서 알게된,이국평 등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섬서성 작가협회 사무실 주임, 양의가 직접 모는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에 들어가, 곧바로 식당으로 가니, 솔홍가과 주연분, 이청하 등이 거기서 벌써 여러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나는 시닝 공항에서 사 온 설가(雪茄 - 담배) 한 갑을 진충실에게 주었다. 막 인사를 끝내고 나자, 진충실이 먼저 < 영원으로 가는 문>에 대하여 말을 꺼냈다. 그는 그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섬서 사투리로, 곧 있을 제7회 모순 문학상 심사에 대해 말하며, < 영원으로 가는 문 >이 어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분명히 진충실의 이 말은 설가 담배 한 갑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었다. 진충실이 보기에는 천하의 설가 모두가, 문을 닫은 바오지(宝鸡 섬서성 서남부 도시) 궈년공장에서 출시한 한 갑에 7원짜리 설가만 못했을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는 먼저 제4회 때, 나의 처녀작 장편 소설 < 위풍당당 >이 < 백록원 >과 같이 첫 평가 20부 안에 들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다시,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익명 편지를 보낸 일을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좋지 않은 징조라고 말했다.

진충실이 이 말을 듣더니, 하하 큰소리로 웃으며, 단 한마디 했다. "술이나 마십시다!"

술이 한잔 들어가니, 진충실은 다시 나를 보며 싱긋이 웃었다. 이번의 웃음은 의미심장했다.

나중에 2011년 8월, < 영원으로 가는 문 > 이후의 창작 장편소설 < 스카이 워커 >로 제8회 모순 문학상을 탔을 때, 당초 진충실의 웃음소리가 떠올랐고, 갑자기 그 말속에 있는 그의 유머 센스가 느껴졌다.

대화하는 중간에 주샤오루는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밝혔다. 진충실은 얼른 이국평을 시켜서, 여행 중이지만,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수면(寿面: 생일 축하 국수)도 먹고 생일 케이크도 나누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시안에서 한참 뜨는 민속 가수 한 사람이 진충실을 따라 들어오더니, 생일 축하 노래도 한곡 불러주어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익명 편지로 인한 불쾌감이 순식간에 멀리 사라져 버렸다.

시안에서의 둘째 날, 이국평은 우리들에게 섬서성 작가협회를 한 바퀴 돌아보게 해 주었다. 거기서 안 것은 진충실의 사무실이 "서안사변(西安事变 : 장학량이 장개석을 구금한 사건)" 때, 장학량이 장개석을 잡아 가둔 곳이라는 것이다. 나는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다 싶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 이 방은 오로지 진충실 같은 사람이 있어야 방안의 기를 누르지, 다른 사람이 있었다간 아마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길 겁니다."

2008년 10월 28일 오후, 북경에서 제7회 모순 문학상 최종 평가 결과를 전해왔다. 수많은 위로 전화 가운데, 내가 정말 의외다 싶고, 감동받은 것은 진충실의 전화였다.

막 아내와 아들딸과 저녁을 먹는 중인데 진충실로 부터 전화가 왔다.

수화기에서 장탄식 소리가 났다. 그는 말했다. "정말 믿을 수 없소."

그는 얼마 전에 < 시안 일보 >와 인터뷰 중, < 영원으로 가는 문 >이 제일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진충실은 어찌 말해야 좋을지 몰라, 탄식 소리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이렇게 지속하기를 거의 10분 넘어 하면서도 그는 계속 전화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마치 진충실 본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범한 것 같았다.

그가 공개석상에서, 기자들에게 발표한 것은 개인의 예측일 뿐이고 무슨 약속을 실행해야 하는 것도 이닌데, 진충실은 탄식하며 말했다."이거 기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

결국, 오히려 내가 그를 격려하며 말했다. "나의 작품은 분명히 안 좋은 곳이 있어서 선택되지 않은 겁니다. 당초부터 감히 < 백록원 >과 대체될만한 진용 선생 같은 사람은 둘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처음으로, 나는 진충실과 힘을 합쳐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는 무형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문자로 서술하기 어려운 나무이며, 문학의 불굴의 기상이고, 무엇보다도, 인격의 깨끗하고 쾌활함이다.

이전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서명이 진충실로 되어 있었다. 내용은, 오직 어떤 청년작가를 추천하는 것이었는데, 대충 한번 읽어보니 그저 그랬다. 그래서 다시 자세히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인 나를 "您(선생님)"이라 칭한 것이다. 이건 분명히 나와 진충실 과의 계속된 교류에서 사용한 언어 습관과 부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충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나가듯 물어보았다.

진충실은 무슨 말로도 직접 표현하지 않았으며, 내가 편집하는 청년작가 추천 잡지에 지금까지 구체적인 작품을 추천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이일은 다른 사람 같으면 불쾌하게 생각하고 화를 내는 게 보통일 테지만, 진충실은 전화에서 저쪽에서, 담담한 어조로 이일을 간단히 업 급하고 지나갈 뿐, 두 번 다시 나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진충실은 어떡하든 성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때때로 이런 잔재주를 써먹는 청년작가들을, 해변에 심은 작은 나무를 광풍과 폭우의 계절에 보호하는 것처럼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