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어머니는 아름다운 손을 가졌다. 가늘고 길며, 하얗지만, 그렇다고 여지들 일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 중국 전통신발 바닥을 꿰맬 때도, 날카로운 바늘로 자기 손을 찔러 헝겊 위에 핏 자국이 얼룩얼룩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연하게 부지런히 신발 바닥을 꿰매었다. 왜냐하면 세명의 장난기 넘치는 아들들이 서로 먼저 신발을 신으려고 잔뜩 기다렸기 때문인데, 엄마는 그들의 발을 불쌍히 여겼다. 어머니의 손재간이 점점 능숙해지자, 어머니의 손은 점점 변형되어, 손가락은 짧고 투박해졌고, 곡선으로 휘어져서, 설령 평평한 식탁에 펴놓는다고 해도, 바르게 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혼자 웃으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게 어떻게 사람 손이야?"
그렇다, 지금의 어머니는 고령의 노인네인데도, 못생긴 두손이지만 이상하게도 솜씨가 뛰어났다. 중국 전통 신발 바닥을 촘촘하고 예쁘게 만들어서 꼭 신어보고 싶게 만들었고, 번잡하고 까다로운 선을 가위로 깔끔하게 잘라낼 수 있으니, 정교하고 세밀하게 창화(窗花 : 중국의 창에 붙이는 종이)를 디자인해서, 누구나 창에 붙이지 않고 못 배기게 만들었다.
한참 더워지기 전, 어머니는 사가지고 온 티셔츠를 일일이 내 몸에 대보아 나를 짜증 나게 하더니, 깔깔 웃었다. 그러더니 집에서 항상 쓰는 흰모시 천을 눈 깜빡할 사이에 쓱쓱 재단하여 도복(褡裢)을 한벌 만들었다. 내가 그걸 입고 둑길을 산보하니, 온몸이 상쾌하고, 보기에 도우아했으며, 옛 북경인의 품위가 살아나고, 교양 있어 보였다.
어머니는 전에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 춥고 황량한 석두촌(石头村) 길이지만, 어머니가 걸어가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시골 사람들은 어머니의 이런 몸매를 "풍파류(风摆柳.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 라고 불렀고, 이 말은 남자들에게 날씬한 몸매를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부드럽고 아름다운, 낭만적인 몸매로 ----- 퇴비를 지고 산에 올라가거나, 산에서 옥수수나 기장을 지고 내려 와야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어머니의 허리는 낙타 등처럼 휘어졌고, 다리 안쪽이 휘어졌다. 요즘 와서는 넓고 평탄한 큰길을 걸어갈 때도 비칠 비칠 다리를 절어서, 걷는 모습이 보기 싫었고, 나를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는 무심한 듯 말했다. "걸음걸이가 불쌍하다는 건 위가 불쌍하지 않게 잘 먹었다는 거고, 몸이 무거운 것은 세월을 가볍게 살아왔다는 거야.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
어머니는 한번도 스스로 슬퍼하거나, 스스로 가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마음속에는 오직 밝은 빛만 비쳤다.
지금의 어머니는 몸이 비록 늙고 추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걸어간다. 마치 젊었던 시절로 들아간 듯 하다. 어머니는 건축공사장에 가서 벽돌 덩어리, 못 쓰게 된 쇠붙이를 줍고, 상점, 술집 문 앞에서 비닐봉지, 포장박스, 빈 깡통과 맥주병을 주워와, 자주 작은 고물상에 가서 꼼꼼히 무게를 재어 판다. 그때 눈빛이 빛나고, 재미있어한다.
아들 딸은 허영심에 사로잡혀, 몇번이고 말렸다. "엄마는 다리도 불편한데, 집에서 편하게 있으면 되지, 뭣하러 가는 곳마다 고물을 줍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를 욕할 거 아니에요?" 어머니가 말했다. "다리가 불편하니까, 움직여야 하는 거야. 나도 젊었을 때와 달라. 젊었을 때는, 시간을 보내려고 어쩔 수 없이 움직였지만, 지금은 마음을 채우려고, 즐겁게 움직이는 거야. 움직이면 기분이 좋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
어머니의 신상에서, 나는 세월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소위 세월이란, 어쨋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는 중의 품행은 모두 강요된 동작이다. 사람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순응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상황에는 자주 어긋남이 생긴다 ---- 마치 어머니의 손처럼, 예뻤을 때는 서툴렀고, 밉고 추할 때는 솜씨가 있었다. 어머니의 몸매도 마찬가지다. 날씬하고 아름다웠을 때는 당연히 경치 좋은 곳에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무거운 짐을 졌고, 짐에 눌려 있을 때는 편안히 보양하여 오래 살아야 하지만 이 때는 오히려 가만있으면 불안해했다.
세월은 머물러주지 않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인생은 상전벽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생활에서 여러 가지 어긋남을 마주하더라도 더는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겁먹지 말고, 원망은 더더욱 하지 말고, 활짝 열린 생각으로 태연하게 지내야 어떠한 환경에서도 만족하고 편안해진다. 물에 소금을 넣으면 짜지고, 찔린 상처에서는 피가 나는 법인데, 하찮은 일에 크게 놀랄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유로워지고 피동적인 순응에서 주동적인 순응으로 거듭니게 되어, 결국 즐겁게 사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며, 속세에 살면서도 불문(佛門)의 선의(禪意)가 생기는 것이다.
어머니가 넝마를 줏으면서도, 즐거움에 피곤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전혀 모를 테지만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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