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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성장 세월의 상흔 (원제.植满时间的疼痛) : 阵新-4/10

 

 

 

지난날의 크고 넓었던 이상은 냉혹한 아버지에 의해 압살 당했다. 찬란한 인생의 햇살은 돌아보기 싫은 그림자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불효자는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성장세월 동안  나에게 준, 쌓이고 쌓인 상흔을 증오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省) 중점 중학에 가서 공부하는데 돈을 아낀 것을 원망했다.

나는 결국, 엉터리 같은 보통 농촌 학교에 가게 되었고, 군계일학으로 이 년제 고등학교 학업을 마쳤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스스로도 창피한 학교를 졸업하면서, 도시의 삼 년제 고등학교 응시생들과 함께 대학입시 시험을 쳤다. 나는 치열한 경쟁으로 거의 기진맥진한 상황 아래, 결국 학교에서 유일한 대학 합격생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첫달부터 계속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세월의 변천과 함께, 나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어른으로 성장했다. 지난날의 아픔과 수치스러운 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점점 좋아졌고, 이런 호감에 대해 어떤 때는 나 스스로도 질투를 느끼고, 심지어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했다.

당연히, 아버지에 대한 호감은, 암울한 성장기의 아픔을 내가 애써서 탁 트인 광명으로  이끌어내어 덮어버린 결과였다.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의 속에 없는 빈 말이고 도리였을 뿐이라는 걸 나도 알고있다.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키웠다고 말해도, 그의 무능으로 인해서 우리 집이 빈곤해졌고, 그 바람에 내가 끼니마다 맹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배고픔을 잊으려고 마신 맹물이라 할지라도 하늘에서 그냥 내려준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샘에 가서 어깨에 지고 퍼 날라, 끓여서 나에게 마시게 해 준 것이다.  속담에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갚아야 한다'(滴水之恩涌泉相报)'라고 했다. 나는 맹물이나마 십여 년간 마셨으니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오래된 기억을 강제로 망각하려 한 이유이다.

어쩌면, 사람의 일생은 미리 정해져 있고, 많은 것들이 망각의 길 위에서 잊어버려진다.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지난 세월의, 고통의 기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 보다는 결국 세월이 한과 번민의 날카로움을 마멸시켜버렸다.
과거의 건장하고 튼튼한 위용의 아버지가, 종종걸음으로 흔들리며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겨울의 말라빠진 쑥처럼 얼룩진 것을 보고 나의 단단하게 굳었던 마음도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막 직장에 들어간 그해, 설날, 나는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추스르고 천리 밖(400km), 직장에서 고향 대통촌으로 내려왔다. 찬바람이 씽씽 부는 가운데 아버지는 가물가물 흔들리는 촛불처럼 많이 늙어 있었다. 침상 위에는 여전히 얇은 이불이 덮여있었는데, 나는 한편으론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한편으론 잔소리를 해대는 나를 보았다. 뜻 밖에 내 눈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나의 청소년 시절은 언제나 행복하고 따스한 방향과 역행하여 성장해 왔고, 이런 것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남았는데,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나를 보살펴 주지도 않았던 아버지를 보고 맹렬히 마음이 아픈 거지?
설마, 시간이 쌓인다는 의미는 바로 나의 어린 시절 층층이 쌓인 고통스러운 상흔이 점차 쇠퇴해 가는 것처럼, 어쩔 수 없다는 뜻인가?
생각은 넓게, 지난 일들을 가로질러 갔고,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생생하게 없어지지 않고 살아있었다. 그래서 나 자신도 놀랐는데 ----- 설마 내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쓸쓸하고 애달픈 비극의 주인공 역할을 당연하게 달게 받아들이려는 것 아닌가?

세월의 변화로 아버지는 점점 늙어가는 것 외에도 옛날의 폭력적인 성질이 소멸하는 중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지난날 가난하고 옹색한 부부가 서로 돕고 지탱 하주던 기억은 조용한 밤, 외로운 아버지의 생사, 두 가지 막막한 생각 한가운데 남겨졌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없어지자, 아버지가 점점 우울하게 지내고, 깊은 가을처럼 쇠미해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농사를 지어야 했을 뿐 아니라, 돼지도 기르고 닭도 기르는 집안일을 해야 했으며, 늙은 부인네 같이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까지 해야 했다....

아버지는 이전에는 그처럼 강건하고 그처럼 힘이 넘쳤는데, 지금은 이처럼 자질구레하고 이처럼 쇠퇴하여 혼자 살림을 지탱해야 하는 생활의 번거로움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때 아무 할 일이 없을 때는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내 마음속에는  작으나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번민이 단단한 얼음이 녹는 것처럼, 녹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나는 그를 원망했다. 그 원망 때문에, 우연히 측은지심이 들면서, 동시에 얼마간 그것이 고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당신이 전에 우리 엄마에게 조금만 더 잘했어봐. 지금 이렇게 생고생을 하겠어요?

 

 

 

 

원래 글 제목 "빽팩히 심은 시간의 아픔"은 너무 추상적이고 의미가 애매하여 "성장 세월의 상흔"으로 제목을 바꿨습니다. "성장 세월의 상흔"이란 제목은 글의 내용과 부합하고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