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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필, 단편소설

봄에만 한번 일어나는 (春天只发生一次) 闫红

며칠 전, 나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그녀의 고향집에 갔었다. 외할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나의 작은 외할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샤오메이(小梅)가 친정집에 돌아왔단다. 한번 가서 보려무나."

나는 여전히 그녀가 사라졌던 그 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그렇게나 감쪽같이, 그렇게나 꼭꼭 숨어버려서, 영원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었다.

내가 사립문을 잡아다니자 "삐걱"하는 소리가 났고, 샤오메이가 복도에 나타났다. 이십여 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열살 정도의 여자애에서 중년 부인이 되어 있었다. "오랫 만이야(久违)" 인사하고 처음으로 서로 마주 보니 비로소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모습이 변했으나 그다지 많이 변해있지는 았았다. 그녀는 약간 뚱뚱해졌고 피부가 약간 어두워졌을 뿐, 얼굴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고, 동그란 눈썹 모습도 여전했다.

방안에는 의자가 없어서, 우리는 침상에 걸터 앉아 작은 문의 깨지고 지저분한 유리창을 마주했는데, 갑자기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남편은 부근 탄광에 있고, 아이는 시골 동네 유치원에 있다고...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드믄드믄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조금 더 있다가 가겠다고 인사했다. 눈앞에 있는 샤오메이는 여전히 옛날 그 샤오메이였으나, 나는 시종 낯설었다. 내가 아는 샤오메이는 오직 사라져 버린 샤오메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해에, 어떤 사연으로 반년 동안 휴학을 했었다. 그때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친정집에 왔었는데, 마쑤즈(马圩子)라는 시골이었다. 1980년 대에 이 시골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 되면 나는 한 무리의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계집애들과 시골 마을 한가운데 있는 속칭 "밥 먹는 마당"이라고 부르는 공터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우리는 노래도 부르고, 자기가 제멋대로 꾸며낸 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까불대며 유치한 대오를 만들어 먼 곳까지 나가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샤오메이의 집으로 갔는데, 그 집에는 여러 가지 예쁜 물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얼굴에 칠하는 눈같이 하얀 지분도 있고, 반짝이는 테를 두른 머리장식도 있고, 과장된 박쥐  모양의 블라우스와 나팔바지 등등, 모두 당시에 최고로  유행하는 여자애들이 멋내는 장구들 이었다. 비록 어둠 컴컴한 등잔불 아래지만, 이런 장구들은 그렇게나 빛났다. 샤오메이는 대범해서 우리들이 얼굴을 하얗게 칠하거나, 박쥐 블라우스를 잡아당겨 가슴에 대보아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애는 방안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뒤주에 비스듬히 기대 서서,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담담한 미소만 띠우고 있었다.

옆집 문이 "삐걱" 소리내며 열리더니, 마당을 가로질러오는 샤오메이 아빠,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은 급히 그 화려한 물건들을 몽땅 이불 밑으로 밀어 넣었다. ----  샤오메이는 절대로 아빠 엄마가 못 보게 하라고 소리쳤다. 그 애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절대 얘기하지 않았고,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들을 그 애의 언니 춘타오(春桃)가 남겨놓았다는 것뿐이었다.

춘타오는 우리보다 몇 살 더 많았다. 내가 그곳에 가기 일 년 전, 그녀는 이 시골 마을을 떠났다. 그것도 우연히 온 떠돌이 박물장수와 함께였다.

사람들 말로는 사단이 났을 때, 샤오메이의 아빠는 너무나 화가 나서, 많은 돈을 빌려 여러 곳으로 그녀를 찾아 나섰다. 결국 낙담해 돌아와서는 식구들에게 말했다. "이런 죽일 년"
그 후 그는 이 딸을 가장 치욕으로 여겼고,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만약, 그가, 우리가 춘타오가 남겨 놓은 옷가지들을 입어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노발대발할 것이 뻔했다.

사실 그가 이렇게 속상해 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사랑의 도피 사건에 대하여, 마쑤즈(马圩子) 사람들은 절대 낯설지 않았으니 말이다.
당시 이 시골의 주요 혼인 스타일은 부모의 명령, 중매인의 말, 삼차육예(三茶六礼 : 옛 중국의 결혼 풍속)로 각양각색의 규칙이 있었고, 한 군데도 애매한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개인의 의지에 따르려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잘 짜놓은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누군가와 잘못해서 눈이 맞으면, 일평생 최대의 용기를 내어, 자기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멀리 달아나기도 했다.

그들은 통상일년이나 반년 쯤 지나서 돌아왔는데,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것이다.(원문 표현: 生米已经煮成饭 쌀이 이미 밥이 되었다) 쌍방의 부모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치부하고 받아들였는데, 이런 일은 결코 적지 않았다.
샤오메이는 이런 언니 말을 꺼내는 것을 매우 원했다. 그녀가 입에 담는 춘타오는 대단히 매력적인 아가씨였고, 숯 집게로 파마도 할 줄 알고,  "빨간 대련"으로 뺨을 빨갛게 칠할 줄도 알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면 모두 원숭이 엉덩이 같아졌을 테지만, 춘타오가 칠하면 예뻤어. 언니는 예쁘게 생겼고, 언니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유별났지."
샤오메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상상이 안갔다. 샤오메이는 확연히 그녀의 언니와 달랐다는 말인데, 그녀는 모습이 별 특징이 없는 것 빼고도, 눈썹과 눈도 덤덤했다. 피부는 매우 하얗지만, 얼굴 전체의 윤곽은 매우 간결했다.

"사실 난 춘타오가 어디 있는지 알아."
한 번은 내가 샤오메이와 숲에서 풀을 베고 있는데, 그 애가 나에게 말했다.
"춘타오가 편지를 전해왔거든. 언니 있는 곳에 놀러 오래. 거기 되게 좋다는데, 너, 나랑 같이 안 갈래?"
그 애가 고개를 드는데, 입술, 치아 모두 윤기가 자르르 하게 빛났다. 눈동자에는 너무 좋아 미치겠다는 듯, 광기마저 감추고 있었다. 나는 상당히 놀랐다. 나와 샤오메이는 결코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애가 왜  이런 요청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말했다. "먼 데야?" "그렇게 멀지는 않아. 걸어서 한나절이면 가는 데야"

나는 그 애와 같이, 가는 데만 한나절이 걸리는 여행을 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우리 외할머니에게 혼날 거야."
샤오메이는 말이 없었고,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 둘은 함께 멍하니 먼데 있는 나무와 초지 위의 복슬복슬한 초록 안개를 바라보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의 그 고요함, 어찌나 고요한지, 내 마음속에서 누가 부르는 곡조도 안 맞는 노랫소리까지 들렸다. "봄이 왔네, 봄이 왔어."

내가 마쑤즈에 온 것은 원소절(元宵节: 정월 대보름) 지나서였는데, 한두 달 지나니 봄이 어슴푸레하게 어지러이 다가왔다. 시골 마을 아이들에게 풀 베는 일은 더 이상 번잡한 가사노동이 아니었고,  그것이 모이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자주 마을 여자 애들과 풀밭에서 옹기종기 마치 버섯 무리 처럼 앉아, 잡담을 나누었는데, 샤오메이는 우리들 모여 있는데 끼지 않았다. 그애는 나중에 다시 나에게 춘타오 보러 가자는 말을 꺼냈는데 나는 언제나 어떤 때는 교묘하게, 어떤 때는 멍청한 척 피해버렸다.
그 애는 더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여러차례 그 애가 마을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애와 멀리 떨어진 데서,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애는 낫으로 땅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슨 말인가 하기도 했지만 별로 웃지는 않았다.

그애가 남자애에게 같이 춘타오 있는 데로 가자고 했을까? 그 애는 이 봄에 그 남자애와 함께 달아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먼저 청했을까? 나는 갑자기 내가 거절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동시에 이런 호기심이 무섭게 느껴졌다.

샤오메이는 과연 봄이 끝나기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 애의 아빠 엄마가  어느 깊은 밤, 마을에 여자 애가 있는 집으로 와서, 샤오메이가 최근에 보안 태도를 알아보더니, 기세 등등하게 남자애네 집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자애가 자기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애는 결코 샤오메이와 같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 무리의 어른들이 긴장해서 힐문하자, 그 애는 어리등절해서 말했다. 오늘 샤오메이가 그애에게 와서 같이 도망가자고 했는데 대답하지 않았더니, 샤오메이가 뒤돌아 가버렸다고 했다. 그는 샤오메이가 집으로 간 줄 알고, 자기도 집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 샤오메이는 혼자 길을 나섰단 말인가? 만약 남자애와  함께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면, 그애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위험한 길을 나섰을까? 어른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단지 샤오메이나 춘타오 뿐만 아니라, 많은 가출한 여자애들에게, 먼 곳의 유혹은 어쩌면 한 남자의 유혹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

그네들은 그럭저럭 태어나, 그럭저럭 큰다. 그런 다음 자기 마을이나 옆 마을로 시집가고, 이 땅에서 자기 일생을 마친다.
그네들이 이때 남으면, 그네들은 영원히 남는 것이다. 애정은 하나의 그럴싸한 핑계이고, 그네들이 할 수 있는, 바람이 나는 데 대한 설명은 사람들에게 그네들을 쉽게 이해시켜준다.

딘지 샤오메이의 용기가 보통을 넘었기에, 그녀는 한바탕 권유에 실패한 후에, 결연히 혼자 길을 나선 것이다. 그 애가 정말 춘타오에게 의탁하러 갔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지내온 여러 해 동안나는 결국 춘타오가 편지를 보내왔느니 운운했던 것은  실제로 그애가 꾸며낸 허구라는 것을 알았다.

그애가 의탁하러 간 곳은 당연히 먼 곳이었다. 그 애는 봄의 꼬드김을 받은 것이다. 봄의 이 개념은 내가 마쑤즈에 온후 생겼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났어도,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천지를 뒤엎은 황금빛 유채꽃, 어디 강변이었던가,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 흥분되어 어질어질 한 벌과 흰나비, 태양 빛에 비친 비할 데 없이 밝고 활기 있던 수목들.
그런 봄 속에서, 무언가 반드시 발생한다. 무언가 잘못되면, 일생 동안 후회하게 되지만.

두 번째 해에, 내가 듣기로는 샤오메이 자매 둘이 모두 돌아왔다. 그녀 둘이 함께  돌아온 것은 아니다. 춘타오는 과연 아기를 안고 돌아왔고, 샤오메이는 홀몸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렇게 사라졌던 날들에 대하여,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네들의 생활은 다시 원 궤도에 들어섰고, 가장 평범한 부인이 되었다.

 

봄에만 한번 일어나는, 내가 직접 듣고 보았던 그 봄. 

샤오메이에게는 아마 봄 속의 봄,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지는 봄,

러니 그것이 일아났다 하더라도 애석해 할 필요는 없다.

 

작가 소개 : 염홍(闫红) - 1975년 안휘상 출생 여성 작가. 안휘 신안민보 편집장. 오독홍루 등 여러 베스트 셀러 장편소설 출간.



原載 < 문회보 > 2016. 4. 1.