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펄펄 흩날리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솨솨 부니, 대나무 숲이 우수수 흔들렸다. 내 마음도 창밖의 날씨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깊은 안갯속으로 가라앉았다. 도대체 끝도 없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썰렁함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잠깐 사이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나 지났다. 그해 가을, 초목은 시들어 누렇게 되기 시작했고, 아버지에게 갑작스럽게 류머티즘 병이 나타났다. 낡은 집 문 앞, 길 위에 겹겹으로 늙고 쇠약해진 발자국이 비에 젖어 드믄드믄 이어졌고, 아버지의 어제의 날 듯 걷던 열기는 소슬한 가을바람을 타고 두둥실 가버린 것이다.
한 폭의 전원 풍경, 4계절이 또렷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의 정감.(情感)도 파도처럼 소용돌이 쳤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나는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하는 험한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아버지가 병이 들어 행동이 불편할 때, 아내가 옆에 붙어, 보살펴 줄 수 있었을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반 농담처럼, 반 진지하게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후처로 들어올 아주머니 좀 찾아보세요! 그래야 아버지가 병이 들면 누가 돌뵈줄 것 아니예요. 어쨋거나, 우리 자식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가 제 때, 아버지를 돌보러 오지 못할 것 아니예요."
아버지는 담담히 웃었다.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내가 후사를 얻으려고 했다면 벌써 얻었지, 어찌 지금까지 있었겠냐?"
"그럼, 무엇 때문에 안 얻는 거예요?"
"비록, 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 혼자 살아기기도 힘들지만, 나는 다른 부인을 얻을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이 세상에 네 엄마보다 좋은 여자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둘째, 네 엄마가 떠난 후, 새 부인을 얻었을 때, 너와 네동생들 셋이 아직 어린데, 너희들을 계모가 구박하먼 어떻하 겠니? 그래서 나는 그때 마음 먹었다. 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내가 얼마나 처량하게 살든지, 얼마나 힘이 들던지, 결코 새 부인을 얻지 않겠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속내를 이야기 하자, 마치 힘센 두 손이, 내 스스로 만들고, 내 스스로 불쌍히 여겼던 나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와 오랜 세월의 오해를 찟는 것같았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나의 삭막했던 속마음이 이전에 한번도 본 적 없는 윤택하고 풍성함으로 넘쳤다. 알고보니, 마음이 강철같이 모질고, 수없이 나를 때렸던 아버지가 속으로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했구나!
이 순간, 나는 어쩔줄 몰라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눈물이 흐를까봐 겁이 나기도했고, 여러 차례 거짓으로 따듯한 적하거나 거칠고 버릇 없었던 내 얼굴에, 마음 속 감정이 감춰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날까 두려웠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것을 알았다. 순간, 내 속마음으로 계속 적대시해오던 자세와 뻣뻣했던 행태는 동요되고, 균열되기 시작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행동거지는 때때로 과격했다. 이것은 외로운 마음에 스스로 계곡을 판 것이다. 예컨대, 내 마음 속에는 계속 원망스러웠던 아버지가 결코 냉혈한이 아니고, 거칠고 폭력적이지만, 여러번 온정을 보일 때도 있었다. 만약 과거의 내 시선이 더 멀리 보았더라면, 결론은 어쩌면 많이 부드러워 졌을 것이다.
춥고 고생스러웠던 그 시절, 비록 밥을 못 해먹을 정도로 가난했어도, , 아버지는 집안 식구 모두와 똑 같이 거친 음식을 먹었고, 조금도 혼자만 잘먹고, 예외적으로 대우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장이서면 그곳을 지나가거나 거기서 일을 했는데, 밥 때가 되면, 언제나 왁지지껄한 인파속에서, 고독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총총히 자나칠 뿐, 언제나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해서, 음식점에 가서 혼자 즐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밖에도 기억나는 것은,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늘상 몇달에 한번도 고기를 먹어보지 못 했다. 아버지는 과거 군의관, 장교로 제대한 신분이라 고향에 돌아와 농업 생산대장이 되었다.
때때로 촌에 가서 회의를 하게 되면, 대대에 모인 다른 생산대장들과 함께 자기들이 시골에서 한 끼를 해 먹었다. 이때 식사는 촌에서 찬조해서 고기가 나왔다. 비록 고기가 많지 않고, 새벽에 떠있는 별 같이 드믄드믄 적었지만, 무를 넣고 삶아서 요리를 했다.
우리들에게 고기 한점이나마 먹여주려고 아버지는 언제나 낯 두껍게, 나나, 동생 혹은, 누이 동생, 누구든 생산대 회의에 데리고 가서, 사람들 속에 같이 섞여 밥을 먹게했다. 게다가, 밥을 먹을 때, 매인의 생산대장 별로 고기는 모두 똑 같이 나누어 주었는데 아버지는 언제나 자기가 고기 먹는 것을 아까워하고, 자기에게 배당된 그 고기를 데려간 아들 딸에게 먹게 했다. 만약 촌에서 하루 종일 회의가 개최되어, 아버지가 나나 동생 혹은 누이 동생을 데려가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는 미리 가져간 범랑 컵에 고기를 담아, 집으로 가져와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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