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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부친 일생의 6개 기막힌 장면(父亲一生的六个别致场景) -4 : 千岛

 

1971년 1월 22일. 31세 (아랫부분)

그는 양웨이부(羊尾埠) 부두에서 배를 내렸다.
그는 힘껏 군복 외투를 털었는데, 1월의 차기운 한기를 털어내고, 심신의 위풍을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그는 치핑산(棋坪山)을 바라보았다. 명조(明朝) 개국공신 류백원이 남긴 절벽에 새긴 글씨 "석벽(石壁)" 두 글자가 분명하게 보였다.
그는 매번 이곳 부두에 올 때마다, 항상 이렇게 잠깐 응시하며, 이 고아하고 힘 있는 글자를 감상했다.
그는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을 회고하며, 오늘 새롭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더욱 각별해 보였다.
오늘부터 그는 공출미를 먹을 수 있다. 아직도 얼떨떨한 가운데, 그는 가슴속에 백만 대병이 진을 선 듯 든든했고, '랄랄랄라' 마음속으로 진작부터 노래가 나왔다.

이십 리나 되는 산길을, 군인의 본색을 발휘하여, 빠른 걸음으로 행군하여, 한 시간 10분 만에 끝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다급하기가 화살 같았다. 두 살 먹은 내 자식, 다섯 살 먹은 응석받이 딸, 스믈 세살 먹은 사랑하는 아내. 이들을 세 달 동안이나 못 보았으니, 어찌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는 간절히 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제 전가족이 다시는 땅이나 파먹을 기대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충실하고 안정적인 월급을 받게 되었고, 월급은 네 가족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되었다는 힘 있는 보장이다.

그가 집을 떠나던, 그 가을 새벽이 기억났다. 작년 10월 11일, 일요일.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 아내가 일어나 밥을 지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 그릇의 흰 쌀 죽을 그의 옆에 살그머니 놓더니, 일부러 계란 두 개를 부쳐 내왔다. 대단히 세밀히 계산하며 살림을 해온 그녀는, 집에서 기르는 닭이 알을 낳으면 대부분 남겨두었다가 돈을 받고 팔거나, 물건과 바꾸어 쓰거나, 손님이 올 때 접대했다. 집에서 먹는 것은 매번 제일 많아야 한 개, 그것도 어른은 먹지 않고, 얼른 두 아이에게 나누어 먹여서 아이들 영양에 보탰다.

그는 아까워서 먹지 않았다. 계란을 다시 익히면 맛이 떨어질 테니,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남매 두 아이에게 한 개씩 주었다.
날이 훤해지자, 그는 문을 나섰다. 동네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뒤돌아 보았다. 아들과 딸 둘이서 아치형 돌다리 꼭대기에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매 둘이 작은 손을 꼭 잡고, 작은 팔, 작은 다리, 웃는 얼굴로 전송하는 모습이 계속 그의 기억 속에 스톱 모션처럼 생생히 살아있다.

그가 마을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오후 햇살이 겨울, 평온한 산촌을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아빠" 딸 애가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기쁘게 소리쳤다.
"아빠" 아들도 어린 목소리로 소리 내었다. 누나는 두 손으로 동생의 어깨를 끄러 안았고, 동생은 누나에게 기대어 아치 돌다리 위에서 고개를 들고 잔뜩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아이들 쪽으로 가서 주머니에서 사탕 두 개를 꺼냈다. 그는 알록달록한 종이를 벗기고, 사탕을 그들의 작은 입 속에 넣어준 다음, 한 손에 하나씩 안고집으로 걸었다. 남매 둘이 서로 바라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가 떠난 후, 날이 맑기만 하면, 남매 두 아이는 아치형 돌다리 꼭대기에서 놀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 아빠가 여기서 갔으니, 반드시 여기로 돌아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