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충실(阵忠实: 중국 유명 작가)을 안 것은 해변에서였다.
그건 2003년 12월 말, 속칭 크리스마스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100만 자에 달하는 장편소설 < 영원으로 가는 문(圣天门口) > 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나는 6년간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아내와 딸을 데리고 남해도에 쉬러 갔다. 본 마음은 해구(하이난성의 북부 항구도시. 성도)를 떠날 때까지 친구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가족들과 조용히 지내려 했다. 그런데 쟝쯔단(蒋子丹)에게 문자로 '내가 왔는데, 그녀를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 하며, 현재 나는 싼야(도시명)로 가고 있다'라고 알렸다.
그랬더니,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 쟝쯔단은 바로 문자 답신과 전화로, 그녀가 지금 싼야에서 진충실과 같이 있으며, 그밖에 이국평 등 몇 사람의 문인과 같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우리 가족도 싼야에 오는 대로, 진충실과 일행들이 머무는 호텔로 오라고 했다.
원래 개인 민박집에서 쉬려던 내 계획이, 공개된 문학 활동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인상에 남는 것은, 우리 딸아이가 진충실을 보더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라 하지 말고, 아저씨라 부르라 했는데, 그 애는 말을 듣지 않았다. 진충실이 자기 아빠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여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날 우리는 경비대 소형 보트를 타고, 민간인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은, 군인들만 주둔해서 지키고 있는 작은 섬에 갔다.
조개껍데기로 그득 찬 해변 선착장에서 언덕으로 오르니, 한 떼의 해풍에 검게 그슬린 젊은 사병들이 나무 잔도(栈道: 벼랑에 낸 길)에서 열을 지어 우리를 영접했다. 그들은 씩씩하게 걸어와 제일 앞에 가고 있는 진충실에게 일제히 외쳤다. "수령님, 안녕하세요!"
검은색 어깨걸이 가방을 메고 있던 진충실은 순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를 수행하며 같이 섬에 오른 지역 경비대 정치위원이 그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한마디 깨우쳐주자 진충실은 그제야 조금 겸연쩍어 하며 큰소리로 한마디 했다.
"수고들 많구먼!"
뒤 따라가던 우리들은 웃음이 절로 나왔으나, 감히 웃을 수 없었다.
그 신비한 작은 섬에는 군인들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동물은 개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수놈, 한 마리는 암놈이었다. 사병들은 개 두 마리에게, 대만에 있는 중화민족의 영원한 공공의 적, 이름을 갖다 붙였다. 우리도 따라서 개 두 마리를 그렇게 부르자, 개들은 금세 뛰어왔다.
진충실도 따라서 그렇게 불렀는데, 두 마리 개는 이번에는 어쩐지 말을 듣지 않았다. 모두가 웃으며, 진충실의 산시 성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그놈들이 알아듣지 못하나 보다 말했다. 그 당시 대만의 몇몇 인사들이 우리의 선의(善意)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섬, 사방의 바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딸아이는 섬을 빙 둘러 있는 모래사장에서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조개껍데기와 산호를 주웠다. 어른들이 깊고 푸른, 넓은 바다를 마주하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침묵이었다.
하늘과 바다는 끝없고, 거대한 파도도 끝이 없다. 다른 곳의 바다와는 달리, 매년 매월 태풍이 힐퀴고 간 상처들이 보였다.
일반인이 올 수 없는 이 섬에 오르면, 누구나 예외 없이 나무를 한 구루 심어야 한다. 이것은 책임이며, 동시에 기념이기도 하다.
우리는 섬에 있는 인공 숲에, 힘을 합쳐 함께 나무를 한 구루 심었다. 이나무 심기는 내 생애에서 가장 신성한 일이었다.
조국 최남단에서 나무를 한 구루 심을 수 있었다. 그 나무는 개체로서 영예롭고, 민족 융성과 긴밀히 연관된, 운명을 함께할 나무였다. 정말 감동스러웠고, 감개무량했다.
아직 다섯 살이 채 안 된, 딸아이는 좋아하는 장난거리 보다 더 중요한 장중 장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꾸만,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한 부대장 있는 곳으로 가서, 황금같이 귀한 담수를 작은 손으로 퍼서 작은 나무들에 물을 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장병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반년 후, 진충실이 우리들 모든 작가들의 단장이 되자, 우리들을 인솔하고, 다시 장정 길(중국 공산당 대장정 길)을 갔다. 남창(南昌)에서 출발, 구이저우(貴州) 경내의 범정산을 넘은 후,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우리는 숙소 정원에서 한 구루의 작은 빨간 단풍나무를 보았는데, 그때, 갑자기 남해의 작은 섬에서, 우리가 함께 심었던 나무와 더불어 장난기 많았던 우리 딸 이야기가 나왔다. 딸애의 상황은 너무 잘 알지만, 그 나무, 우리가 함께 지었던 그 나무, 우리가 함께 심은 국토 최남단의 그 신성하고 장엄한 나무는, 비록 서로 떨어져 있기 반년이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 파괴력이 상상을 뛰어 넘는 비바람이 우리가 심어놓은 나무를 적셔놓았을까? 그곳의 파도가 우리가 심어 놓은 나무를 어떻게 습격하지나 않았을까?
우리들은 모두 " 그 나무가 살아있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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